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안정된 가정과 커리어를 누리던 46세 여성 엠마 워드는 부모의 연이은 죽음을 견디지 못하고 술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잠들기 전 한 잔으로 시작된 음주가 곧 하루 종일 이어졌고, 결국 몸과 정신이 서서히 무너져갔던 엠마의 이야기를 영국 일간 더선이 소개했다.
엠마는 법학을 전공하고 선덜랜드 시의회 재정 부서에서 근무할 정도로 유능했다. 하지만 병든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직장을 그만뒀고, 부친이 세상을 떠난 뒤부터 슬픔을 잊기 위해 술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처음엔 아이들을 재우고 한두 잔 마셨지만, 점차 낮에도 마셨다. 감정과 고통을 지우기 위해 마시다 보니 병이 깊어졌다"고 말했다. 알코올 의존이 심화되자 구토 중에도 위스키를 마셨고 혈관 확장과 위 출혈, 간 손상 등이 반복되며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 이르렀다.
머리카락이 빠지면서 얼굴에 온갖 각질과 발진 피부 손상이 나타나는 등 신체적으로도 무너졌다. 엠마는 "그땐 진짜 죽을 거라 생각했다. 사진 속의 나는 내가 아니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쾌락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마셨다"며 "하루 중 술이 없으면 손이 떨리고 현실을 견딜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결국 집을 팔고 재활센터에 입소했지만 정신적 회복이 이뤄지지 않아 금주에 실패했다. 전환점은 3년 전 블랙아웃 상태에서 집에서 사고를 당한 이후였다. 병원으로 이송된 그는 의료진에게 폭력을 휘둘렀고, 그 경험을 계기로 "술이 나를 빼앗았다"는 자각을 하게 됐다. 이후 선덜랜드는 중독 회복단체 'NERAF'와 알코올중독자 자조모임 'AA(Alcoholics Anonymous)'에 참여하며 본격적인 회복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엠마는 현재 3년째 완전한 금주 상태를 유지하며, 같은 단체에서 회복 코치로 일하고 있다. 그는 "이 병의 가장 큰 진실은 회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쉽진 않지만 분명 가능하다"고 말했다. 운동과 건강한 식습관을 되찾은 엠마는 "지금은 가족과 집, 직장을 다시 얻었다. 매일이 감사하다"고 덧붙였다. 엠마의 회복은 단순한 개인의 성공담을 넘어, '알코올 중독은 치료 가능한 질병'이라는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알코올 중독은 의지 부족이 아닌 정신·신경학적 질병
알코올 중독은 조용히 사람의 몸과 뇌를 무너뜨리는 '합법적 독'이다. 의학적으로 알코올 중독은 단순한 음주 습관이 아닌, 중추신경계의 구조적·기능적 손상이 동반된 만성 질환으로 분류된다. 미국 국립알코올남용및중독연구소(NIAAA)는 이를 '자신의 의지로 조절할 수 없는 뇌 질환'으로 정의하며, 음주를 멈추려는 시도가 반복적으로 실패하고, 금단 증상이 나타나며, 일상 기능이 손상되는 것이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알코올은 뇌의 보상 회로를 자극해 도파민 분비를 증가시키며 일시적인 쾌감을 제공하지만, 반복적 노출은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억제성 신경전달물질인 GABA와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타메이트의 불균형이 생기면, 음주 중단 시 불안·불면·떨림·발한 등의 금단 증상이 나타난다. 이런 금단 상태를 피하기 위해 다시 술을 마시게 되고, 결국 '갈망–음주–금단–재음주'의 악순환이 형성된다. 이처럼 알코올 중독은 뇌의 신경가소성을 변화시켜, 단순한 의지로는 끊기 어려운 신경생리학적 질환으로 진화한다.
국내 음주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을 웃돈다. 2023년 기준 성인 음주율은 74.8%로, 남성 84%, 여성 65.8% 수준이다. 특히 20~40대 여성의 고위험 음주율은 10년 새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폭음 비율은 남성 72%, 여성 44%로 나타났다. 이러한 문화적 관용 속에서 알코올 중독은 은폐된 사회문제로 자리 잡았다. 국내 알코올 사용 장애의 1년 유병률은 약 9.8%, 평생 유병률은 16.7%에 달하지만, 실제 치료를 받는 비율은 3% 미만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알코올 관련 입원 환자는 최근 5년간 18% 이상 증가했다. 특히 여성 환자의 증가세가 두드러지며 이는 스트레스, 우울증, 사회적 고립감과 관련이 깊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알코올로 인한 사회경제적 손실을 연간 15조 원 이상으로 추정했다. 의료비, 생산성 손실, 교통사고, 범죄비용까지 포함된 수치다.
알코올사용장애 진단 기준 및 지표
진단은 대표적으로 DSM-5 기준이 널리 쓰인다. DSM-5 기준에서는 다음 11가지 항목 중 12개월 내 2개 이상 해당하면 '알코올 사용 장애(AUD)' 진단이 가능하며, 해당 항목 수에 따라 경도, 중등도, 중증으로 분류한다.
△ 술을 더 많이 또는 더 오래 마시게 되는 경우
△ 절주 또는 중단하려는 시도가 반복적으로 실패
△ 술 취하거나 회복되기까지 많은 시간 소요
△ 갈망 또는 강한 음주 충동
△ 직장, 가정, 학업 등 주요 역할 기능의 반복적 장애
△ 사회적·대인관계 문제가 음주로 인해 지속 또는 악화됨에도 불구하고 계속 음주
△ 중요 활동(취미, 사회활동 등)을 포기하거나 축소
△ 위험한 상황에서도 반복적 음주 (운전, 위험 작업 중 음주)
△ 육체적·정신적 문제를 알면서도 음주 지속
△ 내성: 동일량으로는 효과가 줄거나 더 많은 양이 필요
△금단 증상 또는 금단 증상을 피하거나 완화하기 위해 음주
(금단 증상은 떨림, 불안, 발한, 구역, 불면, 경련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