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의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가 정계에 복귀했다. 지난해 12월16일 ‘자녀 입시 비리’ 등 혐의가 유죄로 확정돼 수감된 지 8개월 만이다. 조 전 대표는 8월15일 출소 직후 이렇게 말했다. “헌법적 결단을 내려주신 이재명 대통령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제 사면·복권과 석방은 검찰권을 오남용해온 검찰 독재가 종식된 상징적 장면의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정치인 사면엔 늘 찬반 논쟁이 뒤따르지만 이번은 유독 파장이 크다. 여권의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인물인 동시에, 여전히 이른바 ‘조국 사태’를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약간의 농담을 섞어, “전두환 이래 가장 논란이 되는 정치인 사면”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조 전 대표가 페이스북에 올린 ‘된장찌개 영상’ 하나만으로도 옹호와 비난 여론이 뜨겁게 맞붙었다. 진보 엘리트의 위선을 드러낸 사건이자 조 전 대표가 입시 비리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는다는 비판과, 검찰 권력 남용의 피해자로서 처벌을 받을 만큼 받지 않았느냐 하는 반박이 사면을 계기로 다시금 부상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왜 ‘조국 사면’을 추진했을까. 정권 초기인 데다 정치적 부담이 적지 않다. 8월18~20일 진행된 전국지표조사(NBS) 결과를 보면, 이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57%로 2주 만에 8%포인트 빠졌다. 부정 평가도 33%로 직전 조사보다 9%포인트 상승했다. 광복절 특별사면에 대한 여론은 긍정 평가(38%)에 비해 부정 평가(54%)가 훨씬 크게 나타났다(자세한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윤태곤 ‘의제와 전략 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더불어민주당과 동반 하락세인 점을 함께 언급하며 “중도층 민심이 빠진 결과”라고 해석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 당선에 이어 조국 사면까지 겹치면서 이재명 정부의 실용주의적 면모보다 정파적 이미지가 강해졌다. 초창기 ‘잔치’가 끝나고 본래의 지지세로 돌아갔다고 봐야 한다.” 특별사면 외에도 이춘석 의원의 주식 차명거래 의혹, 주식 양도소득세 논란, 정청래 대표의 악수 거부 행보 등 악재가 이어졌다.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로 나선 안철수 의원은 이 대통령 지지율 하락세를 인용하며 “땡큐 조국, 더욱 가열차게 활동해달라”며 공세하기도 했다. 그러자 조국 전 대표는 “제 사면의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 답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조국 사면에 대해 “털 거면 빨리 터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 때 사면으로 좌고우면을 길게 하면서 오히려 타이밍을 놓쳤다. 대통령실도 지지율이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을 텐데, 더 나중에 한다고 해서 유리하지 않다.” 조국혁신당은 제21대 대선에 독자 후보를 내지 않고 사실상 이 대통령 당선을 도왔다. 이 때문에 성탄절 혹은 3·1절 특별사면 가능성도 거론되었는데, 그땐 6월 지방선거 시즌이 시작될 무렵이라 정치적 부담이 더 클 것이란 관측이다. 8월5일 문재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 사면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대통령실에 전달했다. 결과적으로 ‘친문 끌어안기’라는 해석이 나왔다.
조국 사면이라는 주사위가 던져지면서 범여권의 권력 구도에 파장이 일어났다. 조 전 대표는 8월18일 보도된 〈한겨레〉 인터뷰에서 “어떤 경우든 내년 6월엔 국민의 선택을 구하겠다”라며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보궐선거 출마 가능성을 시사하는가 하면, 같은 날 국립서울현충원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후 “국민의힘 의석수를 반 이상 줄이는 게 목표”라고 공세했다. 정치 일선에 복귀하자마자 광폭 행보에 나서는 모습이다.
