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종군(백):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말해보자면, 아무래도 5월21일 윤석열과 함께 영화관에서 부정선거 영화를 관람한 일 아닐까. 영화 보고 혹시나 설득될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전혀 설득되지 않았다. 영상에 오타가 많았다. 젊은이를 ‘젏은이’라고 쓰다니! 논리도 빈약했다. 보다가 중간에 졸았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내 옆자리에 앉았던 ‘윤 어게인’ 청년들도 다 자고 있더라···. 취재 때문에 영화표를 돈 주고 사서 봐야 했는데, 최근 1년간 쓴 돈 중에 가장 아까웠다.
매운새우깡(매): 사실 그날은 윤석열이 김문수 후보에게 마지막으로 열어준 빅 이벤트였다. 윤석열과 선을 그을 수 있는 최후의 기회. 그런데 걷어차버렸다.
손바닥백성민(民, 이하 손): 나는 5월10일 새벽에 자고 일어나서 잠깐 휴대전화를 봤을 때, 새벽 1시에 김문수가 대선후보에서 축출된 사건이 제일 충격적이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커피원가120원(커): 그날 아침 김문수 후보가 긴급 기자회견에서 사자후를 토하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저는 어떤 불의에도 굴복하지 않습니다!” 비장했지만, 약한 불의가 강한 불의에 저항하는 장면이었다.
내가후보다(내): 후보를 한덕수 전 총리로 교체하는 안건이 국민의힘 전(全) 당원 투표에서 부결된 게 생각난다. 결과적으로 당원들이 투표로 심판해서 반민주적인 결정이 무효가 됐다. 그게 인상적이었다.
매: 지금까지 국민의힘이 ‘집단 린치’해서 실패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시도가 권력자도 아니고 당원들의 투표로 실패했다는 건 의미가 크다. 의원총회에선 이기더라도 당원 투표에서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단 걸 보여줬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장면으로 꼽을 수 있겠다.
백: 대선 이후 한덕수는 어떻게 될까?
내: 수사받고 기소되지 않을까.
손: 한덕수에게 ‘내란 공범 의혹이 있는데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수사에 임할 건지’ 백블(백브리핑)에서 물어봤는데, 이미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 결정으로 모든 게 끝났단 식으로 셀프 면죄부를 주더라.
하와이특사단(하): 5월3일 헌정회에 방문한 한덕수 백블 때 5·18 민주화운동을 ‘광주 사태’라고 두 번이나 발언하게 한 질문도 끌어내지 않았나.
손: “저도 호남 사람입니다”라고 외쳤는데 당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 물었을 때 나온 답이다. 그런데 한덕수는 매번 기자간담회에서 개헌을 해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말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는 답하지 않더라. 답답했다.
내: 준비되지 않은 정치인들이 주로 같은 발언을 반복하는 것 같다. 지난 대선 때 윤석열도 어느 지역에서 유세를 하든 20분 분량 외운 내용을 계속 말해서 지겨웠다.
커: 이제 한덕수 현장에 붙은 기자들은 한덕수 성대모사도 할 수 있을 정도다. 매번 반복해 말하는 멘트가 정해져 있어서. ‘그러니까 우리의 민생 문제, 외교 문제, 경제 문제, 통상 문제, 북한 문제, 약자와의 동행 문제, 개헌 문제···(일동 웃음).’
매: 사실 한덕수가 출마할 때 ‘도대체 그는 뭘 얻는 것인가?’ 궁금했다. 이미 나이도 지긋하고 총리도 두 번 한 사람이 대선 끝나고 당대표를 욕심낼까 싶어서. 도무지 의문이 풀리지 않았는데, 경찰이 한덕수에게 내란 혐의로 출국금지를 내렸다는 5월27일 보도를 보니 ‘아, 이거였구나. 수사를 피해야 했구나’ 싶었다.
하: 5월1일 대법원의 이재명 공직선거법 위반 파기환송 판결도 충격적이었다. 법원이 어떻게 우리 정치에 플레이어로 등장할 수 있는지 보여준 사건이었다. 물론 이론적으로 허위사실 공표죄 자체에 피선거권 박탈형이 규정되어 있어서 가능한 측면도 있고 개선이 필요하지만,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대법원이 유력 후보의 피선거권 박탈형을 내린 건 처음 아닌가. 게다가 무척 이례적인 속도로. 법원이 이렇게도 할 수 있다는 걸 각인시켰다는 점에서 향후 사법개혁 논의를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선거를 여드레 앞두고 열린 법관대표회의에서 결국 결론을 내지 못했는데,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백: 민주당 긴급 의원총회에 갔을 때 수많은 의원이 “이게 말이 돼?”라며 허둥지둥 회의장으로 들어가던 모습을 봤다. 그리고 그날 밤 최상목 경제부총리 탄핵소추안이 상정됐다.
