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깃만 스쳐도 ‘악’…칼로 베는 듯한 통증, CRPS를 아시나요?

김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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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진단과 통합적 치료 중요… 주변의 오해와 편견이 더 큰 상처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의 극심한 통증이 특정 부위에 계속된다면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을 의심해야 한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넘어져 가볍게 무릎이 까졌을 뿐인데, 몇 달이 지나도 다리가 타는 듯한 고통이 이어진다. 옷깃이 살짝 스치기만 해도 칼로 베는 듯한 통증에 악 소리가 나온다. 바로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 환자들이 겪는 현실이다.

골절이나 염좌 같은 비교적 가벼운 외상 이후, 혹은 뇌졸중이나 심근경색 같은 심각한 질병을 앓고 난 뒤 설명할 수 없는 극심한 통증이 특정 부위에 계속된다면 이 병을 의심해야 한다.

이미순 순천향대 부천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교수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의 주요 증상은 자극이 없어도 통증이 나타나는 '자발통', 옷깃만 스쳐도 심한 통증이 느껴지는 '이질통', 통증이 과도하게 증폭되는 '감각 과민' 등이 있다"고 설명했다.

환자들은 통증뿐 아니라 다양한 증상을 복합적으로 겪는다. 아픈 부위의 피부색이 붉거나 파랗게 변하고, 체온이 변하며 땀이 비 오듯 쏟아지기도 한다. 팔다리가 퉁퉁 붓고, 근력이 약해지며 관절이 뻣뻣하게 굳어 움직임조차 어려워지는 경우도 많다.

6개월 이내 치료 시작해야 예후 좋아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손상된 신경의 과도한 흥분, 교감신경계의 오작동, 만성적인 염증 반응, 뇌의 비정상적인 통증 기억 형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원인이 복잡한 만큼 진단도 까다롭다. 말초신경병증이나 류마티스 관절염 등 다른 질환과 증상이 비슷해 오진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확정 진단을 내릴 수 있는 단일 검사법이 없어, 환자의 증상과 경과를 종합적으로 살피고 여러 보조 검사를 통해 다른 질환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진단한다.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은 발병 후 6개월 이내 치료를 시작해야 예후가 좋다. 이 교수는 "치료가 늦어지면 뇌의 통증 회로가 굳어지고, 관절 강직, 골다공증 같은 구조적 변화가 생겨 회복이 어려워진다"며 조기 진단과 치료의 중요성을 거듭 경고했다.

치료는 약물치료, 신경차단술, 재활치료, 심리치료 등 여러 방법을 동원한다. 난치성 통증엔 척수신경자극술을 활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환자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통증 그 자체가 아닌, 주변의 차가운 시선이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다 보니 "꾀병 아니냐", "정신적으로 예민한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 일쑤다. 이런 편견은 환자를 더 큰 스트레스와 심리적 고립으로 내몬다.

이 교수는 "복합부위통증증후군은 신경계 기능 이상으로 발생하는 질환이다. 환자에게 정확한 질환 설명과 공감, 사회적 지지가 필요하다"며 "의료진은 단순한 통증 치료를 넘어 환자의 재활과 삶의 질까지 고려한 통합 치료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치료 목표는 '일상 회복'

환자 중 약 70~75%는 증상이 호전되지만, 25~30%는 장기적인 통증과 기능 저하가 남을 수 있다. 완전한 통증 소실은 어렵지만, 꾸준한 치료를 통해 일상생활이 가능한 수준까지 회복하는 것이 현실적인 치료 목표다.

이 교수는 "고통스러운 질병이지만 희망이 없는 병은 아니다"라며 "조기에 진단받고 전문 의료진과 함께 치료 계획을 세운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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