왜 못 피했을까··· 청도 열차 사망사고에서 발견된 ‘반복성’

권은혜 기자 TALK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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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09.02. 오전 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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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군에서 노동자 7명이 다가오는 열차에 치어 2명이 숨졌다. 모두 외주업체 소속 노동자였다. 열차를 멈추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상례 작업’ 도중 사망사고가 발생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8월19일 작업을 위해 철로 위로 이동하던 노동자들이 무궁화호 열차에 치인 경북 청도군의 사고 현장. ©시사IN 박미소


“산재 없는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하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고 했습니다마는 또 이렇게 큰 사고를 당하다 보니 노동 안전을 책임져야 할 주무장관으로서 참으로 송구하고 면목이 없습니다.” 8월19일 경북 청도에서 발생한 열차 사고 현장을 찾은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그는 30년 넘게 코레일 열차를 운전해온 기관사 출신이다.

8월19일 오전 10시52분경 경북 청도군 화양읍 삼신리 청도역~남성현역 사이 경부선 철로에서 사상 사고가 발생했다. 동대구역을 출발해 경남 진주로 향하던 무궁화호 열차(제1903호)가, 최근 내린 폭우로 철도 주변 옹벽이 무너지지 않았는지 안전 점검을 하기 위해 이동 중이던 노동자 7명을 뒤에서 한꺼번에 쳤다. 사고 당시 열차는 시속 약 100㎞로 운행 중이었다. 이번 사고로 조 아무개씨(30)와 이 아무개씨(37)가 숨지고 5명이 다쳤다. 사상자 7명 가운데, 사망자 2명을 포함한 6명이 외주업체(한국구조물안전연구원) 소속이었다. 사상자 중에는 열차 감시자와 작업 책임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사망한 조씨(30)는 올해 입사한 신입사원이었다. 사고가 난 열차에는 승객 89명이 타고 있었으며, 탑승객 가운데 부상자는 없었다.

사고 직후 국토교통부는 철도안전정책관 등을 현장에 보내 원인 조사에 들어갔다. 대구고용노동청은 코레일과 외주업체 등의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수사 중이다.

8월19일 경북 청도군 철로 사고 현장 인근에 사고수습대책본부가 차려졌다. ©시사IN 박미소


사고 원인으로는 사고 발생 위치가 곡선 구간이어서 기관사가 작업자들을 발견하기 어려웠던 점, 사고 열차가 디젤차에 비해 소음이 작은 전기차여서 작업자들이 기차가 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을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노천대 경북 청도소방서 예방안전과장은 8월19일 현장 브리핑에서 “(사상자들이) 작업을 하러 가던 중이었던 걸로 알고 있다. 기차가 전기로 가서 소음이 별로 안 난다고 들었다. 피해자들이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을 추측한다”라고 말했다. 작업자 7명 중 4명의 휴대전화에는 일정 거리 내로 열차가 들어오면 경고 알림이 울리는 앱이 설치되어 있었다. 경찰은 알림 앱이 울렸는지, 기관사가 경적을 울렸는지 등을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공공운수노조 전국철도노조 김선욱 정책실장은 “전기차여서 열차가 오는 소리를 노동자들이 못 들었을 수 있다거나 열차 경보 앱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노동자에게 사고의 책임을 미루는 것과 다름 없다. 디젤기관차든 전기기관차든 간에 노동자가 현장에서 집중하고 있으면 아무리 큰 소리라도 못 듣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라고 말했다.

