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공 농성의 반복이 아닌 단축을 위하여 [프리스타일]

김연희 기자
입력
수정 2025.08.07. 오전 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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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에서는 늘 진지하기만 한 〈시사IN〉 기자들, 기사 바깥에서는 어떤 생각을 할까요? 친한 친구의 수다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읽어주세요.
6월13일 세종호텔 고진수 지부장이 고공 농성장에서 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그날 행진의 종착지는 서울 중구 명동의 세종호텔 앞이었다. 이틀 전인 2월13일 고진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 지부장이 그곳에서 고공 농성을 시작했다. 지난 2월15일 광화문 동십자각에서 열린 탄핵 집회에 참석했다가 행진을 따라가게 된 나는 한동안 두리번거렸다. 설마, 거기가 고공 농성장일 줄이야. 6차선 도로의 한복판에 ‘서행운전 하세요’라는 전광판 문구가 번쩍이는 철제 구조물. 높이 10m, 길이 9m, 폭 80㎝의 가냘픈 난간 위에 헤드 랜턴을 쓴 사람이 팔이 떨어져 나갈 듯 손을 흔들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날만은 깃발의 군무보다도, 응원봉의 물결보다도, 복직 투쟁을 하는 세종호텔지부 조합원들의 손에 들린 피켓의 문구가 더 마음에 남았다.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길게는 2011년부터 이어진 싸움이다. 노조는 탄압을 받았고, 코로나19 유행 시기인 2021년 경영상 이유로 정리해고 됐지만, 호텔 경영이 흑자로 돌아선 이후에도 일터로 돌아가지 못했다. 2024년 12월 대법원은 회사 측의 정리해고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기자가 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고공 농성 보도를 너무 많이 하는 것은 길게 보아 노동자들에게도 좋지 않다는 말이었다. 그 말에 담긴 논리는 냉철하지만 합리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현명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고공 농성은 농성자의 신체는 물론, 정신과 심리까지 극단으로 밀어붙이는 투쟁 방식이다. 하늘에 오른 노동자에게 사회적 관심이 자꾸 집중된다면, 노동자들은 효과적인 수단으로 고공 농성을 선택하는 일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1월6일 경북 구미시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공장 옥상에서 박정혜 한국옵티칼하이테크 지회 수석부지회장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11년 차 기자가 된 지금은, 그 말이 옳고 그름을 떠나, 가능하지 않은 소리라는 것을 안다. 기록적 폭염과 폭우가 지상의 삶을 헤집어놓는 동안, 앙상한 철제 난간 위에, 불타버린 공장 옥상 위에 있는 이들을 떠올리고 염려하는 것, 이들이 어서 빨리 내려왔으면 하고 애를 태우는 것은 인지상정의 영역이다.

6월20일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노동자 고공 농성 정부가 해결하라’는 피켓을 들었다. 7월16일 인사청문회에서 김영훈 신임 고용노동부 장관은 “문제의 물꼬를 틀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보겠다”라고 말했다. 구미 한국옵티칼하이테크의 해고 노동자 박정혜와 서울 세종호텔지부의 고진수가 고공 농성을 시작한 지 각각 564일, 162일이 지났다(7월24일 기준). 고공 농성의 반복이 아니라 단축을 위해 미약한 글을 쓴다. 이 글만은 독자들이 받아보기도 전에 구문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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