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 SK 최태원, 3번의 위기와 3번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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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10.20. 오후 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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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식회계 사태 때 소버린 막고 지배구조 개편
횡령등 사법리스크 불구 하이닉스 인수 '빅딜'
개인사도 기업가 정신 발휘…이혼 소송 이겨
"불운과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위대한 기업가"
경전 중의 경전인 고전 '주역'에는 '이섭대천(利涉大川)'이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큰 강을 건너는 일은 대단히 위험하지만 이를 무릅쓰고 강행하면 반드시 이로운 결과를 얻게 된다는 뜻입니다. 저자로서 '주역'의 체계를 세운 고대 중국 주나라 문왕은 나라의 기초를 닦기 전 감옥에 갇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상나라 정벌이라는 모험을 꿈꾸었고, 결국 이를 실현했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문왕은 철저하게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인물입니다.

위험과 불확실성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새로운 시장과 해법을 찾으려는 태도, 누구도 풀지 못한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용기, 정보와 과학적 판단에 근거해 전략적으로 위험을 감수하는 모험정신, 그게 바로 기업가 정신입니다. 모험 없는 혁신은 없기에 기업가 정신은 지금과 같은 인공지능(AI) 시대에도 긴요합니다.

이재용, 최태원, 정의선, 구광모, 김동관 등 대한민국을 이끄는 주요 그룹 총수들은 한결같이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이들이지만 그중에서도 굳이 한 사람만 꼽자면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들 수 있습니다. 최 회장은 여러 측면에서 매우 독특한 인물이며 그 특이성은 심지어 사생활 영역에서도 나타납니다.

기업가 정신이 가장 투철한 사람은
1998년 SK 창업주 최종건 회장의 동생이자 2대회장인 최종현 회장이 유언 없이 갑작스럽게 별세합니다. 이에 따라 SK는 승계 문제와 관련해 가족 간 분쟁에 휩싸일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창업주의 장남인 최윤원 회장이 결단을 내립니다. 사촌형제들 가운데서 가장 뛰어나다고 판단한 당시 38세의 최 회장을 그룹 3대 총수로 추대하며 위기를 넘긴 것입니다.

그러나 불과 5년 뒤 그룹은 또 한 번의 위기에 직면합니다. 글로벌 사모펀드 소버린자산운용이 지주사 격인 SK㈜ 지분 15%를 매입하며 공격에 나선 것입니다. 지배구조 개선과 최태원 퇴진을 내건 소버린과 SK의 싸움은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이어졌습니다.

소버린은 SK의 분식회계 사건과 순환출자 구조를 문제 삼았지만 최 회장은 외국 투기자본의 경영권 침탈이라는 논리로 정치권과 재계, 금융권과 기관투자가, 언론과 일반 여론의 지원까지 끌어내며 소버린의 2배가 넘는 30% 이상의 우호지분을 확보했습니다.

소버린의 공격을 막아낸 SK는 이후 지배구조 개선에 적극 나섭니다. 최 회장은 자신이 1대주주였던 SK C&C를 통해 SK㈜ 지분을 매입했고, 최종적으로 SK C&C와 SK㈜를 합병해 순환출자를 끊고 지주사 중심의 지배구조를 완성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결단과 실행이 그가 사법 리스크를 짊어지고 감옥살이를 하던 시기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정신승리'라는 표현이 어울릴 수밖에 없습니다. 보통 기업인이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을 그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추진했습니다.

사법 리스크 속 사모펀드 물리치다
최 회장은 이른바 '분식회계' 사건으로 2003년 3월 구속 기소돼 2008년 5월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5년간 사법 리스크에 시달립니다. 2003년 3월부터 9월 석방될 때까지 7개월간 옥살이도 했습니다. 재판을 받고 수감까지 된 상황에서도 그는 사모펀드의 경영권 침탈을 막아내고 지주사 중심의 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이뤄냈습니다.

최 회장의 두 번째 위기는 '소버린 사태' 이후 10년 뒤에 다시 찾아옵니다. 그는 2012년 1월 선물·옵션투자와 관련해 500억원대의 계열사 펀드 출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뒤 2013년 1월 구속 수감됐습니다. 2015년 8월 특사로 풀려나기까지 재계 총수 중 가장 긴 2년7개월간의 수감 기록을 남깁니다. 그럼에도 그는 다른 그룹들처럼 사법 리스크를 이유로 투자 결정을 미루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위기를 겪으면서 더 과감하게 투자하고 기업을 확장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인수합병(M&A)'으로 평가되는, 만년 적자기업이자 '골칫덩어리'였던 하이닉스반도체 인수입니다.