정치적 동반자냐, 라이벌이냐
조국혁신당에선 대선주자로서의 가능성에 대해 ‘아직 먼 이야기’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조국혁신당 한 관계자는 〈시사IN〉과 통화에서 지난 7월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이 조국 전 대표를 면회한 사실을 언급하며 “친노, 친문, 동교동계가 그동안 접점이 없었는데 (조국 전 대표를 계기로) 화합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권 이사장이) 절판된 김대중 저서 한 권을 조국 전 대표에게 보내면서 여러 조언과 덕담을 건넸다.” 조 전 대표는 첫 공식 행보로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며 “8개월 수감 생활 중 김대중 저서를 여러 권 읽었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정치적 탄압’ 이미지를 부각하며 여권 잠룡으로서 세를 확장해나가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셈법이 복잡해진 건 민주당 쪽이다. 지난해 10월 재보궐선거부터 조국혁신당이 호남에 공을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4월 담양군수 재선거에서 첫 지자체장을 배출하기도 했다. 조국혁신당은 “정의당처럼 하진 않겠다”라면서도 호남에서만은 민주당의 경쟁자로서 각을 세우고 있다. 당장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합당설에 불을 지피는가 하면, 윤준병 민주당 의원은 “조국 일가의 ‘아빠 찬스’ 등 입시 비리 범죄행위는 비난받아 마땅하다(8월16일 페이스북)”라면서 거리두기에 나섰다. 두 의원 모두 호남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또 다른 호남권 의원은 “아무래도 (조국 전 대표 복귀로) 민주당과는 불편한 기류가 있다”라고 전했다. “조국 전 대표를 중심으로 비주류였던 친문이 뭉칠 가능성이 있지 않겠나.” 당장은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론 조국혁신당도 합당을 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정치사에서 제3당이 두 번 연속 잘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비례 의석인) 현역의원 입장에서도 지역구를 찾아야 할 테고 조국 전 대표도 조직이 탄탄한 민주당에서 대통령 후보가 되려고 할 것이다. 그러려면 일단 ‘값어치’를 올려야 한다.”
조국 전 대표는 여러 차례 인터뷰를 통해 “민주당과 ‘덮어놓고 합당’은 없다”라는 의사를 밝혔다. 우선 민주당과는 다른 독자적 역할을 증명해가며 진영의 파이를 키우겠다는 취지다. 이른바 ‘자강론’이다. 조국혁신당의 한 의원도 합당설에 대해 “민주당의 언론 플레이일 뿐”이라며 난색을 표했다. 이미 당 차원에서 내년 지방선거를 준비 중이고, 조국 전 대표 복귀를 계기로 입당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의 사면 결정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묘한 차이가 느껴진다. 앞서 언급된 조국혁신당 의원의 말이다. “대통령 입장에서도 자식이 하나만 있는 것보다 둘이나 셋 있는 게 좋지 않겠나. 한쪽만 비대하게 크는 것보다 여러 명이 골고루 경쟁하는 게 결과적으로 이재명 정부에도 도움이 되는 그림이다.” 한편 ‘조국 사면이 정청래 견제론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오자 정청래 대표는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악의적 갈라치기(8월18일 페이스북)”라며 거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정치적 동반자이면서 라이벌이 될 수도 있는 구도 아래에서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의 관계 설정은 더욱 첨예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땐 ‘지민비조’ 통했지만 지금은?
현재로서는 조국 전 대표가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서울·부산 시장에 출마하거나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인천 계양을·충남 아산을 등 지역구에 도전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각각 이재명 대통령과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의 지역구로, 민주당 지지 기반이 두껍다. 조국혁신당은 민주당과 선거 연합을 통해 국민의힘을 소수파로 고립하겠다는 전략인데 회의적인 시선도 존재한다. 앞서 언급한 민주당 관계자는 “결국 민주당과 선거 연합을 맺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2030과 중도층 반감을 안고서라도 민주당이 조국 혹은 조국혁신당을 도와줄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지난 총선 때는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대표는 조국혁신당)’라는 투표 전략이 통했지만, 윤석열 정부가 물러간 상황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조국혁신당으로서는 이재명 정부에서의 효용을 증명해야 하는 시간이다. 윤태곤 실장은 “조국 전 대표는 그간 ‘무엇을 막겠다’는 슬로건을 내왔는데 이젠 막을 게 없지 않나. 국민의힘이 강력한 제1야당이라면 ‘혁신당이 힘을 보태서 막겠다’는 논리가 성립되는데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지지층은 설득할 수 있겠지만 새로운 지지층을 발굴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조국 전 대표는 〈경향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검찰·사법·언론 개혁은 민주당과 80% 정도 의견이 일치하지만 조세정책·차별금지법 등에서 생각이 다른 지점이 있다”라며 독자 노선을 강조했다.
민주당의 강력한 우군이 될지, 야당으로서 레드팀 역할을 할지 조국혁신당의 고민이 깊어진다. 윤태곤 실장은 “정청래-조국 체제는 여권의 분위기를 강성으로 끌고 가면서 이 대통령에게 ‘역(逆)시너지’를 낼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강성 경쟁일 뿐 중도층이 원하는 견제와 균형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편 조국 전 대표가 향후 대권주자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라도 입시 비리와 관련된 혐의를 인정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 전 대표는 8월18일 기자들과 만나 “몇 번 사과한다고 2030의 마음이 열리겠나. 저를 왜 싫어하는지 분석하고 역할을 해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라고 응답했다. 반대 세력도 지지할 수 있도록 정치 행보로 증명하겠다는 포부다.
조국 전 대표가 ‘조국 사태’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대권주자로서의 잠재적인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비판도 거셀 수밖에 없다. 이 정치적 논쟁은 앞으로 5년 내내 이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