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에 며칠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이틀째 새벽, 시차에 적응해 겨우 잠을 청하려던 찰나에 전화가 울려 잠을 깨웠다.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지내 온, 후배 B와 무려 40분 통화했다.
B는 "추석연휴에 노모를 모시고 고향 인근 도시의 어느 종합병원에서 치매로 요양 중인 아버지 문병 가는 길"이라며, 차 안에서 아버지를 서울의 대학병원이나 요양전문병원 중 어디로 옮기는 것이 좋을지 갑론을박하다 나를 찾았다고 했다. 한마디로 아버지를 서울 자신의 집 가까운 A 대학병원에 입원하도록 도와달라는 요청이었다.
마침 그 아버지가 입원하고 있던 충북의 모 병원은 내가 이전에 한두 번 다녀온 곳이라 대강 알고 있었다. 그가 옮기고 싶어하는 서울의 대학병원 또한 개원 때부터 나와 오랜 인연이 있어 조언과 조력이 어렵지는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여럿 있었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의정 갈등 이후 일반 환자는 대학병원에서 외래 진료와 수술을 받는 것이 쉽지 않다. 입원은 더 어렵다.
필자도 지금 아흔 넷의 어머니가 수년 째 치매 증상과 거동 불편을 겪고 있고 지금 누나 부부의 돌봄을 받고 있지만, 두어 차례 어머니를 요양병원으로 옮기는 것을 두고 가족 간 논쟁이 있었다.
가족 중심의 우리 정서상 요양병원에 입원시키는 것은 '고려장'처럼 여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요양병원은 장례식장 대기 장소 같다는 두려움을 가진 이도 있다. 요양병원이 난립하고 일부에서 환자에 대해 비인권적 대우를 하는 것도 요양병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더해준다. 같은 이유로 우리 가족도 결론을 내지 못했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20%를 넘었다. 웬만한 가정 한 집 건너면 후배 B와 나 같은 고민을 이미 겪었거나 겪고 있을 것이다. B도 자신의 아버지를 지금의 일반 종합병원에서 요양병원으로 옮기는 것에 대해 다소 주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 역시 요양병원이 죽음의 마지막 정류장처럼 느껴지는 것이 가장 큰 부담이다.
조심스럽게 필자는 후배 B에게 "A대학병원 대신 제대로 요양 환자의 상황에 맞는 치료를 할 수 있는 전문 요양병원 가운데 필요시 종합병원을 연계해 치료 받을 수 있는 곳이 더 좋을 것"이라고 말을 건넸다.
그동안 요양병원에 대한 정부의 정책도 달라졌고 요양병원 현장도 변해서 이제는 괜찮은 요양병원이 적지 않다. 지방의 J 요양병원은 누구에게나 권할 수 있을 만큼 신뢰와 믿음이 간다. 그 병원 원장은 내과 전문의로 호흡기 내과 전임의 과정을 마쳤다. 또 원장이 수련한 모교 대학병원과 잘 연계돼 있다. 두 병원은 구급차로 불과 10여 분 거리다.
J 요양병원 원장이 "권역별 응급센터가 '초'를 다투며 생명을 지킨다면 대학병원은 '분'을, 종합병원은 '시간'을, 병원은 '일'을, 의원은 '주'를 그리고 요양병원은 '월'을 다투는 역할과 기능을 한다"는 식으로 쓴 글을 본적이 있다. 당장 급한 중증 치료를 해야 할 환자가 아니라면 요양병원이 훨씬 더 효과적인 선택지임을 알 수 있다.
나는 전화 끝에 B에게 J요양병원을 제안했다. "호흡 재활치료 등 요양 환자별 맞춤형 진료를 제공하고 급한 질환이 발생하면 인근 대학병원으로 옮길 뿐만 아니라 호스피스를 통해 품격 있는 죽음을 맞이하게 돕고 있는 전문 요양병원"이라고 설명했다.
필자는 선친의 예를 들며 절대 연명치료는 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나는 15년 전 암으로 아버지를 떠나 보냈다. 뇌종양 제거 수술과 연명 치료 6개월 후 돌아가신 아버지의 치료 과정 동안 병원 문제를 놓고 적지 않은 논란과 고민이 있었다. 애초 진단한 거주지 병원에서 뇌종양을 제거했고 서울의 대학병원이 아닌 그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임종을 맞으셨다. 마지막 작별 역시 같은 병원의 장례식장에서 마쳤다.
아버지의 연명치료는 뒤돌아보면 참 후회스럽고 차마 못할 일을 한 것 같아 내내 마음이 죄스럽다. 기계와 장비에 메여 생명을 연장하는 연명치료는 품격 있는 죽음 맞이가 아니다. 억지로 생명을 잇는 고통에 대해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두고두고 아버지께 죄송했다. 고인이 된 아버지의 속마음은 알 수 없겠지만, 되살릴 수 없는 목숨을 그렇게 억지로 붙잡고 있었던 것이 안타깝다.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과 남은 가족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품격 있게 죽음을 맞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호스피스와 가족 돌봄이 그 어떤 화려한 병원 시설과 유명 의료진보다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적절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시설과 의료진이 있고, 근처 종합병원 또는 대학병원과 협력이 가능한 요양병원이 환자와 그 가족의 집 가까이 있다면 최상일 것이다. 호스피스 전문 병동이나 서비스가 있다면 금상첨화다.
B와 통화 후 닷새 만에 그의 부친이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받았다. 빈소는 A 대학병원 장례식장이었다. 그에게 나와 통화를 한 뒤 며칠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묻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