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툴리눔 톡신의 국가핵심기술 지정 해제 여부를 놓고 업계의 공방이 국회에서 벌어졌다. 지정에 실익이 없고 해외 수출에 제한만 된다는 주장(해제론)과 국가 안보 측면에서 무방비 상태가 될 수 있다는 주장(유지론)이 맞섰다.
29일 국회에서 열린 'K-바이오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가핵심기술 보호제도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발제자로 나선 이승현 건국대 의대 미생물학교실 교수는 "보툴리눔 톡신은 독보적인 기술도 아닌데 국가핵심기술이라는 이유로 수출 시 많은 검증을 해야 한다"며 "여러 기업들이 보유한 쉬운 기술인만큼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국가핵심기술은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산업기술유출방지법)에 따라 13개 분야 76개 기술이 지정돼 있다. 보툴리눔 톡신은 2010년 생산기술이, 2016년에는 균주(세부 개체군)가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됐다.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되면 수출이나 국제 공동연구 및 기술협력 등에 제약을 받는다. 업계는 수출 승인에 평균 74일, 최대 12개월이 소요되며 이로 인한 연간 수출 지연 손실은 약 1000억원으로 추정한다. 현재 보톡스 시장에서 국내 기업들의 해외 시장 점유율이 낮은 것도 이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보툴리눔 톡신 1등 기업인 애브비(AbbVie)의 '보톡스'가 70%를 점유하고 있고, 국내 메디톡스와 대웅제약, 휴젤 등이 총 5~1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툴리눔 톡신을 무기화할 경우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문제없다'는 답변이 나온다. 국내 보툴리눔 톡신은 산업기술유출방지법 외에 대외무역법, 생화학무기의 금지 및 특정 생화학물질 등의 규제에 관한 법률,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등 7개 법령에서 6개 부처의 관리를 받는다. 이미 중첩규제로 관리되고 있다.
토론회의 또 다른 발제자인 이상수 한국시민교육연합대표는 국가핵심기술 지정 해제를 업계 선두업체들이 반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시민교육연합이 보툴리눔 톡신의 국가핵심기술 해제를 위한 업계 설문조사 결과, 18개 기업 중 메디톡스와 뉴메코, 휴젤 등 3개 기업만 반대입장을 보였고, 14개 기업 찬성, 1개 기업 무응답이었다. 앞서 2024년 1월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설문조사 결과(17개 기업 중 4개 기업 반대, 1개 기업 중립)와 거의 비슷하다.
이 대표는 "선두주자는 품목허가를 받고 수출 문제도 해결하는 등 시장 지배력을 확보한 상황에서 기득권 유지를 위해 국가핵심기술 해제를 반대하고 있다"며 "반면 후발주자인 제약사, 신생 바이오 업체는 인허가, 임상연구에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어, 규제를 개선해 줘야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초청받지 않은 유지론자, 객석에서 목소리
토론회에는 보툴로눔 톡신의 국가핵심기술 지정 해제를 요구하는 전문가들이 주로 발제자·토론자로 참석했다. 이 때문에 이번 토론회가 한쪽으로 편향됐다는 지적이 나온 가운데, 보툴리눔 톡신의 국가핵심기술 유지를 주장하는 업계 관계자들이 플로어에서 목소리를 냈다.
메디톡스 법률대리인인 박정수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는 "발제자들은 균주를 쉽게 구매해 만들 수 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며 "그렇게 쉽다면 왜 전 세계에 소수의 기업만 상업화해서 팔고 있느냐"고 반문했다.
국가안보 측면에서 지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박 변호사는 쌍용자동차 사례를 언급하며 "중국 회사들이 우리 영세업체들을 인수합병(M&A)하는 방식으로 기술을 빼가고 버려질 수 있다"며 "또 북한의 (바이오 기업에 대한) 해킹 시도가 있었던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휴젤에서 보안업무를 담당하고 있다고 소개한 안진용 고문도 국가안보상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안 고문은 지난해 북한 해커로부터 해킹 침해를 받은 사실을 언급하면서 "휴젤이 보안시설을 잘 구축해서 국가핵심기술은 빼가지 못했는데, 국가핵심기술 지정이 단순히 수출을 막는 것이 아니라 기술 유출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북한 해커가 들어와 기술을 탈취한다면 사양산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국가핵심기술 해제 논란이 불거진 것은 대웅제약과 메디톡스 간 소송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 변호사는 "메디톡스의 균주화 제조기술이 국내 기업에 침탈돼 수사와 소송도 진행 중인데, 이런 상황에서 보툴리눔 톡신의 국가핵심기술 지정이 잘못됐다는 주장을 침탈 업체가 하고 있다"며 "그렇게 해야 법적 책임이 경감되기 때문인데, 토론회가 재판과 수사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국내 최초로 자체 개발한 보툴리눔 톡신을 상용화한 메디톡스는 2016년 대웅제약이 자사 균주와 제조기술을 탈취했다고 주장하면서 두 회사간 갈등이 시작됐다. 미국에선 대웅제약과 메디톡스 간 분쟁이 종결됐으나 한국에서는 민형사 소송이 마무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