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대 판화과를 다니던 시절, 다큐 사진 수업을 듣던 박씨는 평택시 대추리에 갔다. 미군기지 이전 문제로 큰 갈등을 겪던 곳이다. 그곳에서 평화운동, 미술운동 하는 이들을 만났다. 현장에 밀착한 ‘파견미술팀’ 작가들과 함께 대추리와 용산, ‘콜트콜텍’ 현장을 오갔다. 학교보다 그 현장에서 ‘미술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느꼈다. 판화가 이철수씨에게 미술가로서 삶의 태도를 배웠다. 2015년 ‘대종경’ 연작 판화 작업 때 손을 보탰고, “목판으로 나도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박들 작가는 2014년부터 제주도 삼달리에 정착했다. 친구 찾아 여행 왔다 ‘한 번쯤 지내봐도 좋겠다’ 싶어 제주도 동쪽에 머문 게 벌써 10년이 넘었다. 마당에 들어온 개 세 마리,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지낸다. 텃밭을 일구고 꾸준히 미술작업을 해왔다. 그런 그의 눈에 제주의 오랜 전통인 감물 염색 천이 들어왔다. 제주에서는 풋감을 따 천에 감물 염색을 들인다. 감물 염색 천을 돌담에 널어놓는다. 감물을 여러 번 들일수록 옷감이 튼튼해진다. 감물 염색 천으로 옷도 지어 입는다. 제주의 바람과 볕에 따라 염색 농도와 색이 달라진다. 그가 보기에, 감물 염색의 스펙트럼은 깊고 다양했다. 박들 작가는 “감물 색이 제주의 들판과 오름 등 풍경과 참 많이 닮았다. 이 감물에서 나오는 색으로 제주의 풍경을 담아내면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다”라고 말했다. 천 조각을 이어붙여 제주의 따뜻한 풍경을 담아내는 감물 염색 천 콜라주를 시작한 이유다.
이번 전시회에는 목판화 20점, 염색 천 콜라주 18점을 선보인다. 사라져가는 제주의 낡은 감귤 창고, 중산간 오름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소와 말, 제주의 바람과 들판의 억새 등 제주의 풍경을 담았다. 목판화로 검은색 현무암 돌담 느낌을 그대로 살렸다. 돌창고 옆 돌담 위에 올해 초 ‘무지개다리를 건넌’ 고양이 ‘사자’의 행복한 시절을 그려 넣었다. 박들 작가는 전시회 팸플릿에 “저마다 마음 안에 섬이 있고, 그 안에 작은 집이 있다. 나는 발랄한 멍멍이와 자상한 고양이와 함께 있는, 바다 앞의 낮고 작은 집을 꿈꾼다. 내 그림을 보는 사람들도 ‘내 섬의 집’을 가꾸었으면 좋겠다”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