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온다고? 어제 (파기환송으로) 나가리 시켜놨더니만 왜 와?”(강원 철원)
“우리 후보님 이번엔 대권 잡으셔야 해”(충북 단양)
“이재명 오는 줄 알았으면 이쪽으로 산책 오지도 않았어. 꼴도 보기 싫어”(경북 영주)
5월1일 오후 3시, 대법원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전원합의체 회부 9일 만에 전례 없는 속도로 이뤄진 판결이다. 당내에서 ‘대선 개입 사법 쿠데타’라며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 요구가 분출하는 가운데, 이재명 후보는 5월1일부터 5월4일까지 나흘간 이어진 ‘1차 골목골목 경청 투어’를 예정대로 소화했다.
이번 1차 투어에서 이 후보가 들른 곳은, 경기 포천·연천, 강원 철원·화천·인제·고성·속초·양양·강릉·동해·삼척·태백·영월, 경북 영주·예천, 충북 단양·제천 총 17개 지역이다. 〈시사IN〉은 대법원 판결이 난 다음날인 5월2일부터 5월4일까지 강원과 경북, 충북 일정을 동행했다. 이 후보는 전통시장과 상가를 방문해 지역화폐 상품권으로 붕어빵·산나물·땅콩·화분·떡갈비 등을 직접 구매했다. 유세 현장에서 이 후보를 만난 주민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그의 저서 〈결국 국민이 합니다〉를 들고 와 사인을 받으려는 주민부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욕설을 터뜨리는 시민까지 여러 반응이 터져 나왔다.
이재명 후보가 이번에 방문한 지역들은 전통적으로 보수세가 강한 곳이다. 이번 투어에서 가장 많이 방문한 강원도 지역은 1987년 민주화 이후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를 제외하면 대선에서는 늘 보수정당 후보가 우세했다.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8석 중 2석(허영, 송기헌)만 더불어민주당이 가져갔다. 강원도 철원 동송전통시장에서 ‘만물상’ 잡화점을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이 동네는 다 국민의힘 뽑는다”라고 말했다. 철원에서 벼농사를 짓는 김용빈씨(62) 역시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철원은 인물은 상관없이 빨간 당이라 하면 그냥 찍어주는 곳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달라진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재명 후보에게 사인을 받은 철원 동송전통시장 ‘민속떡집’ 사장 이송 씨(52)는 “서민 생활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이 후보님이 대통령이 되는 게 맞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후보 유세 소식을 듣고 시장에 나왔다는 윤아무개씨(44)는 휴대폰 카메라를 켜고 이재명 후보를 기다리며 “나이 든 분들은 국민의힘을 찍어도 젊은 사람들은 민주당을 지지한다”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처가댁인 인제에 방문했다는 30대 이수영씨는 “이재명이 온다기에 와 봤다. 이 후보를 지지하진 않지만, 어차피 대통령이 될 거니까 악수 한 번 했다”라고 말했다.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철원 출신의 우상호 전 의원은 5월2일 이 후보와의 유세에 동행하며 “대선 후보가 철원을 찾은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선거 때마다 와서 돌아다니는데 오늘이 제일 열띤 분위기다. 바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수많은 인파를 몰고 거리 유세를 하던 와중에, 이재명 후보는 5월3일 후보에 대한 피습 모의 제보가 잇따라 대인 직접 접촉을 하기 어렵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현장에서는 악수와 포옹 대신 눈인사와 손을 흔드는 것으로 대신했다. 단 아이들에 대해서는 가까이 다가가 포옹하고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5월3일 태백 유세에서 한 중년 여성이 초등학생 아들을 앞세워 “대표님, 우리 아이가 사인 받겠다고 황지읍에서부터 달려왔다. 사인 부탁드린다”라고 말하자, 이재명 후보가 아이를 안고 사진을 찍고 종이에 사인을 해주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의 상징색인 파란 옷을 입은 지지자들은 ‘잼가드’ ‘안전거리 유지’라고 적힌 스티커를 등에 붙이고 이재명 후보의 거리 유세를 내내 따라 다녔다.
“대법관 탄핵해야” “죄 지었으면 벌 받아야”
이재명 후보에 대한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에 시민들은 다양한 반응을 내놨다. 선거법 판결이 나온 다음 날인 5월2일 강원도 철원에서 만난 김미옥씨(60)는 자신을 더불어민주당 당원이라 소개하며 “어제 3시에 파기환송 되자마자 평소에 정치 얘기를 잘 안하던 주변 동네 사람들이 봇물 터지듯 ‘이런 ‘XXX’들이 있나’라고 말 나오더라. 저쪽에서 저렇게 무지막지하게 하면 민주당도 내란범들과 함께 대법관들을 탄핵하는 게 맞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경북 영주에서 농사를 짓는 권창훈씨(62)도 “말이 안 되는 판결이다. 사법부는 국민의힘 세력에는 관대한데 유독 민주당 후보만 괴롭히는 것 같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앞서 같은 장소에서 만난 윤아무개씨(44) 역시 “진짜 사법부에 카르텔이 있나보다. 이재명 괴롭히려고 작정한 것 같다”라고 답했다. 충북 단양구경시장에서 버섯 장사를 하는 소아무개씨(50)도 “명백한 선거 개입이다. 이재명 하나 죽이려고 그러는 거 아니냐. 대법원장을 탄핵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와 반대로 경북 영주에서 만난 유병주씨(66)는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대법원이 맞는 판결을 내렸다”라고 말했다. 앞서 철원에서 만난 이수영씨 역시 “대법원이 정당한 판결을 내렸다고 본다”라고 답했다.
