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판매 중인 일부 아기 공갈젖꼭지(노리개젖꼭지)에서 내분비계 교란물질로 알려진 비스페놀A(BPA)가 검출됐다. BPA는 정자 수 감소, 비만, 특정 암 등 다양한 건강 문제와의 연관성이 제기돼 온 화학물질이다.
영국 가디언, 데일리메일 등 외신에 따르면 최근 체코 소비자단체 '디테스트(dTest)'는 최근 진행한 조사에서 스위스의 큐라프록스(Curaprox), 프랑스의 소피라지라프(Sophie la Girafe), 네덜란드의 필립스(Philips) 제품에서 BPA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이들 제품은 'BPA 무함유(BPA free)' 또는 '천연 고무' 제품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BPA는 플라스틱을 단단하게 만드는 데 쓰이는 산업용 화학물질로, 침이나 열에 노출될 경우 서서히 용출돼 체내로 흡수될 수 있다. 영국의 화학물질 규제 단체 켐트러스트(Chem Trust)의 관계자는 "BPA는 체내에서 에스트로겐 등 호르몬을 모방하거나 교란해 호르몬 신호 체계를 방해한다"며 "장기와 신경계가 아직 발달 중인 영유아의 경우 특히 취약하다"고 설명했다.
실험 결과…EU 기준치 초과 제품도
디테스트는 체코·슬로베니아·헝가리 매장에서 19개 제품을, 온라인 쇼핑몰 테무에서 중국 포샨 새이다 유아용품(Foshan City Saidah Baby Products) 제품 2개를 구입해 실험을 실시했다.
공갈젖꼭지를 37°C의 인공 타액 용액에 30분 동안 담가둔 뒤 BPA 용출량을 분석한 결과, 유럽 3개 브랜드 제품과 중국산 1개 제품에서 BPA가 검출됐다.
수치가 가장 높았던 제품은 큐라프록스의 '베이비 그로우 위드 러브(Baby Grow with Love)' 제품으로, 1kg 당 19㎍의 BPA가 검출됐다. 이는 유럽연합(EU)의 허용 기준(1kg당 10㎍)의 거의 두 배에 해당한다. 소피라지라프의 '천연 고무' 제품에서는 3㎍, 필립스의 '아벤트 울트라 에어(Avent Ultra Air)' 제품에서는 2㎍이 검출됐다.
BPA는 호르몬 체계를 교란해 정상적인 성장과 발달을 방해할 수 있는 물질로 면역 기능 저하, 비만 및 당뇨병 위험 증가, 정자 수 감소 및 불임, 심혈관질환 위험과의 연관성이 보고돼 있다. 또한 뇌 발달에도 영향을 미쳐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자폐 스펙트럼 장애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전문가 "과도한 불안보다는 올바른 관리가 중요"
전문가들은 이 같은 결과가 우려할 만하지만, 과도한 공포를 느낄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디테스트의 하나 호프만노바 편집장은 "대부분의 제품에서 BPA가 검출되지 않았고, 검출된 경우에도 농도는 낮은 수준이었다"며 "공갈젖꼭지를 주기적으로 교체하고 사용 전 점검과 위생 관리를 철저히 하면 충분히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제조사 입장 엇갈려
큐라프록스 제품의 제조사 큐라덴(Curaden)은 결과 통보 직후 제품을 회수하고 환불 조치에 나섰다. 회사 측은 "품질에 대한 약속과 주의 조치의 일환으로 해당 배치(batch)의 공갈젖꼭지를 시장에서 선제적으로 전량 회수하고 모든 고객에게 환불을 제공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반면 소피라지라프의 제조사 뷸리(Vulli)와 필립스는 결과에 이의를 제기했다. 뷸리는 "해당 결과에 대한 공식적인 분석 보고서를 받지 못해 신뢰성을 평가할 수 없다"며 "해당 제품은 이미 단종된 예전 제품이며, 자체 검사에서는 BPA가 검출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필립스 또한 "자사의 모든 제품은 정기적인 검사와 품질 관리를 실시하고 있으며, 세계 최대 시험·검사·인증 전문 기관 데크라(DEKRA)에서 추가 검사를 실시한 결과 해당 제품을 비롯한 제품 전반에서 BPA가 검출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규제 공백 지적…"EU 차원의 명확한 금지 필요"
EU는 2011년부터 아기 젖병에 BPA 사용을 금지했고, 2018년부터는 3세 미만 아동용 식품 용기에도 금지 조치를 확대했다. 하지만 공갈젖꼭지 제품에 BPA를 사용하는 것을 명확하게 금지하는 규정은 없다.
현행 유럽 EN 1400 표준은 BPA가 침으로 용출되는 양을 1kg당 10㎍으로 제한하고 있을 뿐이다. 호프만노바는 "프랑스나 오스트리아 등 일부 국가에서는 공갈젖꼭지 제품에 BPA 함유를 금지하고 있지만, 국가별로 규제가 달라 소비자 보호 수준에 차이가 발생한다"며 "EU 차원의 통일된 규제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