분식회계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던 2011년 7월, 최 회장은 하이닉스 인수를 전격 선언합니다. 당시 하이닉스는 10여년간의 장기 적자로 워크아웃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원래 주인이었던 LG는 물론 포스코·한화·GS 등 어느 기업도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효성이 잠시 인수 가능성을 검토하다 포기했고, STX도 뛰어들었다가 이내 철수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최 회장은 "새로운 사업에 대한 도전이 필요하다. 동물적 감각을 믿어달라"며 내부 구성원을 설득했고, 마침내 SK텔레콤이(SKT)이 3조4000억원에 단독 입찰해 하이닉스를 인수합니다. 당시 재계와 금융시장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횡령 혐의 수사를 회피하거나 정부의 환심을 사기 위한 M&A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습니다.

최장의 옥살이와 하이닉스 인수
최 회장은 하이닉스 인수 이후 첫해부터 3조8000억원의 투자를 단행했고 내부 출신 인사를 최고경영자(CEO)에 앉히는 전통까지 세웠습니다. 이에 부응하듯 SK하이닉스는 인수 이듬해인 2013년 3조4000억원의 흑자를 냅니다. 그리고 인수 12년째인 지난해부터는 삼성전자를 넘어 세계 1위 메모리반도체 회사로 우뚝 섰습니다.

하지만 최 회장의 위기와 응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사생활에서 세 번째 위기가 불거졌습니다. 아내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이혼 소송 과정에서 지난해 5월 항소심 재판부로부터 무려 1조3808억원의 재산분할 판결을 받은 것입니다. 워낙 금액이 크기에 최 회장 개인사를 넘어 그룹 지배구조 리스크로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에 순탄한 결혼생활은 드뭅니다. 사람들은 대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욕구를 성적·감성적으로 평생 해결해줄 것으로 믿고 결혼이라는 결단을 내립니다. 그러나 실제로 결혼생활을 시작해보면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물론 사실상 불가능한 목표임을 곧 깨닫게 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외도 충동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임을 알게 됩니다.

최태원·노소영 부부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재벌 2세와 대통령의 딸이 만나 1988년 '세기의 결혼'을 했지만 정상적인 부부관계는 15년을 넘기지 못했고, 갈등은 계속됐습니다. 결국 최 회장은 외도를 하고 혼외자까지 두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다른 부부들의 파탄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최 회장은 이 시점에서 전혀 다른 선택을 합니다. 2015년 세계일보에 편지를 보내 '자랑스럽지 못한 개인사'를 고백하고, 모든 게 자신의 책임이라면서 어떤 비난과 질타도 감수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최 회장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셌지만 그는 최소한 위선적이지는 않았습니다. 사생활에서도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자신의 패배와 잘못을 숨기지 않고 정면돌파하는 방식을 택한 것입니다.

최태원-노소영도 기적은 없었다
그러나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이혼재판 항소심에서 서울고등법원은 지난해 5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주식이 아닌 현금으로 재산분할 1조3808억원과 위자료 20억원, 노 관장의 소송비용 70%를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여기에 최 회장 본인의 소송비용까지 합칠 경우, 항소심 판단대로라면 약 1조5000억원의 현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최 회장은 이미 주식을 담보로 4000억원의 대출을 받은 터라 보유 현금이 거의 없었고, 자금을 마련하려면 SK㈜ 지분 17.7% 또는 비상장사인 SK실트론 지분 29.4%를 매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 대주주가 주식을 팔 경우 매각 금액의 27.5%에 해당하는 양도소득세를 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즉 재산분할금을 마련하려면 약 1조5000억원이 아니라 최소 1조9000억원 상당의 지분을 매각해야 하는 셈이었습니다.

보수적으로 추산해도 그룹 지주사 SK㈜의 지분 절반 이상을 처분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오면서, SK그룹의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증폭됐습니다. 20년 전 '소버린 사태'의 트라우마를 지닌 SK 입장에서는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 다시 펼쳐진 것입니다.

이제 노 관장과의 이혼 소송은 더 이상 최 회장의 개인사가 아니었습니다. 명백한 SK의 지배구조 리스크로 번졌습니다. 더욱이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SK가 노태우 정권의 불법 비자금과 지원으로 성장했다고까지 언급하며 SK의 역사와 정체성에 흠집을 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최 회장은 다시 한 번 도전을 선택합니다. 철저히 사적인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이혼 소송을 공론화하며 공개대응에 나선 것입니다.

개인사가 지배구조 리스크로 비화
최 회장은 이혼 소송 항소심 판결이 나온 지 사흘 뒤 계열사 CEO들이 참석한 가운데 회의를 열고 해당 판결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특히 SK가 성장해온 역사를 부정한 판결은 받아들일 수 없으며, SK와 구성원 모두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진실을 바로잡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최 회장은 예고 없이 항소심 재판 관련 긴급 기자회견까지 열어 '6공화국의 후광으로 사업을 키워왔다'는 판결은 SK의 역사를 부정하는 만큼 수용할 수 없고, 재산분할과 관련해서도 명백한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며 상고를 결심했다고 밝혔습니다.

