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이 의대 출신 “도쿄서 오라 해도 고향 간다”

천옥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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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10.17. 오후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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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의학 교육 혁신 현장을 가다] (4-2) 자치의대와 지역 의대의 시너지
돗토리대 의대 가미모토 미나코 교수가 돗토리현청과 함께 추진한 트리노스 세미나에서 한 학생이 소감을 발표하고 있다. 노란색 옷이 가미모토 교수. 사진=천옥현 기자


일본 돗토리대 의대에서 지역의료학을 가르치는 가미모토 미나코 교수는 돗토리현 다이센초 출신이다. 그의 고향은 일본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현인 돗토리현에서도 시골이다.

가미모토 교수가 지역 의사를 꿈 꾸게 된 계기가 있었다. 고등학생 시절 할아버지가 다른 도시의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고향에서 모시고 싶었다"는 아쉬움이 그 계기였다.

그가 졸업한 자치의대는 47개 도도부현이 함께 설립한 일본 유일의 공공의대다. '의료의 골짜기에 등불을 켠다'는 건학 정신으로 철저하게 지역 의료 중심 교육을 한다. 가미모토 교수는 대학에서 지역의료 강좌와 선배 의사들의 강연을 듣고 비슷한 생각을 가진 친구들과 기숙사 생활을 하며 '지역을 위해 일한다'는 사명을 가슴에 새겼다.

8월 21일 만난 가미모토 교수는 자신의 이야기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면서도 "자치의대 시절의 경험이 평생 지역의사의 길을 걷는 토대가 됐다"고 말했다.

"자치의대 학생 중에는 공무원이나 교사, 지역 의사의 자녀들이 많습니다. 이들과 6년간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지역을 위해 일한다'는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공유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모두가 지역 의료를 위해 한 뜻으로 모였다는 점에서 자부심과 동료 의식을 키워줍니다."

이렇게 함께 의대 시절을 보낸 동문들은 전국으로 흩어져 각자의 고향을 지키고 있다. 자치의대 동문들이라는 강한 네트워크가 일본 지역 의료를 떠받쳐온 힘 가운데 하나다.

돗토리현의 지원금으로 큰 의사, 다시 돗토리로 오다

가미모토 교수는 자치의대를 졸업한 뒤 9년의 의무 복무 기간 동안 돗토리현립중앙병원과 야즈종합병원, 나카야마병원 등을 거쳤다. 환자로 북적이는 대도시 병원과 거리가 먼 지역 병원들이다.

가미모토 교수는 이들 병원에서 현지 의료진과 소통하고 환자들을 돌보면서 의사로서 하루하루 성장했다고 회고했다. 목소리가 작아 잘 안 들린다며 환자들한테 질책을 받기도 하고, 와줘서 고맙다며 격려도 받았다. 자치의대 출신 중에도 9년간 의무 복무를 마치면 대도시로 떠나는 졸업생도 많다. 하지만 지역에서 일하겠다는 그의 마음은 의무 복무를 하며 더욱 단단해졌다.

"의사로서뿐 아니라 한 사람의 젊은이로 지역 주민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이었죠. 지금도 당시 환자 분들이 편지를 보내주시곤 합니다. 그걸 볼 때마다 초심을 다잡고 그분들을 위해 지금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가미모토 교수는 가정의학 전문의를 취득한 뒤 2018년 돗토리대 의대에서 지역의료학 강좌를 맡았다. 자치의대 시절 품었던 의사로서의 꿈과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지역 의사를 꿈꾸던 고등학생이 이젠 미래의 지역 의사들의 커리어 형성을 돕는 역할을 맡고 있다.

돗토리현의 20대 의사 수가 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는 가미모토 교수. 사진=천옥현 기자


자치의대에서 배우고 돗토리대에서 가르치는 그는 두 학교의 특징을 비교해 설명했다.

자치의대는 사명감과 의무 복무를 전면에 내세운 '집중 교육 모델'이다. 교양 과목을 최소화하고 초기에 의료·지역의료 과정을 집중 이수한다. 졸업생을 임상 교원으로 활용해 학생들을 전국 지역의료 현장에 파견하는 것도 특징이다. 다만 개인의 커리어에 대한 배려는 부족하고 '해야 한다'식의 당위론이 강하게 작용하는 분위기는 과제다.

이에 비해 돗토리대 의대는 일반전형과 지역전형이 약 7대 3의 비율로 공존하는 '혼합 모델'에 가깝다. 점차 지역의료 교육을 강화하고 있는 단계지만 전형에 따라 지역의료에 대한 경험이 다르고 지역전형에 정원을 할당하는 데 대해 일부에서 부정적인 분위기가 있는 게 아쉬운 점이다.

