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하순에 올린 서명 글에서 그는 ‘주주들의 수익과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한 주식회사를 설립해 서울국제도서전을 주관하는 점, 해당 주식회사의 지분 70%를 특정 출판사·서점과 몇몇 출판인들이 보유하고 있다는 점, 설립 과정에서 출판계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투자설명회나 공청회가 없었다는 점’ 등을 지적했다. 그는 이 서명운동 그룹에 ‘서울국제도서전 사유화 반대 연대’라는 이름을 붙였다. 생소한 이름인 ‘주식회사 서울국제도서전’에 대한 반응은 빠르게 퍼졌다. ‘사유화 반대 연대’ SNS 계정에 따르면, 출판인·저자·독자 등 서명자가 5000명을 넘어섰다.
서울국제도서전은 사단법인 대한출판문화협회(회장 윤철호·이하 출협)가 1954년부터 주최해왔다. 그런데 2023년 7월, 윤석열 정부 당시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도서전을 두고 ‘출판계 이권 카르텔’을 언급했고, 이어 8월에는 보조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윤철호 회장 등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경찰이 윤 회장 등을 한 차례 조사했으나 수사 결과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문체부는 이 수사 의뢰와 ‘보조금 및 수익 정산 문제’를 이유로 한 해 약 7억원에 달하던 보조금을 끊었다. 이에 2024년 도서전은 참가비 등 출협 자체 비용으로 치러졌다(문체부는 출협을 배제한 채 도서전 참가사에 6억7000만원을 직접 지원했다).
문체부와의 갈등이 지속되자, 출협은 도서전을 주식회사 형태로 전환해 운영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2023년 12월 출협 이사회에서 ‘주식회사 서울국제도서전’ 설립안을 승인했다. 2024년 1월, 기자간담회를 통해 회사를 설립하고 20억원을 목표로 주주 및 발전기금을 모으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여러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그럼 왜 주식회사 형태였을까? 도서전 측은 이렇게 설명했다. “사단법인이나 재단법인으로 설립하려면 문체부의 승인이 필요한데, 문체부와의 갈등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유럽에는 도서전을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하는 사례가 많다. 출협이 51% 지분을 보유하는 안도 검토했으나, 그럴 경우 출협이 공익법인이라 법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법률 자문을 받았다. 그래서 출협의 지분이 30%가 되었다.”
‘공적 논의’ 제안, 해법 찾을 수 있을까
현재 주식회사 서울국제도서전의 자본금은 10억원. 도서전 상표권을 현물출자한 출협이 30%를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 지분은 사회평론(윤철호 대표) 30%, 노원문고(탁무권 대표) 30%, 그리고 일부 출판사들이 10%를 갖고 있다(상자 기사 참조). ‘사유화 반대 연대’ 측은 출협의 30%를 제외한 70% 지분이 개인에게 집중돼 있다는 점을 문제 삼는다.
이에 대해 도서전 측은 “두 차례에 걸쳐 주주를 공개 모집했으나 목표 금액인 20억원에 못 미쳐 13개사가 청약했다. 향후 증자가 이루어지더라도 출협의 지분 30%는 희석되지 않도록 명문화했다. 공익 목적을 위해 출협이 이사·감사 각 1인을 지명할 수 있도록 했다”라고 말했다. ‘더 많은 출판인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기자회견에서 주식회사 설립을 알리고, 협회 공지문·회원사 개별 공지문 등 두 차례 공지를 했다. 그럼에도 ‘몰랐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컨벤션 사업 특성상 인건비 비중이 크고 이익을 내기가 어렵다. 수익이 나더라도 주주에게 배당한다는 계획이 없다”라며 ‘사유화 프레임’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유화 논란’ 이후 도서전 측은 이사회를 열어 증자 추진에 원칙적 합의를 했다. 자본금이 늘어날 경우 기존 주주들의 지분이 희석돼 특정인에게 집중될 우려가 줄어들 것으로 본다. 5월에 열릴 이사회·주주총회에서 정관 공개 등을 논의하려 한다. 한편 4월30일, 출판인회의·한국작가회의 등 7개 출판·문화 단체들이 ‘서울국제도서전 공공성 회복을 위한 공적 논의’를 제안했다. 주식회사 전환의 백지화 문제를 포함해 출판계의 공공성을 담을 수 있는 소유·집행 구조 개편을 논의하자는 내용이다. ‘도서전 사유화 논란’을 두고 당분간 다양한 목소리가 이어지리라 보인다. ‘믿을 구석’을 주제로 한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은 오는 6월18일에 개막한다.
[탁무권 노원문고 대표 인터뷰]
주식회사 서울국제도서전의 자본금 30%를 출자한 탁무권 노원문고 대표는 서점 경영자뿐만 아니라 지역·문화운동으로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윤이상평화재단 이사장을 지냈고, ㈔희망래일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도서전에 지분 참여한 계기는?
문체부가 보조금 지원을 끊었다고 해서 ‘잘됐다’고 조언했다. 시민사회단체가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것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도서전이 자립하는 데 도움이 필요하면 돕겠다고 했다. 공지를 한 번 했는데, 돈이 모이지 않았다고 해서 내가 나서기로 했고, 그때 공지를 더 하자고 제안했다. 조건은 두 가지였다. 첫째, 도서전이 내가 관심 있는 ‘지역 살리기’에 기여해야 한다는 것, 둘째, ‘사회적기업’으로 반드시 등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기를 놓쳤다고 해서 다음에 꼭 신청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사유화’ 논란이 일었는데.
최근 긴급 이사회를 열었다. 지분 구조를 바꾸라는 요구가 있다면 ‘잘됐다, 증자하자’고 했다. 증자에는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나는 도서전이 새로이 의미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정말 기부하는 마음으로 참여했다. 이참에 출판계뿐만 아니라 도서전에 함께하는 작가, 독자 등으로 두루 범위를 넓히면 좋겠다. 정부와의 싸움에서도 힘이 될 것이고, 정부 지원 없이 자립적인 모델을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되겠다. 지분이 희석되는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애초에 ‘기부’라고 생각해서 참여했기에, 여기까지가 내 역할이라 보고 지분을 회수해도 괜찮다. 지분 참여 시 나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절차를 확실하게 밟아달라고 했고, 그 절차를 지켰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문제 삼는 데 대해선 매우 유감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