이혼 소송과 재판은 사생활을 근거로 판결하는 만큼 판사의 주관과 재량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원님 재판'입니다. 또 일반 가사 사건의 경우 상고심 기각률이 80%를 넘습니다. 별도 심리 없이 2심 판결대로 확정하는 '심리불속행 기각'이 대부분입니다. 서울고등법원 가사 2부가 노 관장에게 1조4000억원의 재산을 현금으로 분할 지급하라고 판결했다면 그대로 확정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습니다.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최 회장은 불확실성을 회피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문제에 맞서며 다시 공론화를 선택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혼 소송 공론화 전략은 재판 과정에서 최 회장이 우위를 점하는 데 중요한 변곡점이 됐습니다.

항소심은 재산을 최태원 65, 노소영 35의 비율로 나누라고 판결했지만 현실적으로 대주주 주식 매각에 따른 양도세 등을 감안하면 노소영 측의 몫이 더 커질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노 관장은 1조4000억원에 대해 세금도 한 푼 내지 않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SK㈜ 1대주주로 올라설 수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이 같은 상황이 알려지자 여론도 자연스럽게 최 회장 측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혼 소송 공론화와 공개대응은 다른 어떤 총수도 선택하기 어려운 그만의 방식이었습니다. 이 같은 전략이 주효해 최 회장은 세 번째 위기에서도 결국 승자가 됐습니다.

노소영을 1대주주로 만드는 판결
대법원은 우려되던 심리불속행을 기각하지 않았고,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 전원이 재산분할의 적정성을 논의한 뒤 항소심 판결을 완전히 뒤집었습니다. 대법원 1부는 노 관장에게 지급해야 할 재산분할금을 다시 심리하고, 65대35의 비율도 재산정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과 관련해 대법원은 불법 비자금으로 기여도를 인정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설령 이 자금이 SK에 유입됐다 하더라도 불법적 뇌물에 해당하는 만큼 법이 보호할 영역은 아니며, 이혼 재산분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습니다.

최 회장이 2012~2018년 동생 최재원 부회장 등 친인척에게 증여한 주식 등 1조1000억원 규모의 재산이 분할 대상에 포함될지도 쟁점이었으나, 상고심 재판부는 이 역시 노 관장의 동의 없이 이뤄졌더라도 부부 공동재산의 유지 또는 가치 증대를 위한 것이며, 재산 처분이 혼인관계 파탄 시점인 2019년 12월 이전에 이뤄진 만큼 분할 대상이 아니라고 판결했습니다.

최 회장은 고 최종현 회장 사후 그룹 총수로 취임하는 과정에서 동생인 최 부회장과 사촌형제들이 그룹 지배구조 안정화를 위해 상속 포기각서를 쓰고 지분을 자신에게 몰아준 데 대해 늘 고마움을 느껴왔고, 이에 대한 보답으로 2018년 본인이 보유한 SK㈜ 지분 5.11%, 약 1조원 규모를 증여했습니다. 이 같은 사실을 감안하면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매우 상식적인 결과입니다.

대법원의 상고심 판결로 최 회장과 SK그룹은 지배구조 리스크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됐습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 설령 SK그룹에 유입됐더라도 성장 기여도를 인정할 수 없다는 판단으로 SK가 과거 노 정권의 불법자금 지원으로 성장했다는 오해와 편견이 해소됐다는 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상식이 회복된 대법원 판결
최 회장은 2015년 언론을 통해 자신의 외도와 혼외자의 존재를 공개하고, 2017년 서울가정법원에서 이혼 조정 절차에 돌입한 지 8년 만에 이번 대법원 판결로 정공법에 따라 이혼 소송을 마무리하며 새 사랑도 얻었습니다.

최 회장은 20여년 전 분식회계 사태에서도 소버린의 경영권 침탈을 막아냈을 뿐 아니라 지주사 중심의 지배구조로 그룹을 재편했습니다. 이후 2010년대 초반 선물·옵션투자 관련 사법 리스크의 와중에도 하이닉스 인수라는 대한민국 기업 역사상 최고의 빅딜을 성사시켰습니다. 다시 10년이 지난 지금은 그룹 전반의 리밸런싱과 배터리 사업 정상화, AI 사업 확장 등에 매진하면서 개인적으로도 이혼 소송에서 승리했습니다.

대한민국 기업사에서 이미 타계한 창업주나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을 제외하면, 현재 생존한 오너 경영자 중 최 회장만한 기업가를 찾기 어렵습니다. 그는 기업경영은 물론 사생활까지 철저히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진정한 기업인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불운을 경험하고 위기를 겪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그것을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들기 위해 잘 활용하는 것입니다. 불운과 위기가 우리의 '정신적 감옥'이 되는 것을 막고 이제껏 없었던 최고의 기회로 바꾸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런 경영자를 우리가 '위대한 기업가'라고 부른다면 최 회장도 여기에 포함돼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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