돗토리대 의대의 지역의료학 커리큘럼은 단계적으로 설계돼 있다. 1학년에는 기초 지역의료학을 배우며 현장을 관찰한다. 3학년에는 진단학을 익히며 연구에 참여한다. 4학년에는 가정의학·재택의학·노인의학을 배우고, 5~6학년이 되면 히노병원과 진료소에서 외래·병동 진료와 건강교육을 맡는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단순히 의학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와 함께 지역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을 익힌다.

그는 무엇보다 환자와 직접 마주하는 경험이 학생들의 태도와 진로 선택에 큰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대학병원 실습이 옆에서 지켜보는 견학형이라면 지역의료학 실습은 학생이 주치의로서 환자와 마주하는 체험형 교육"이라며 "이런 경험을 통해 학생들은 책임감을 배우고, 의료인으로서의 자각을 한층 깊이 새긴다. 결국 주민들과 직접 만나고 관계를 쌓는 일이야말로 지역의료학이 지닌 가장 큰 가치"라고 힘줘 말했다.

사람과의 의사소통을 공부하는 독특한 커리큘럼도 있다. 돗토리대 의대에서는 저학년 때 청각장애인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도록 수화를 배운다. 그리고 1·2학년을 대상으로 '휴먼 커뮤니케이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학생들이 소그룹 단위로 나뉘어 예술 활동이나 영화 감상을 통해 타인과 소통하는 방법과 전문직으로서의 태도를 함께 배우고 토론한다. 이런 교육은 의료를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로 이해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의무복무의 벽, 남는 건 30%뿐

그렇다고 일본의 지역의료 제도가 완벽한 상태에 있는 건 아니다. 자치의대와 지역정원 특별제도는 일본 벽지 의료를 지탱해 왔지만, 심지어 자치의대 졸업생조차 의무 복무를 끝낸 후 도시로 나가는 문제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가미모토 교수에 따르면 의무 복무 후 지역에 남는 비율은 20~30%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지역의 작은 병원들에는 후배들을 지도할 허리층 의사가 부족한 실정이다.

돗토리현 의사의 커리어를 관리하는 그에게 있어서도 이런 상황은 큰 고민거리다. 가미모토 교수는 "가정을 우선시하거나 전문성을 추구하는 등 현실적인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단순히 '보람'이나 '사명감'에 기대는 것만으로는 지역의료 체계가 지속되기 어렵다"며 "젊은 의사에게만 지역 근무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상급의들도 지역 병원에 진료·교육 지원으로 나서야 주민이 안심하고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체제가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종합진료의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2018년 신설된 종합진료의 제도는 일본 가정의학과와 유사하지만, 단순 치료를 넘어 퇴원 후 생활·사회 복귀까지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현재 일본에서 종합진료의 비율은 1~2%에 불과합니다. 앞으로는 종합진료의를 늘려 기본 진료를 맡기고, 필요할 때 전문의와 연결하는 체계가 필요합니다."

지역의료 강화가 화두로 떠오른 한국에 던지는 메시지

가미모토 교수의 이야기는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에도 그대로 닿아 있다. 최근 한국에서는 의대생을 지역 의사·공공 의사 전형으로 선발해 면허 취득 후 10년간 의무 복무하게 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지역의료와 공공의료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과 궤를 같이한다. 그러나 단순한 의무복무만으로는 정착 효과가 낮다는 지적이 한국에서도 반복적으로 나온다.

그는 "지역의사 양성을 위해서는 교육 체계 안에서 관계를 형성하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지역 주민과 함께 생활하며 '누군가를 위해 일한다'는 기쁨을 체감하고 현장에서 선배 의사와 만나면서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종합진료·재택의료·다직종 협업 같은 스킬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커리큘럼과 이를 전문의 취득 과정으로 연결하는 제도적 뒷받침도 제안했다.

물론 일본의 제도와 한국의 현실은 다르다. 일본은 초고령 사회로 재택 진료와 다직종 협력이 이미 자리 잡았지만, 한국은 이제 일차의료 강화와 방문진료 확대가 논의되는 단계다. 그러나 방향성에서 두 나라는 맞닿아 있다. 그의 메시지는 단순한 경험담을 넘어 지금 한국이 마주한 공공의대 논의에도 묵직한 함의를 던진다.

"한국의 지역의료 역시 '의무'가 아닌 '희망'으로 선택되는 미래를 맞이하길 바랍니다."

⋅ 인터뷰 통역 및 취재 도움: 조인숙 통역사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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