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이 한덕수 성대모사에 능해진 까닭은? [6·3 대선 복면 뒷담화]

권은혜 기자 TALK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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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06.03. 오전 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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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후보 관련 공직선거법 대법원 파기환송부터 국민의힘 후보 교체 시도까지 하루 앞을 예상하기 어려운 대선이었다. 〈시사IN〉 정치이슈팀이 한자리에 모여 이번 대선의 소회를 나눴다.제21대 대선일까지 엿새를 남긴 5월28일 오후 2시, 〈시사IN〉의 ‘2025 대선 취재 TF’ 소속 기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윤석열 파면 이후 60일의 대선 기간에 각 후보들의 유세 현장을 따라다니며 보고 듣고 느낀 바를 가감 없이 털어놓았다. 마침 전날은 마지막 대선주자 TV 토론이 열렸다. 참석 기자들은 솔직한 방담을 위해 별명을 사용했다. 별명은 최근 정치권에서 화제가 된 말에서 따왔다. 각 인사들의 직책은 맨 처음에만 명기했다.

백의종군(백):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말해보자면, 아무래도 5월21일 윤석열과 함께 영화관에서 부정선거 영화를 관람한 일 아닐까. 영화 보고 혹시나 설득될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전혀 설득되지 않았다. 영상에 오타가 많았다. 젊은이를 ‘젏은이’라고 쓰다니! 논리도 빈약했다. 보다가 중간에 졸았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내 옆자리에 앉았던 ‘윤 어게인’ 청년들도 다 자고 있더라···. 취재 때문에 영화표를 돈 주고 사서 봐야 했는데, 최근 1년간 쓴 돈 중에 가장 아까웠다.

5월21일 오전 윤석열이 서울 중구 메가박스 동대문에서 상영하는 <부정선거> 영화를 관람한 뒤 나오고 있다. ©시사IN 박미소


매운새우깡(매): 사실 그날은 윤석열이 김문수 후보에게 마지막으로 열어준 빅 이벤트였다. 윤석열과 선을 그을 수 있는 최후의 기회. 그런데 걷어차버렸다.

손바닥백성민(民, 이하 손): 나는 5월10일 새벽에 자고 일어나서 잠깐 휴대전화를 봤을 때, 새벽 1시에 김문수가 대선후보에서 축출된 사건이 제일 충격적이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커피원가120원(커): 그날 아침 김문수 후보가 긴급 기자회견에서 사자후를 토하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저는 어떤 불의에도 굴복하지 않습니다!” 비장했지만, 약한 불의가 강한 불의에 저항하는 장면이었다.

내가후보다(내): 후보를 한덕수 전 총리로 교체하는 안건이 국민의힘 전(全) 당원 투표에서 부결된 게 생각난다. 결과적으로 당원들이 투표로 심판해서 반민주적인 결정이 무효가 됐다. 그게 인상적이었다.

: 지금까지 국민의힘이 ‘집단 린치’해서 실패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시도가 권력자도 아니고 당원들의 투표로 실패했다는 건 의미가 크다. 의원총회에선 이기더라도 당원 투표에서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단 걸 보여줬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장면으로 꼽을 수 있겠다.

: 대선 이후 한덕수는 어떻게 될까?

: 수사받고 기소되지 않을까.

: 한덕수에게 ‘내란 공범 의혹이 있는데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수사에 임할 건지’ 백블(백브리핑)에서 물어봤는데, 이미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 결정으로 모든 게 끝났단 식으로 셀프 면죄부를 주더라.

하와이특사단(하): 5월3일 헌정회에 방문한 한덕수 백블 때 5·18 민주화운동을 ‘광주 사태’라고 두 번이나 발언하게 한 질문도 끌어내지 않았나.

: “저도 호남 사람입니다”라고 외쳤는데 당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 물었을 때 나온 답이다. 그런데 한덕수는 매번 기자간담회에서 개헌을 해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말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는 답하지 않더라. 답답했다.

: 준비되지 않은 정치인들이 주로 같은 발언을 반복하는 것 같다. 지난 대선 때 윤석열도 어느 지역에서 유세를 하든 20분 분량 외운 내용을 계속 말해서 지겨웠다.

: 이제 한덕수 현장에 붙은 기자들은 한덕수 성대모사도 할 수 있을 정도다. 매번 반복해 말하는 멘트가 정해져 있어서. ‘그러니까 우리의 민생 문제, 외교 문제, 경제 문제, 통상 문제, 북한 문제, 약자와의 동행 문제, 개헌 문제···(일동 웃음).’

매: 사실 한덕수가 출마할 때 ‘도대체 그는 뭘 얻는 것인가?’ 궁금했다. 이미 나이도 지긋하고 총리도 두 번 한 사람이 대선 끝나고 당대표를 욕심낼까 싶어서. 도무지 의문이 풀리지 않았는데, 경찰이 한덕수에게 내란 혐의로 출국금지를 내렸다는 5월27일 보도를 보니 ‘아, 이거였구나. 수사를 피해야 했구나’ 싶었다.