커: 그런 생각도 해봤다. 그전에 계엄이라는 사태가 있었기에 그 트라우마가 이런 상상을 뛰어넘는 상황에 대해 정치적 상상력을 폭주하도록 만든 건 아닐까 하고. 계엄이라는 게 양쪽에서 극단적으로 행동하는 걸 정당화하도록 만드는 건 아닌가 싶다. 민주당이 사법부를 압박한다고 비판받은 몇몇 일 역시도 그런 맥락이 있다고 본다. ‘계엄은 할 거라고 예상했나?’라는 막강한 경험적 사례가 타협이 안 되는 정치 문화를 만드는 데 일조한 건 아닐까.
백: 내란 세력에 대한 압도적 승리가 가능할까? 김문수 후보의 경우 마지막 여론조사 지지율이 36%까지 올라왔는데(뉴스1 의뢰 한국갤럽 조사,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내: 내란 세력의 압도적 패배가 중요할 것 같다. 4월4일 헌법재판소가 만장일치로 윤석열 파면을 선고한 뒤 극우 세력의 세가 곧장 약화됐다.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말처럼 일치된 의견의 영향력이 크다고 느꼈다.
매: 과거 보수정당이 ‘태극기 부대’와 선을 그을 수 있었던 건,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대선과 총선 등에서 압도적으로 패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번 대선에서 압도적 패배가 아니라면 극우와 결별하기 어려운 상황이 될 수 있다.
하: 압도적 패배의 기준선은 윤석열 탄핵에 반대했던 여론이 29%가량 나왔으니, 그 아래로 나오는 결과일 것이다(〈시사IN〉 제910호 ‘2025 유권자 인식 여론조사 결과’ 참조).
백: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이 더불어민주당의 사법부 압박 논란으로 정체된 면도 있어 보인다.
매: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입법부뿐 아니라 행정부, 심지어 사법부도 민주당이 주도하는 것 아니냐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 논란은 의도와 무관하게 그런 권력 집중의 시그널이 되어버렸다. 선거 기간 내내 이재명 후보가 부정적 이미지를 없애려 많이 노력했는데, 그래서 더 소극적으로 보인 면도 아쉽다. ‘다른 후보들과 달리 나는 대선 삼수인 만큼 국정 준비가 이만큼 잘 돼 있다’라는 걸 더 보여줬으면 좋지 않았을까?
내: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이 선대위원장에 처음 합류하며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폭정과 내란으로 경제와 민주주의가 무너진 것에 굉장히 분노했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 계엄 이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자기 역할을 재규정한 부분이 눈에 띄었다.
백: 세 차례 TV 토론, 승자는 누구였다고 보나. 최고 수혜자는? 최악의 수를 둔 사람은?
매: 승자는 권영국. 전 국민에게 당과 자신을 알렸으니까.
내: 권영국 후보를 찍는 게 사표(死票)라고 하는데, 지난 지방선거에서 3% 이상 나온 덕분에 TV 토론에서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있으니 사표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민주노동당에서 나왔다.
하: 그런데 권 후보가 “지금은 이재명입니다”라고 말했을 때 (지지한다는 것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 우리 기자가 민주노동당 공보실에 확인해보니 “자꾸 나중으로 미루지 말고, 슬로건대로 지금 하겠다고 대답하라는 취지”라고 답했다더라.
커: 권 후보가 선방했다지만 그래도 아쉽긴 하다. 지난 대선 당시 심상정 후보의 1분 발언은 영향력이 크지 않았나. 장애인 이동권과 고 이예람 중사 사건 언급이나, “심상정의 지지율이 3배 늘면 누구도 차별받지 않는 나라를 3배는 빨리 앞당길 수 있다”라는 등. 이번에 권영국은 발언이 화제가 되거나 기억에 오래 남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매: 가장 실패한 후보는 굳이 말 안 해도 모두가 동의할 것 같은데. 이준석 후보의 여성 신체 관련 발언이 세 차례 토론 내용을 다 날려버렸다.
하: 이준석 후보의 발언은 명백히 혐오를 선동하는 표현이었고, 심지어 실제 발언이라고 전해진 내용과도 달랐다. “가족의 일탈을 해당 정치인과 묶어서 비판하는 것을 지양해왔다”라던 과거 본인의 말과도 배치된다.
백: 이준석 후보의 이 발언이 득표율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매: 개혁신당 안팎에선 15%가 실질적 목표란 분석이 나왔는데 어렵지 않을까 싶다. 본인의 그 한마디 때문에 달성하지 못할 듯.
하: 따지고 보면 이준석 후보는 윤 정권 탄생에 큰 책임이 있는데, 큰소리치는 것도 말이 안 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