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내과는 뭘 하냐고요? 시니어들 노쇠 치료해요”

장자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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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백지연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노년내과는 한 마디로 '노쇠한' 환자를 치료하는 곳이다. 백지연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사진)는 "고령 환자에게는 기저질환의 개수나 연령보다도 노쇠함이 더 큰 영향을 끼치곤 한다"고 설명했다. 사진=장자원 기자


평소 건강에 관심이 많은 A씨(73세)는 언제나처럼 정기 외래진료를 위해 대학병원 내과를 찾았다. 그런데 문득, 다른 날에는 눈에 띄지 않던, 생소한 느낌의 진료과 안내가 눈에 들어왔다. 노년내과.

내과 진료가 필요한 A씨는 노년내과로 가야 하는지 궁금해졌다. 노년내과는 노인들을 위한 내과일까?

이에 대해 백지연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노년내과는 '노쇠함'을 치료하는 진료과"라고 소개한다. 내분비내과 전문의 출신의 백 교수는 이 병원 노년내과 발전에 기여해온 의료진 중 한 명이다.

노년내과, 어떤 곳일까?

"고령층 환자들을 진료하는 곳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노년내과의 핵심은 노쇠한 환자의 노쇠 지표를 개선하는 것이에요. 노년기가 되면 단순히 나이나 기저질환의 개수보다는 노쇠 정도가 환자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죠."

최근 코메디닷컴과 만난 백 교수는 노년내과를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노쇠'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했다. 노쇠는 신체의 내외부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나 변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여력을 잃은 허약한 상태다. 즉 나이가 들면서 생길 수 있는 정상적인 노화 수준보다 더 기능이 떨어지면 '노쇠했다'고 표현한다.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는 환자가 얼마나 노쇠한지를 판단하기 위해 '노인포괄평가'라는 검사를 활용하고 있다. 이 검사는 기저질환, 신체능력 수준, 영양상태, 인지기능 수준, 보행속도, 복용하는 약의 수 등 약 50개의 건강 요인을 종합적으로 살핀다. 이 중 4분의 1 이상에서 문제가 발견되면 '환자가 노쇠하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노년내과 진료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투입돼요. 노쇠한 환자는 다양한 측면의 평가와 개입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반 진료보다 시간이 오래 걸릴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약물 관리 하나만 다루는 데에도 30분 넘게 걸리곤 하죠."

백 교수는 "노쇠는 굉장히 복잡한 기능 중심의 개념이기에 현실적으로 입원한 모든 노인 환자들에게 노인포괄평가를 전면 시행하기는 어렵다"고 털어놨다. 이 때문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는 원내에서 '시니어환자관리팀(ACE, Acute Care for Elders)'을 운영하며 입원 환자 진료를 확장하고 있다.

ACE는 노년내과 주도로 여러 진료과나 의료종사자가 협력하는 팀으로, 환자의 질병 뿐만 아니라 기능·약제·재활·사회적 돌봄 등 다양한 영역을 함께 관리한다. 복용하는 약이 20개를 넘어가는 환자에게는 처방약 개수를 줄이고, 보행 능력이나 하체 근력이 떨어지는 환자에게는 재활 프로그램을 연계하고, 퇴원 이후 돌봄이 부족한 환자에게 사회복지 상담을 지원하는 식이다.

큰 수술 앞둔 노인들…노년내과 상담을

전 세계에서 '노쇠'나 '노년내과'의 개념이 가장 발달한 나라는 캐나다다. 고령의 암환자가 항암치료를 시작하기 전, 반드시 노년내과와 상담을 거쳐 노쇠 정도를 평가받도록 하고 있다.

암 관리의 국제적 표준 지침을 제시하는 미국 종합암네트워크(NCCN)의 가이드라인에서도 노년층의 암 관리를 위해 노인포괄평가 검사 결과를 활용하도록 권고한다. 유럽종양학회(ESMO)도 점차 이를 반영하는 추세다.

글로벌 종양학계에선 이미 노년내과와 활발한 협업을 장려하는 것이 트렌드로 자리잡은 셈이다. 서울아산병원 역시 주요 수술을 앞둔 고령 환자에게 노인포괄평가를 통해 노쇠도를 사전에 평가하고 있다. 해당 환자가 수술을 안전하게 견딜 수 있을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특히 간담췌외과와의 협업이 활발하다. 노년기 환자의 건강 상태는 매우 다양해 기존의 의학적 지표만으로는 수술의 위험도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때 노쇠도 평가는 이러한 임상 현장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실제로 백 교수는 "간담췌 수술에서 노쇠 지표가 높은 환자의 예후가 더 좋지 않다는 연구 결과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노년내과, 대형병원이 아니어도 운영할 수 있을까?

국내에 노년내과가 설치된 병원은 현재 10곳 미만으로 알려진다. 고령 환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상황에서 노년내과의 역할과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더 커질 예정이다.

백 교수는 "노년내과가 전국적으로 확대되려면 제도적 기반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수가 제도를 개편하고 노년내과 전문의를 정식 전문의 자격(보드)으로 인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도 개편을 통해 지역의 거점 병원들에서도 노년내과가 자리 잡는다면 더 많은 환자들이 적시에 진료를 받는 환경이 마련되겠죠."

환자들이 더 쉽게 노년내과를 찾을 수 있도록, 보다 쉬운 설명을 부탁한다는 기자의 질문에 백 교수는 "의학적으로 노쇠하다는 개념이 환자 분들께 와 닿지 않을 수 있다"며 "혹시 걷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졌거나 일상적인 활동이 힘들어졌다고 느끼신다면 상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복용 중이신 약이 10가지 이상으로 늘어났다면 약물 부작용이나 상호작용 위험 때문에 점검이 필요한 상황이다. 반복적인 낙상, 체중 감소, 기억력 저하 같은 변화를 겪고 있는 어르신도 노년내과에서 다양한 도움을 드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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