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투자 A to Z] EU 노동 규범과 중동부 유럽 국가의 최근 동향

박선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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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2025년 10월 14일 09시 33분 넘버스에 발행된 기사입니다.
이승민 외국변호사·이지혜 변호사(법무법인 지평)가 중동부 유럽 투자 정보를 전합니다.
유럽연합(EU)은 단일시장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공통 규범을 마련해 왔다. 하지만 각국이 이를 적용하는 방식은 경제 상황과 사회적 맥락에 따라 다르다. 중동부 유럽 국가들의 최근 변화를 보면 공통의 틀 속에서도 서로 다른 해법과 풍경이 드러난다.

EU 차원의 공통 규제
유럽연합(EU)은 단일시장의 자유로운 인력 이동을 보장하면서도 노동자 권리가 국가별로 지나치게 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여러 지침을 마련해 왔다.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근로조건 지침(2019/1152)'은 근로계약 조건을 서면으로 알리도록 하고 수습 기간을 6개월로 제한하며, 제로아워 계약(근로시간을 특정하지 않고 사업주가 호출하는 시간에 맞춰 일하는 근로계약)이나 플랫폼 노동까지 보호 범위에 포함한다. '기간제 근로 지침(1999/70/EC)'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원칙으로 하며 계약 갱신 남용을 방지한다. '근로시간 지침(2003/88/EC)'은 주당 48시간 상한과 하루 최소 11시간 연속 휴식, 연간 4주 이상의 유급휴가를 보장한다. 이러한 규범은 유럽 사회권리 기둥과 EU 기본권 헌장에서 천명한 '건강하고 존엄을 존중하는 노동환경'이라는 원칙을 제도로 구현한 것이다.

중동부 유럽 국가들이 공통으로 마련한 제도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폴란드, 루마니아 등 중동부 유럽 국가는 EU 지침을 바탕으로 노동법을 정비해 왔다. 이들 모두 주 40시간을 기준 근로시간으로 정하고 이를 초과하는 경우에는 초과 근로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하루 11시간 연속 휴식과 주 단위 휴일, 연간 유급휴가 제도도 공통으로 보장된다.

해고 역시 정당한 사유가 필요하며 집단해고의 경우 노동조합과 협의하고 당국에 통보해야 한다. 부당해고가 인정되면 근로자는 복직이나 보상받을 권리가 있다. 휴직 제도도 마련돼 있어 육아휴직, 병가, 무급휴직이 가능하다. 병가는 일정 기간까지는 고용주가 임금을 지급하고 이후에는 사회보험이 이어받는 구조다. 최저임금은 매년 정부가 고시하며 물가와 경제 상황을 반영해 조정된다. 헝가리는 일반 최저임금과 숙련 근로자 보장 임금을 구분하는 독특한 이원 구조를 운영한다.

무엇보다 다섯 나라 모두 노동조합 설립과 단체교섭권을 보장하고 집단 협약을 통해 법률보다 유리한 근로조건을 확보할 수 있다. 이하에서는 각 국가의 최근 동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중동부 유럽 국가의 최근 노동 환경 동향
체코 : 최저임금 인상과 공공부문 개편
체코는 노동계약의 서면화, 근로시간 상한, 초과 근로 수당 지급 등 기본 규정을 갖추고 있다. 최근 정부는 2025년 최저임금을 월 2만800 코루나로 인상했으며 2026년에는 2만2400 코루나까지 끌어올릴 예정이다. 또 공공부문 임금체계를 손봐 저임금 종사자들의 처우를 개선하려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슬로바키아 : 부당해고 보상과 판례의 역할
슬로바키아 노동법은 부당해고 시 복직이나 임금 보상을 보장한다. 그러나 최근 대법원은 보상 기간을 최대 36개월로 제한하고, 12개월 초과분은 법원이 감액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다른 판례에서는 계약 해지 합의서에 해지 사유가 빠졌다고 해서 무효로 보지 않는다고 판시했으며, 종교단체 직원의 자격 상실을 해고 사유로 인정하는 등 직무 특수성을 고려한 판례도 나왔다.

헝가리 : 이원적 임금 구조와 협의 절차
헝가리는 최저임금과 숙련 근로자 보장 임금을 구분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 2025년 기준 최저임금은 29만800 포린트, 보장 임금은 34만8800 포린트다. 또 근로자의 사용자 측에 대한 협의 요청과 관련해 법원은 노조가 단순히 회사의 일반 이메일 주소로 요청서를 보낸 것만으로는 적법하지 않으며, 상업등기부 기재 주소나 정식 교섭 상대자에게 보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협의권 보장의 구체적 절차를 강조한 것이다.

폴란드 : 집단적 협약의 현대화
폴란드는 2025년 1월부터 최저임금을 4666 즈워티로 인상했다. 노동법은 주 40시간 근로, 해고 제한, 유급휴가 보장 등 기본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최근에는 집단적 근로 협약 제도의 현대화 논의가 활발하다. 새 법안은 인공지능 활용, 직장 내 괴롭힘 방지, 성평등 촉진 같은 새로운 의제를 협약에 포함하도록 하고 협약 체결 절차를 전자화하려는 시도도 담고 있다. 근속연수를 계산할 때 자영업이나 해외 근무 이력까지 인정하려는 논의도 병행되고 있다.

루마니아 : 긴축 속에서 달라지는 노동 규제
루마니아는 재정적자 대응을 위해 사회보험 제도를 강화하고 있다. 일정 소득 이상의 연금 수급자와 일부 사회보조금 수급자에게 보험료를 부과했고 병가 수당도 줄었다. 노동법 영역에서는 파업이 적법하게 공지·등록된 뒤, 실제 참여한 기간 동안 근로계약이 정지돼 임금이 지급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는 법원의 입장이 정리됐다. 파업권 보장과 고용 안정성의 경계에서 중요한 선례가 된 판례다.

EU 노동법은 모든 회원국이 따라야 할 공통의 최소 기준을 마련하지만, 중동부 유럽 국가들의 사례는 각국이 자국 상황에 맞춰 이를 변형, 발전시켜 온 모습을 잘 보여준다. 체코의 임금 인상, 슬로바키아의 판례 변화, 헝가리의 협의 절차, 폴란드의 집단 협약 현대화, 루마니아의 긴축 조치 등은 각기 다른 현실 속에서 공통성과 다양성이 공존하는 풍경을 만든다. 앞으로 인공지능 확산, 비정형 고용 증가, 재정 압박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노동자 권리와 고용 유연성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아갈지가 중동부 유럽 노동시장의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이승민 외국변호사·이지혜 변호사 /그래픽=박진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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