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 [프리스타일]

이상원 기자
입력
수정 2025.05.14. 오전 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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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에서는 늘 진지하기만 한 〈시사IN〉 기자들, 기사 바깥에서는 어떤 생각을 할까요? 친한 친구의 수다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읽어주세요.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 ©시사IN 이명익


한 목사의 설교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래미상을 받은 음향 기술자가 이색적 작업을 했다. 우선 산속 오래된 사찰을 찾아, 1000년간 전해 내려오는 새벽 예불 소리를 녹음했다. 다음에는 서울의 한 대형 교회에 가서 새벽 기도회 실황을 담았다. 음향 기술자는 “크리스천 수천 명의 통성기도 소리가 승려 한 명의 목탁과 독경 소리에 미치지 못했다”라고 평했다. 내공과 영성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목사는 개탄한다. “승려의 독경은 자신을 비우는 소리인데 개신교인들의 기도는 욕망을 채우려는 소리라 그렇다.”

12·3 이후 내란 국면에서 개신교 관련 기사를 연이어 쓰자 “왜 이렇게 종교에 관심이 많으냐?”라고 한 동료가 물었다. 돌이켜보면 그걸 ‘종교 기사’라 분류해도 될지 잘 모르겠다. 타락한 종교인들을 다룬, 전형적인 정치·사회 기사라고 봤다. 신의 이름으로 제 정치에 골몰하는 목회자, 정치인에게 저주를 퍼붓는 기도회, 혐오 메시지를 통한 영리사업···. 지적 흥미보다는 직업적 탐문의 영역이었고, 늘 접하는 사회의 너절한 단면일 따름이었다.

사람들이 교회를 떠난다. 극우 개신교인들은 ‘그러니까 동성애를 때려잡자’는 식의 결론으로 치닫는다. ‘타락’한 풍조를 바로잡으면 다시 교회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원인과 결과를 뒤집은 진단이다. 비리와 추문, 세습 탓에 교회가 먼저 신임을 잃었다. 12·3 계엄 이후 ‘주류 교회’ 상당수는 내란 세력에 찬동하거나 ‘정쟁을 멈추라’는 양비론만 내놓았다. 민의와 동떨어진 교회가 신의 계명을 부르짖어봤자 영이 서지 않는다.

종교는 세속과 달라야 울림이 있다. 다름이란 세상에 뒤처져 비웃음거리가 되는 게 아니다. 모두가 동경하되 아무나 따라 할 수 없는, 어떤 거룩한 파장을 내야 한다. 4월21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돈은 100달러(약 14만원)다. 무덤에는 재임 기간도 없이 ‘프란치스코’라는 이름만 남기라고 유언했다. 살아서 복리를 누리고 죽으면 이름을 떨치려는 게 인간 본성이다. 이걸 거스르는 종교, 종교인이야말로 뭇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도심 곳곳에 내리꽂힌 붉은 십자가를 보며 그 주인들에게 묻고 싶다. 잔치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앉아왔는가? 바늘구멍을 통과할 수 있는가? 당신들이 우리와 다른가? 무엇이 어떻게 다르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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