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올해 노벨생리의학상 ‘말초 면역관용’ 이론, 의료현장 임상적 응용은?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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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10.07. 오전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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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헬스]
올해 노벨생리의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된 일본 의사과학자 사카구치 시몬 오사카대 특임교수가 10월 6일 오사카부 스이타시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 도착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들에게 상을 안겨준 '말초 면역관용(peripheral tolerance)'은 의학적 이론을 넘어 실제 의료현장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연구 분야로 꼽힌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결정하는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는 6일 미국 시애틀 시스템생물학 연구소의 선임매니저인 메리 브렁코(64)와 소노마 바이오테라퓨틱스의 프레드 램스델(65), 그리고 일본 오사카대의 사카구치 시몬(坂口志文·74) 특임교수가 수상자로 결정됐다고 밝혔다. 수상자들은 면역체계가 인체 조직까지 공격하는 면역 폭주 현상을 제어하는 '말초 면역관용(peripheral tolerance)'의 원리를 밝힌 공로로 상을 받게 됐다.

자가면역질환·알레르기·장기이식거부반응·항암 등 응용

수상자들의 업적은 기본적으로 면역 반응의 폭주를 정지시켜 면역 체계가 인체 조직을 공격하지 않도록 제동을 걸어주는 '제어(조절) T세포'를 발견한 것이다.

인체의 면역기능은 박테리아·바이러스 등 이물질을 제거해 질병을 막거나 원인을 제거하는 역할을 하지만, 어떤 원인으로 과잉 반응해 병원체가 아닌 자기 조직 등을 공격하기도 한다. 제1형 당뇨, 류머티스 관절염, 전신홍반성 루푸스 등 자가면역질환이나 꽃가루 등에 과잉 반응하면서 나타나는 알레르기 등이 여기에 이에 해당한다. 말초 면역관용의 원리 규명이 각종 자가면역질환과 알레르기에 대한 새로운 임상 치료법이나 치료 의약품 개발로 이어지는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뿐만 아니라 이를 응용하면 장기이식 거부반응 억제를 위한 의약품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원리를 역이용하면 인체 면역체계가 자신 대신 암세포만을 공격하는 면역항암요법제 등을 개발할 수 있다.

"암도 고칠 수 있는 시대 올 것" 스타트업 레그셀 세워 치료법 개발

사카쿠치 교수는 6일 오사카(大阪)부 스이타(吹田흠)시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말초 면역관용의 원리를 설명하면서 "암도 고칠 수 있는 시대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기대를 나타냈다. 그는 이미 2016년 관련 연구성과의 실용화를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 오사카대 스타트업인 레그셀(Regcell)을 설립해 이사를 맡고 있다. 사카구치 박사는 이 회사에서 '과학적 창업자'로 불린다.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 회사는 말초 면역관용의 기초연구 성과를 활용해 류머티스성 관절염, 제1형 당뇨, 다발성 경화증, 루푸스, 궤양성 대장염을 포함하는 100종 이상의 자가면역성 질환의 임상 치료법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 임상 차원에서는 자가면역질환에 대한 뚜렷한 치료법이 없으며 단지 증상을 관리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레그셀은 자가면역질환 환자의 장기적 면역관용을 복구해 증상 완화를 넘어 궁극적인 면역 균형을 실현함으로써 해당 질환을 다루는 방식을 궁극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알리고 있다. 이 회사 홈페이지는 지난 3월 4580만달러(약 640억원)의 투자를 확보했다고 밝히고 있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가 10월 6일 2025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를 발표하고 이를 대형 화면에 띄우고 있다. 왼쪽부터 미국의 메리 브렁코, 프레드 램스델, 그리고 일본의 사카구치 시몬. [AP=연합뉴스]


제어 T세포를 통한 말초 면역관용의 원리

말초 면역관용은 각종 알레르기 유발물질과 장내 미생물 등에 대한 면역계의 폭주에 브레이크를 걸어 자기 조직에 대한 공격을 비롯한 과잉반응을 막아주는 면역관용(immune tolerance)의 일종이다. 면역관용은 벌어지는 부위에 따라 가슴샘(흉선)과 골수에서 나타나면 중추관용(central tolerance)으로, 림프절 등 다른 조직에서 벌어지면 말초관용으로 각각 나뉜다. 중추관용은 면역계가 자기(self)와 비자기(non-self)를 구별하도록 가르치는 역할을 한다면, 말초관용은 신체에서 과도한 면역반응을 막고 정상생리를 유지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사카구치 교수가 발견한 제어 T세포는 말초관용에 작용, 자기 조직에 대한 비정상적 면역 반응을 억제해 자가면역질환을 막아준다. 인체의 면역관용이 부족하면 자가면역질환이 발병할 수 있다.

사카구치 교수, 면역 연구 몰두 의사 과학자

아사히(朝日)·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사카구치는 1980년대 교토(京都)대 의대 재학 중 관련 연구를 시작했다. '가슴샘(흉선: 면역에서 중요한 T세포를 성숙시키는 기관)을 제거한 쥐가 자가면역질환 유사증상을 보인다'는 연구 보고를 접한 뒤 흥미를 느낀 것이 계기였다. 사카구치는 면역세포의 하나인 T세포 중에는 면역 폭주에 제동을 거는 특수한 종류가 존재한다는 가설을 세우고 연구를 계속했다.

초기에는 학계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연구비 지원도 제대로 받지 못한 비주류 과학자로 통했다. 하지만, 끈기있게 연구를 지속한 결과 특수 T세포를 제거한 나머지 T세포군을 쥐에게 이식한 동물실험에서 자가면역질환 발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통해 특수 T세포의 존재를 확인한 사카구치는 1995년 이를 학계에 발표하면서 여기에 '제어 T세포(Treg)'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뒤 추가 연구로 기능까지 상세히 밝혔다.

공동 수상자인 분자생물학자 겸 면역학자 브렁코와 면역학자 램스델은 자가면역 질환에 관여하는 Foxp3라는 유전자를 발견했다. 사카구치는 이를 바탕으로 Foxp3가 제어 T세포의 성장을 조절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카구치 교수는 1976년 교토대 의대를 마치고 1983년 모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의사과학자다. 미국 스탠퍼드대와 도쿄도 노인종합연구소 연구원 등을 거쳐 1999년 교토대 재생의과학연구소 교수가 됐다. 2011년 오사카대로 옮겨 면역학 프론티어 연구센터 교수를 거쳐 2016년부터 특임교수를 맡고 있다.

일본의 30번째 노벨상…과학 분야에선 26번째

니케이에 따르면 일본 출신자의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은 1987년 교토대 출신의 미국 MIT 교수였던 도네가와 스스무(利根川進)를 시작으로 이번이 6명째다. 전체 자연과학분야 수상자는 1949년 교토대 출신 유카와 히데키(湯川秀樹의)의 물리학상 수상 이래 26명째(미국 국적 포함)다. 2명의 문학상(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 1994년 오에 겐자부로)과 2차례의 평화상을 포함하면 이번이 일본의 30번째 노벨상 수상이 된다.

교토대 홈페이지는 이번까지 역대 일본 출신 노벨상 수상자 중 졸업생 9명과 타교 출신 교직원(경력자 포함) 4명을 포함해 13명이 관련자라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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