코레일 측이 업무 규정을 준수하지 않은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코레일의 작업은 열차를 멈추고 진행하는 ‘차단 작업’과 열차를 멈추지 않은 상태에서 근처 역장의 승인에 따라 시행하는 ‘상례 작업’으로 나뉜다. 이번 사고는 노동자들이 남성현역 역장으로부터 정밀안전진단 작업을 승인받고 선로에 들어간 지 약 7분 만에 발생했다. 코레일의 ‘열차운행선로 지장작업 업무 세칙’의 상례 작업 세부사항에 따르면, ‘열차 접근 시 안전한 장소로 작업원 대피가 가능한 작업일 것’ ‘전차선로와 떨어진 거리는 최소 1m 이상 확보되는 작업일 것’ 등의 조건이 충족된 상태에서만 상례 작업이 가능하다고 규정되어 있다. 또한 코레일 업무 세칙의 작업 시행 점검표에 포함된 외부 공사업체 안내 사항에는 ‘외측 레일 2m 이내 위험지역에서의 작업은 차단 작업으로 시행’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그러나 이번 사고의 경우 해당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데도 현장 작업이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시사IN〉이 드론으로 확인한 사고 현장은 휘어짐이 심한 곡선 구간으로 철로의 좌우 양쪽 모두 수풀이 무성해 선로 외에는 통행이 어렵다. 열차의 접근을 인지했더라도 피할 곳이 마땅찮은 곳이다. 사고로 부상을 입은 A씨는 경찰에 “선로 바깥쪽으로 이동하다가 비탈면으로 인해 좁아지는 구간이 있어 선로 위로 이동하게 됐다” “사고 지점에 수풀이 우거져 시야가 많이 가려졌고, 대피할 공간이 없었다”라고 진술했다고 알려졌다.

반복되는 ‘열차 운행 중’ 사고



미흡한 안전 규칙이 사고를 초래했다는 지적도 있다. 코레일 업무 세칙에 따르면 작업장이 선로에서 2m 이내일 때는 차단 작업을 한다고 규정할 뿐(즉, 2m 밖일 때 상례 작업 시행), 노동자가 작업 전후로 ‘이동’할 때 선로와 거리가 어느 정도 떨어져 있어야 하는지는 명확하게 정해져 있지 않다. 다만, 통상 선로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이 이동할 때는 철길이 아니라 자갈이 깔린 노반(철도를 부설하기 위해 다져놓은 땅)으로 이동하게 되어 있을 뿐이다. 사고 발생 원인과 대책에 관해 코레일 측은 “현재 조사 중인 상황이라 사고와 관련해 구체적인 답변을 주기 어렵다. 관계 기관의 조사에 적극 협력하겠다”라는 말을 남겼다.

열차 운행 중 노동자를 현장에 투입하는 상례 작업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이번 청도 사고와 유사하다고 비교되는 대표적인 사례가 2019년 밀양역 사고다. 이 사고 역시 철로를 보수하던 노동자 세 명이 새마을호 열차에 치여 한 명이 사망하고 두 명이 크게 다쳤다. 이 사고로 열차 운행 중 ‘선로에서 진행하는’ 상례 작업은 중단했지만, 선로의 가장 바깥쪽 레일로부터 2m 이내 선로변의 작업은 ‘위험작업’으로 규정하지 않고 계속해서 열차 운행 중에 진행하고 있다. 2024년 8월10일 경부일반선 구로역에서 발생한 사망사고도 비슷하다. 선로를 점검·보수하던 전기 모터카와 선로 검측 열차(선로 위를 운행하면서 레일에 균열이나 이상 마모가 있는지, 선로가 올바르게 침목(나무토막)·노반에 놓여 있는지 점검하는 열차)가 충돌하면서, 모터카에 탑승해 있던 노동자 세 명 중 두 명이 사망했다. 작업하는 선로에만 차량을 통제하고, 인접 선에는 열차가 여전히 운행되어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철도노조는 철도 노동자 사고를 막으려면 차량을 전면 차단한 뒤 작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철도노조 김선욱 정책실장은 “이번 청도역 열차 사고의 근본 원인은 열차 운행 선상에서 이뤄지는 상례 작업 그 자체다. 열차 경보 앱이나 선로가 아닌 노반으로 이동하게 하는 등의 대책은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 애초에 야간에 열차가 다니지 않을 때 작업하면, 사고의 가능성을 원천 차단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상례 작업 폐지가 불가능한지를 묻는 〈시사IN〉의 질문에 코레일 측은 “(제도 변화와 관련해서는) 사고 조사가 진행 중인 현재에는 답변드릴 수 없다. 조사 결과에 따라 여러 조치가 취해질 것으로 본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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