5월8일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한덕수 예비후보(왼쪽)가 국회 사랑재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 5월1일 대법원의 이재명 공직선거법 위반 파기환송 판결도 충격적이었다. 법원이 어떻게 우리 정치에 플레이어로 등장할 수 있는지 보여준 사건이었다. 물론 이론적으로 허위사실 공표죄 자체에 피선거권 박탈형이 규정되어 있어서 가능한 측면도 있고 개선이 필요하지만,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대법원이 유력 후보의 피선거권 박탈형을 내린 건 처음 아닌가. 게다가 무척 이례적인 속도로. 법원이 이렇게도 할 수 있다는 걸 각인시켰다는 점에서 향후 사법개혁 논의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선거를 여드레 앞두고 열린 법관대표회의에서 결국 결론을 내지 못했는데,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 민주당 긴급 의원총회에 갔을 때 수많은 의원이 “이게 말이 돼?”라며 허둥지둥 회의장으로 들어가던 모습을 봤다. 그리고 그날 밤 최상목 경제부총리 탄핵소추안이 상정됐다.

: 그런 생각도 해봤다. 그전에 계엄이라는 사태가 있었기에 그 트라우마가 이런 상상을 뛰어넘는 상황에 대해 정치적 상상력을 폭주하도록 만든 건 아닐까 하고. 계엄이라는 게 양쪽에서 극단적으로 행동하는 걸 정당화하도록 만드는 건 아닌가 싶다. 민주당이 사법부를 압박한다고 비판받은 몇몇 일 역시도 그런 맥락이 있다고 본다. ‘계엄은 할 거라고 예상했나?’라는 막강한 경험적 사례가 타협이 안 되는 정치 문화를 만드는 데 일조한 건 아닐까.

조희대 대법원장(가운데)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5월1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 재판에 참석해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내란 세력에 대한 압도적 승리가 가능할까? 김문수 후보의 경우 마지막 여론조사 지지율이 36%까지 올라왔는데(뉴스1 의뢰 한국갤럽 조사,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 내란 세력의 압도적 패배가 중요할 것 같다. 4월4일 헌법재판소가 만장일치로 윤석열 파면을 선고한 뒤 극우 세력의 세가 곧장 약화됐다.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말처럼 일치된 의견의 영향력이 크다고 느꼈다.

: 과거 보수정당이 ‘태극기 부대’와 선을 그을 수 있었던 건,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대선과 총선 등에서 압도적으로 패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번 대선에서 압도적 패배가 아니라면 극우와 결별하기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다.

: 압도적 패배의 기준선은 윤석열 탄핵에 반대했던 여론이 29%가량 나왔으니, 그 아래로 나오는 결과일 것이다(〈시사IN〉 제910호 ‘2025 유권자 인식 여론조사 결과’ 참조).

: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이 더불어민주당의 사법부 압박 논란으로 정체된 면도 있어 보인다.

: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입법부뿐 아니라 행정부, 심지어 사법부도 민주당이 주도하는 것 아니냐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 논란은 의도와 무관하게 그런 권력 집중의 시그널이 되어버렸다. 선거 기간 내내 이재명 후보가 부정적 이미지를 없애려 많이 노력했는데, 그래서 더 소극적으로 보인 면도 아쉽다. ‘다른 후보들과 달리 나는 대선 삼수인 만큼 국정 준비가 이만큼 잘 돼 있다’라는 걸 더 보여줬으면 좋지 않았을까?

: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이 선대위원장에 처음 합류하며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폭정과 내란으로 경제와 민주주의가 무너진 것에 굉장히 분노했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 계엄 이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자기 역할을 재규정한 부분이 눈에 띄었다.

: 세 차례 TV 토론, 승자는 누구였다고 보나. 최고 수혜자는? 최악의 수를 둔 사람은?

: 승자는 권영국. 전 국민에게 당과 자신을 알렸으니까.

: 권영국 후보를 찍는 게 사표(死票)라고 하는데, 지난 지방선거에서 3% 이상 나온 덕분에 TV 토론에서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있으니 사표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민주노동당에서 나왔다.

: 그런데 권 후보가 “지금은 이재명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지지한다는 것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 우리 기자가 민주노동당 공보실에 확인해보니 “자꾸 나중으로 미루지 말고, 슬로건대로 지금 하겠다고 대답하라는 취지”라고 답했다더라.

: 권 후보가 선방했다지만 그래도 아쉽긴 하다. 지난 대선 당시 심상정 후보의 1분 발언은 영향력이 크지 않았나. 장애인 이동권과 고 이예람 중사 사건 언급이나, “심상정의 지지율이 3배 늘면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나라를 3배는 빨리 앞당길 수 있다”라는 등. 이번에 권영국은 발언이 화제가 되거나 기억에 오래 남지는 않았던 것 같다.

: 가장 실패한 후보는 굳이 말 안 해도 모두가 동의할 것 같은데. 이준석 후보의 여성 신체 관련 발언이 세 차례 토론 내용을 다 날려버렸다.

: 이준석 후보의 발언은 명백히 혐오를 선동하는 표현이었고, 심지어 실제 발언이라고 전해진 내용과도 달랐다. “가족의 일탈을 해당 정치인과 묶어서 비판하는 것을 지양해왔다”라던 과거 본인의 말과도 배치된다.

: 이준석 후보의 이 발언이 득표율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 개혁신당 안팎에선 15%가 실질적 목표란 분석이 나왔는데 어렵지 않을까 싶다. 본인의 그 한마디 때문에 달성하지 못할 듯.

: 따지고 보면 이준석 후보는 윤 정권 탄생에 큰 책임이 있는데, 큰소리치는 것도 말이 안 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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