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달부터 미국에 수출하는 의약품에 대해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이에 셀트리온 등 의약품 관세에 선제 대응한 기업들은 비교적 한숨을 돌린 반면 그렇지 않은 기업들은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각) 트루스소셜을 통해 "10월 1일부터 미국 내에서 의약품 제조공장을 건설 중인 경우를 제외하고, 모든 브랜드의약품과 특허의약품에 대해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여기서 '건설 중'이란 착공하거나 공사가 진행 중인 상태를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단순히 '앞으로 짓겠다'는 계획만으로는 관세를 피할 수 없다는 의미로 사실상 미국에 공장을 세우지 않으면 관세 폭탄을 피하기 어렵다는 압박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미국에 의약품을 수출하는 한국 기업들은 직간접적인 영향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에서 신약을 판매하거나 글로벌 CDMO(위탁개발생산)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 보툴리눔 톡신 등 대미(對美) 매출이 큰 업체들이 사정권에 들어 있다. 미국은 한국 의약품 수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시장으로, 지난해 대미 수출액은 약 14억9000만달러(약 2조원)였다.
이런 상황에서 셀트리온의 절묘한 대미 투자 타이밍에 시선이 쏠린다. 셀트리온은 지난 20일 미국 일라이릴리 공장 인수 계약을 최종 체결했고, 23일 이를 공식 발표했다. 인수금과 초기 운영비를 포함해 약 7000억원을 투입하고, 유휴 부지에 7000억원 이상을 들여 추가 생산시설을 짓는 등 총 1조4000억원 규모 투자 계획을 내놨다. 이로써 셀트리온은 미국 정부의 '관세 폭탄'을 불과 며칠 앞두고 선제적으로 대응해 방어벽을 확보한 셈이다. 그간 셀트리온은 미국에서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짐펜트라(램시마SC)와 여러 바이오시밀러를 판매하면서 관세 리스크를 떠안고 있었다.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은 "셀트리온은 미국 내 단기 재고 확보, 현지 CMO와의 계약, 자체 공장 마련까지 완료해 관세 이슈를 모두 해소했다"며 "관세는 이제 상수이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투자하면 반드시 비즈니스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했다.
SK바이오팜도 비교적 여유가 있다. 뇌전증 치료제 '엑스코프리'로 미국에서 연간 수천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SK바이오팜은 이미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현지 생산 파트너를 확보해 미국 현지 생산 체제로 전환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 뒀다. 지난해 혈액제제 알리글로를 미국에 출시한 GC녹십자그룹은 미국 자회사 메이드사이언티픽을 통해 뉴저지에 의약품 제조시설을 확보했다.
CDMO 업계는 희비가 엇갈린다. 트럼프가 관세 부과 대상으로 혁신·브랜드 의약품을 지목한 만큼 CDMO 기업이 직접 관세를 내지는 않지만, 고객사들이 타격을 입으면 위탁생산사로 압박이 전가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위탁 단가 인하를 요구하거나 생산 거점을 미국으로 옮기려는 움직임이 나올 수 있다. 롯데바이오로직스는 미국 시러큐스 공장을 보유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아직 구체적인 대응책을 밝히지 않은 상태다. 이 회사 관계자는 "세부 내용을 확인 중"이라고 했다.
보툴리눔 톡신 기업들도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휴젤 레티보와 대웅제약 나보타(미국 상품명 주보) 등은 한국에서 생산돼 미국으로 수출되는 브랜드 의약품이다. 두 제품은 '보톡스보다 저렴하다'는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점유율을 넓혀왔는데 관세가 붙으면 경쟁력이 약화될 수 밖에 없다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관세가 특정 회사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므로 경쟁 구도 자체가 달라질 가능성은 적다는 목소리도 있다.
휴젤 관계자는 "미국 내 보툴리눔 톡신 유통사의 대부분이 완제품을 수입하는 구조라 경쟁 측면에서는 모두 같은 조건"이라며 "향후 구체적인 관세 정책과 업계 대응에 따라 추이를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대웅제약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바이오협회는 자료를 내고 "브랜드의약품과 특허의약품에 대해 관세를 부과한다고 했으므로 바이오시밀러와 제네릭의약품은 제외할 수 있다"며 "다만 브랜드의약품에는 오리지널의약품 이외에 브랜드제네릭이 포함될 수 있어 바이오베터와 개량신약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10월 1일부터 1년~1년 반 유예기간 없이 바로 시행될 지, 유럽과 일본 등 기존 무역협정에서 합의한 국가에는 15% 관세가 적용될지, 최혜국 대우를 적용받기로 구두 합의된 한국에도 15% 관세가 적용될 지도 아직 미정"이라며 "세부 내용이 10월 1일 이전에 발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