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조용하고 침착하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저를 못 알아보시고, 다짜고짜 호흡기 줄을 빼려 하셨어요. 사리에 맞지 않는 엉뚱한 말씀까지 하셔서 정말 놀랐습니다"
척수염으로 입원한 70대 중반 여성 환자의 보호자 김모(42·여·서울 강남구)씨가 최근 병실에서 겪은 충격적인 상황이다. 평소 인지기능에 특별한 문제가 없던 환자가 입원 후 갑작스럽게 인식 장애와 행동 변화를 보이면, 가족은 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노인 환자의 섬망 예방을 위한 다양한 비약물적 중재(약물 복용 외 치료)가 시도되고 있다. 최근 미국 인디애나대 의대 연구 결과에 따르면 템포가 느리고 편안한 음악을 중환자실 환자에게 들려주는 방식은 섬망의 지속 기간이나 중증도를 줄이는 데 뚜렷한 효과를 보이지 않았다. 당초 예상과 달랐다. 이들 환자는 기계적 인공호흡을 받고 있었다. 연구팀은 음악의 개인적 선호나 중재 방식의 정교함을 향후 연구에서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연구 결과(Slow-Tempo Music and Delirium/Coma-Free Days Among Older Adults Undergoing Mechanical Ventilation: A Randomized Clinical Trial)는 《미국의사협회 내과학 저널(JAMA Internal Medicine)》 온라인판에 13일(현지시간) 발표됐다.
섬망은 급성으로 발생하는 인지기능 장애다. 시간·공간·사람에 대한 인지능력인 지남력(Orientation)이 떨어지고 환각, 착란, 과잉 행동, 무반응 등 증상이 함께 나타날 수 있다. 입원한 65세 이상 환자의 약 10~15%가 섬망을 경험한다. 특히 중환자실에 입원한 노인 환자는 약 75%가 섬망 증상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척수염 등 중추신경계 감염 환자, 항생제 복용 환자…65세 이상 섬망 위험 높아"
최근 항생제 복용과 섬망의 연관성이 주목받고 있다. 나이든 사람은 생리적으로 약물에 민감하다. 뇌 기능의 예비력이 감소하고, 간·신장의 대사 능력이 떨어져 약물이 중추신경계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기 때문이다. 세팔로스포린계 항생제(세프타지딤, 세페핌, 세프트리악손 등)를 복용한 고령자는 혼동, 방향감각 상실, 환각, 섬망 등 신경학적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적지 않다.
특히 척수염 등 중추신경계 감염으로 입원한 환자가 섬망을 겪을 확률은 매우 높다. 이런 병 자체가 뇌 기능에 영향을 주는 데다, 항생제의 신경독성까지 더해지면 위험은 더욱 높아진다. 입원 환경, 통증, 수면 부족, 낯선 의료진과 장비 등도 섬망을 일으키는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섬망은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한다. 전해질 불균형, 저산소증, 저혈압, 여러 가지 약을 함께 복용하는 경우, 기저질환 등은 대표적인 위험 요인이다. 특히 진정제, 항콜린제(부교감신경을 억제하는 약), 수면제 등이 병용되면 위험이 더욱 높아진다. 인지기능에 영향을 받는 치매, 파킨슨병, 뇌졸중 등 환자도 섬망에 매우 취약하다.
다행히 섬망은 예방할 수 있다. 특히 나이든 환자에게는 비약물적 중재가 매우 효과적이다. 병실에 시계, 달력, 가족 사진 등을 갖춰놓고 환자가 시간·공간·사람을 인식할 수 있게 돕는 게 좋다. 의료진이나 간병인이 환자에게 이름과 날짜를 자주 알려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섬망을 일으킬 위험이 있는 약물의 복용을 가급적 줄이고, 대체할 약물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 국내 상급종합병원에서는 전체 항생제 사용량 가운데 약 70~80%를 주사제 형태로, 약 20~30%를 경구 항생제 형태로 투여한다. 항생제 투여 시에는 콩팥 기능과 나이를 고려해 용량을 조절해야 한다.
섬망을 줄이는 데는 수면 환경도 중요하다. 병실을 조용하고 어둡게 유지하고, 밤에는 불필요한 자극을 줄이는 게 좋다. 수면 부족은 섬망을 일으키는 주요 요인에 속한다. 수면 리듬을 유지하는 게 중요한 까닭이다. 탈수는 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으니 수분을 충분히 섭취하고 균형 잡힌 식사를 해야 한다. 가능한 한 침상에서 일어나 걷거나 움직이면 인지기능 유지에 도움이 된다.
섬망은 환자의 생명과 회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의료 안전 문제로 봐야 한다. 따라서 예방과 조기 대응이 핵심이다. 특히 항생제를 투여받는 나이든 환자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중재가 필요하다. 섬망은 가족의 관심과 협력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다.
[자주 묻는 질문]
Q1. 섬망은 치매와 어떻게 다른가요?
A1. 섬망은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인지기능 장애로, 시간·장소·사람에 대한 인식 저하와 혼란, 환각, 과잉 행동 등이 특징입니다. 반면 치매는 서서히 진행되는 만성병입니다. 섬망은 조기 치료로 회복이 가능하지만, 치매는 진행을 늦추는 것이 치료의 목표입니다.
Q2. 항생제가 섬망을 일으킬 수 있나요?
A2. 네. 특히 고령자는 약물에 민감해 항생제의 신경학적 부작용(혼동, 환각, 섬망 등)에 취약합니다. 세팔로스포린계 항생제는 섬망과 연관된 사례가 보고된 바 있으며, 투여 시 연령과 신장 기능을 고려한 용량 조절이 필요합니다.
Q3. 섬망은 어떻게 예방할 수 있나요?
A3. 약물 외 치료(비약물적 중재)가 효과적입니다. 병실에 시계, 달력, 가족 사진을 갖춰놓고 의료진이나 가족이 이름과 날짜를 자주 알려주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수면 환경을 조성하고, 수분 섭취와 가벼운 움직임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약물 복용 시에는 섬망 유발 가능성을 고려해 신중히 선택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