유세 현장에서는 대법원 파기환송과 관련해 날카로운 언쟁이 오가기도 했다. 5월3일 강원도 삼척에서는 이 후보를 보려고 몰려든 인파 외곽에 ‘삼척시민은 범죄자를 원하지 않는다’ ‘파기환송 받고도 출마? 정의를 우롱하지 마라!’라는 피켓을 든 사람들이 곳곳에 서 있었다. 그들은 이 후보 지지자들과 서로 삿대질과 욕설을 주고받다가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그러나 ‘다음 대통령은 이재명이 될 것’이라는 데는 이재명 후보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모두 같은 전망을 했다. 앞서 대법원이 맞는 판결을 내렸다던 유병주씨는 “김문수를 지지하지만, 이번에는 이재명이 대통령이 될 거다. 안 될 인물이지만 어쩌겠나. 분위기가 넘어갔다”라고 말했다. 경북 영주에서 만난 고아무개씨(82)도 “민주당이 윤 대통령이 일을 못 하게 만들지 않았나”라면서도 “윤석열이 계엄 한 건 좀 너무했다고 본다. 그러니까 이재명이 지금 대통령 되게 생겼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재명 후보는 강원도 태백 유세 현장에서 “대법관 10명 전부 탄핵시켜 달라”는 지지자의 말에 웃으며 답을 하지 않았다. 민주당 내에서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 추진 움직임이 나오는 데 대해 5월3일 이재명 후보는 “저야 선출된 후보고, 선거는 당과 선대위가 치르는 것이니까 당이 국민의 뜻에 맞게 적의(適宜·알맞고 마땅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민주당이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을 일단 보류하기로 한 5월4일에는 사법부의 정치 개입 논란에 대한 질문에 “제가 관계된 문제라 가급적 생각을 안 하려 노력 중이다”라고 말했다.
한덕수·김문수 단일화? “표가 되겠나”
이재명 후보가 선거 유세를 도는 동안, 5월2일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대선에 출마했고, 5월3일에는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선출되었다.
보수 지지세가 높은 동네에서도 한덕수와 김문수에 대한 현장 반응은 그리 뜨겁지 않은 듯했다. 강원도 철원에서 사는 농부 이광휘씨(66)는 “한덕수는 내란범 아니냐. 관심도 없고 그래봤자 잡초일 뿐이다. 감옥에 가야지 왜 대선에 출마하나”라고 말했다. 강원도 인제 거진전통시장에서 만난 황민숙씨(60)는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을 뽑았을 땐 큰 기대를 했는데 계엄으로 나라를 이렇게 망쳐놓지 않았나. 한덕수·김문수·한동훈은 윤석열의 오른팔이니까 그런 사람들이 해봤자다”라고 말했다. 앞서 충북 단양구경시장에서 만난 소아무개씨(50) 역시 “한덕수는 (출마할 게 아니라) 집에 가야 한다. 광주에 가서 자기가 호남 사람이라 그랬다던데 예전에는 호남인인 걸 숨기지 않았나”라고 되물었다. 경북 영주에서 만난 김동환씨(45)도 “김문수는 (대선 후보로) 말이 안 된다. 데모하던 사람이 반대편으로 넘어갔다. 한덕수는 사람 같지가 않다. 둘이 합쳐봤자 표가 되겠나”라고 말했다.
이재명 후보는 5월3일 강원도 삼척시에서 김문수와 한덕수의 단일화 가능성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반헌법 민주공화국 파괴 세력끼리 연합하는 거야 예측된 일 아니겠나. 국민들께서 과연 이 나라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국가 반역 세력들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실지 스스로 한번 돌아보시면 어떨까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현장 곳곳을 누비며 이재명 후보가 가장 강조한 것은 ‘민생’이었다. 이 후보는 경북 예천 도청 신도시를 찾아 상가 공실 현황을 살폈다. 그는 분식집에서 간담회를 열며 “지금 대한민국이 다 어려운 상황이다. 그중에 지방은 더하고 지방 소도시는 더 심각하다. 수도권 중심으로 집중된 추세를 좀 되돌려야 한다”라며 지역 균형발전을 강조했다.
이재명 후보가 직접 방문해 떡을 구입했던 강원 철원 동송전통시장 ‘서울떡집’의 이금옥 사장(67)은 “경기가 너무 안 좋다. 뒷골목 상가 보면 죄다 공실이다. 시장통이 사람이 바글바글해야 하는데 나라가 시끄러우니까 다들 돈을 안 쓴다”라고 말했다. 충북 단양구경시장에서 12년째 과일 장사를 하고 있다는 경우현씨(50) 역시 “소상공인, 자영업자들 다 폭탄 하나씩 안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나라가 망해가는데 누가 돈을 쓰겠나”라고 답했다. 5월4일 이재명 후보는 페이스북에 소상공인·자영업자 정책발표문을 게시하며, 코로나 대출 종합대책, 지역화폐와 온누리상품권 확대 정책 등을 내놨다. 이에 대해 경우현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리 대출도, 지역화폐도 한 가지 방법이겠지만 효과는 다 단발성이다. 혼란스러운 정국이 안정되고 경기가 총체적으로 나아져야 사람들이 돈을 쓰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