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 피할 수 없다고 여겨졌던 노안과 황반변성 같은 시력 저하를 되돌릴 수 있는 가능성이 제시됐다. 미국 연구진이 특정 지방산을 눈에 직접 주입해 노화된 동물의 시력을 회복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도로타 스코브론스카-크로치크 안과 박사 연구팀은 노화한 생쥐의 눈에 초장사슬 다중불포화지방산(VLC-PUFA)을 주사해 시력을 개선하고 망막 세포를 젊은 상태로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고 세계적 학술지 《사이언스 중개의학(Science Translational Medicine)》에 발표했다.
VLC-PUFA는 오메가3보다 사슬이 더 긴 지방산으로, 주로 뇌와 망막에 존재하며 세포막을 유연하게 해 시각 및 신경 기능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연 상태에 존재하지 않고 우리 몸 안에서 생성된다.
연구팀은 한 차례 VLC-PUFA를 주입한 뒤 최대 4주간 시력 개선 효과가 지속되는 것을 확인했다. 스코브론스카-크로치크 박사는 "이번 연구는 노화로 인한 시력 감퇴를 실제로 되돌릴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며 "복잡한 유전자 치료 대신 단순한 지질 주입만으로 시력 회복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설명했다.
핵심은 '유전자의 복구'가 아닌 '최종 산물의 보충'이다. 우리 몸에는 ELOVL2라는 유전자가 존재하는데, 이 유전자는 오메가-3 지방산의 일종인 DHA를 원료로 VLC-PUFA를 합성하는 효소를 만든다. 나이가 들수록 ELOVL2의 기능이 떨어지면 망막 내 VLC-PUFA 농도가 줄어들고, 시력 저하나 황반변성 같은 노인성 안질환이 나타난다.
연구팀은 이 유전자를 되살리는 어려운 방법 대신, ELOVL2가 만들어야 할 최종 산물(VLC-PUFA)을 직접 주입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 결과 늙은 생쥐의 시력이 뚜렷하게 개선됐으며, 망막 세포의 구조적·기능적 노화 지표 또한 젊은 상태로 회복됐다. 스코브론스카-크로치크 박사는 "이번 결과는 노화된 시각세포를 되살리는 '역노화'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흥미로운 점은 눈에 좋다고 알려진 오메가-3 지방산인 DHA만으로는 같은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DHA를 단독으로 주입했을 때 시력 개선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스코브론스카-크로치크 박사는 "DHA만으로는 효과가 없다는 점이 분명해졌다"며 "VLC-PUFA가 노화된 눈의 기능을 되돌리는 핵심 역할을 한다는 것을 분자 수준에서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는 흔히 알려진 대로 단순히 영양제 형태로 오메가-3를 섭취하거나 오메가-3가 풍부한 생선을 자주 섭취하는 것만으로는 노화로 인한 시력 저하를 막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연구팀은 추가로 ELOVL2 유전자의 특정 변이가 황반변성의 진행 속도와 연관돼 있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스코브론스카-크로치크 박사는 "황반변성과 노화 사이의 유전적 연결 고리를 확인했다"며 "이 정보를 통해 시력 상실 위험이 높은 사람을 조기에 선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반변성은 국내외에서 실명 원인 1위로 꼽히는 질환이다. 이번 연구가 향후 임상시험을 거쳐 사람에게 적용된다면, 전 세계 수억 명의 시력 저하 환자에게 새로운 치료 가능성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