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과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복근과 이두박근, 탄탄한 몸을 향한 집착이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 SNS 속 '이상적인 남성 몸매'가 표준처럼 자리 잡으면서, 이른바 '벌크업(bulking)'과 '컷팅(cutting)'을 반복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 뒤에는 '비거렉시아(bigorexia)'로 불리는 정신의학적 질환이 숨어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한 미용 추구가 아닌, 사회적 압박과 정체성 불안이 결합된 남성 신체이형장애(Male Body Dysmorphia, MBD) 로 경고한다.
비거렉시아는 자신의 근육이 충분히 크지 않다고 느끼는 강박적 불안으로, 과도한 운동과 단백질 보충제, 스테로이드 남용으로 이어지기 쉽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케탄 파르마 박사는 영국 매체 미러와의 인터뷰에서 "근육이형장애는 단순한 외모 콤플렉스가 아니라, 현대 사회가 만들어낸 문화적 산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 20대 후반 남성 환자는 평균적인 체형이었지만 '더 커져야 한다'는 강박으로 하루 대부분을 헬스장에서 보냈고, 결국 사회적 고립과 불안·우울 증세를 겪게 됐다"고 전했다.
파르마 박사는 "이러한 남성 신체이형장애는 단순한 사춘기 불안으로 치부돼 방치되는 경우가 많지만, 방치 시 정신건강뿐 아니라 호르몬 불균형, 근육 손상, 신경학적 문제까지 초래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원인은 SNS뿐 아니라, 어릴 적 체형과 관련된 괴롭힘이나 낮은 자존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디지털 시대의 남성들은 끊임없이 '이상적 몸'과 비교당하며 왜곡된 자기 이미지를 강화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영국 출신의 라이프 코치 올리 돕슨(27)은 "13살 때부터 운동을 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또래보다 말랐다는 이유로 놀림을 받은 그는 이를 계기로 헬스에 집착했고, 16세 무렵엔 이미 근육질 몸매를 완성했다. 하지만 당시의 자신을 돌아보며 "불안과 열등감이 동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은 '테스토스테론은 해롭다'는 인식에 대한 반발로 오히려 '진짜 남성성'을 추구하는 문화가 강화됐다"며 "남성들은 수염, 근육, 저체지방이라는 상징을 통해 자신감을 얻으려 하지만, 그 출발점이 불안이라면 그것은 건강하지 않다"고 경고했다.
돕슨은 현재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기업가를 대상으로 한 멘탈 코치로 활동하며, "운동은 분명 자기계발에 도움이 되지만, SNS를 통한 비교와 외모 중심의 자기검열은 남성에게 또 다른 정신적 질환을 유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근육에 집착하는 병, '비거렉시아(Bigorexia)' 정신질환의 일종
비거렉시아(bigorexia)는 의학적으로 근육이형장애(Muscle Dysmorphia, MD) 로 불리며, 신체이형장애의 한 유형이다. 자신이 충분히 근육질이 아니라고 믿는 왜곡된 자기 인식이 핵심이며, 실제로는 정상 또는 과도하게 근육질임에도 "더 커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이 질환은 1990년대 학계에서 처음 보고되었고, 현재 ⟪DSM-5⟫에서 공식적으로 신체이형장애의 하위 진단으로 분류된다. 원인으로는 낮은 자존감, 어릴 적 체형 관련 괴롭힘, 사회적 남성성 기준, SNS 속 '이상적 몸매' 노출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비거렉시아 환자들은 과도한 운동과 극단적인 식이조절, 단백질 보충제 및 스테로이드 남용을 반복하며, 이로 인해 호르몬 불균형·간 손상·심혈관 질환·불임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일부는 운동 강박이나 섭식장애로 이어지고, 심한 경우 사회적 고립과 우울증을 겪는다.
의학 연구에 따르면, 청년 남성의 약 6~10%가 근육이형장애 위험군에 속하며, 피트니스 이용자 중 비율은 20%를 넘는다. 치료는 인지행동치료와 약물요법(SSRI계 항우울제) 이 병행된다.
비거렉시아는 단순한 외모 불만이 아닌, 자존감의 결핍과 왜곡된 자기 인식이 만들어낸 정신건강 질환이다. 건강을 위한 운동이 집착으로 변할 때, 근육은 강해져도 마음은 병들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