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식품, 35년 만에 '우지 라면' 부활...'정통성 회복' 카드 꺼낸다

이유리 기자
입력
수정 2025.10.22. 오후 5:06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삼양식품이 1963년 국내 최초로 출시한 인스턴트 라면. 우지(소기름)로 튀긴 면과 10원이라는 가격으로 대중화에 불을 지폈다. /사진 제공=삼양식품
삼양식품이 우지를 사용한 '삼양라면'을 35년 만에 다시 내놓는다. 불닭의 글로벌 흥행으로 브랜드 신뢰를 회복한 만큼 '원조라면'이라는 서사와 향수를 더해 국물라면 시장에서 차별화를 노리겠다는 전략이다. 팜유에 익숙한 소비자들에게 우지 특유의 풍미가 차별화 요소로 작용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22일 유통 업계에 따르면 삼양식품은 다음 달 '삼양라면 1963'을 정식 출시할 예정이다. 이 제품은 1963년 국내 최초의 라면으로 출시됐던 삼양라면의 원형을 재해석한 것으로 면은 우지(소기름)에 튀기고 우골(소뼈)로 우린 국물에 액상수프를 더했다.

일반적으로 라면은 팜유로 튀기지만 삼양식품은 풍미를 살릴 수 있는 우지를 사용해 차별화를 시도했다. 우지가 팜유보다 비싼 점을 반영해 신제품은 1봉지에 1500원 수준의 프리미엄 국물라면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우지 사태' 트라우마 정면돌파
이번 행보는 회사 역사상 최대 위기였던 '우지 사태'를 정면돌파하며 신제품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파격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삼양식품은 1963년 고(故) 전중윤 명예회장이 국내 식량난 해결을 위해 개발한 삼양라면으로 국내 최초로 라면 시장을 열었다. 우지로 면을 튀긴 당시 제품은 1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출시돼 새로운 간편식으로 빠르게 대중화됐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라면 제조과정에서 우지를 튀김유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1989년 익명의 투서에서 삼양식품이 공업용 우지를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상황은 급변했다. 불량식품을 제조한 기업이라는 낙인이 찍히면서 여론이 급속히 악화됐고 도봉공장은 약 3개월간 가동이 중단됐다. 이에 따른 피해 규모는 수천억원에 달했다.

이후 재판에서 삼양식품이 합법적인 절차로 식용우지를 수입했음이 밝혀져 1995년 7월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이미 실추된 브랜드 이미지는 회복되지 않았다. 당시 60%에 육박했던 삼양식품의 라면 시장 점유율은 15%까지 추락했고 농심·오뚜기에 밀려 1위 자리를 내줬다. 이후 '원조 삼양라면'은 단종됐다. 유지도 우지에서 식물성 팜유로 전면 교체됐다.
1963년 국내 최초로 출시된 삼양라면은 이후 여러 차례 디자인이 변경되며 현재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사진 제공=삼양식품
글로벌 성공...'원조라면' 정통성 강조
삼양식품이 원조라면을 복원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불닭 시리즈의 글로벌 성공과 함께 회복된 브랜드 자신감이 있다. 회사는 올해 2분기 기준 전체 매출의 약 80%를 해외에서 기록하며 내수 중심 기업에서 글로벌 식품기업으로 성장했다.

상반기 매출은 1조821억원으로 반기 기준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했으며 영업이익은 전년동기 대비 49.8% 증가한 2541억원을 달성했다. 영업이익률은 21.7%로 수익성 면에서도 경쟁력을 입증했다. 6월에는 식품 업계 최초로 시가총액 10조원을 넘어섰다.

이에 삼양식품은 지금이 '국내 최초 라면을 만든 기업'이라는 서사를 복원할 적기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브랜드 신뢰도를 되찾은 데다 우지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상당 부분 해소됐다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중장년층에게는 향수를, MZ세대에게는 복고 감성을 자극해 세대 간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이번 재출시는 국물라면 포트폴리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기도 하다. 삼양식품은 불닭 시리즈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맵탱' '탱글' 등 다양한 제품을 내놓으며 라인업을 확장해왔다. 그러나 국내 시장에서는 여전히 농심 '신라면', 오뚜기 '진라면'이 국물라면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다.

관건은 우지를 사용한 제품이 국내 소비자의 입맛에 얼마나 부합할지다. 단순한 브랜드 복원을 넘어 시장에서 실제 경쟁력을 입증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특히 가격경쟁력과 인지도 측면에서 신라면과 진라면에 비견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번 제품이 국물라면 시장 재공략의 신호탄이 될 수는 있지만 소비자들은 이미 팜유에 익숙해져 입맛에 맞을지가 관건"이라며 "정통성과 감성을 동시에 겨냥한 전략이 시장의 반응을 어느 정도 끌어낼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경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