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및 이해관계인은 가능한 이른 시간 내에 회사의 주권이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 상장 또는 등록(이하 기업공개)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회사가 기업공개 요건을 사실상 충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 및 이해관계인이 특별한 이유 없이 기업공개에 필요한 절차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 투자자는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여 기업공개를 서면으로 요구할 수 있다."
위 조항만을 살펴보면 피투자회사의 상장을 통한 투자자의 회수(엑시트)가 투자계약으로 보장되는 것처럼 보인다. 피투자회사 입장에서는 자금 유치의 마지막 고비에서 이 조항을 거절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위와 같은 IPO 의무 조항은 투자계약서에 많이 포함된다. 하지만 최근 IPO 의무 조항과 관련해 제1심 및 항소심 법원은 위 조항에 대해 피투자회사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하고 투자자에게 불리한 판단을 한 바가 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4. 7. 11. 선고 2022가합536943 판결, 서울고등법원 2025. 8. 21. 선고 2024나2038859 판결).
제1심(서울중앙지법)과 항소심(서울고등법원)은 투자계약서에 기재된 IPO 의무는 결과채무가 아니라 수단채무(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가지고 기업공개를 위한 노력을 다해야 할 채무)라고 판단했다. 즉, 상장을 반드시 달성해 결과를 만들어야 할 의무가 아니라 상장을 추진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의무라는 취지다. 더 나아가 법원은 상장을 하지 못할 경우 투자금 전액을 돌려받는다는 손해배상 조항은 주주평등 원칙에 반해 무효라고 판시했다.
투자자는 이 조항을 근거로 기한까지 상장하지 않았으므로 계약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투자금 전액(500,002,500원)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투자자의 위 청구를 기각했으며 판단 이유는 아래와 같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4. 7. 11. [선고 2022가합536943 판결]
이 사건 투자계약서 제8조 제1항은 "피고 B가 2019. 12. 31.까지 자신의 주권을 코넥스 시장에 상장하도록 하여야 하며, 코넥스 상장일 이후 2년 이내에 코스닥에 상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사건 투자계약서는 원고가 그 초안을 작성하고, 원고와 피고들이 서명․날인하여 완성된 것으로 보이는 점, 코넥스 시장 상장에 관하여는 "상장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규정한 반면, 코스닥 상장에 대하여는 "상장하여야 한다"고 규정한 점, "상장하도록 한다"는 것은 그 문언상 '상장하여야 한다'라는 의미보다는 '상장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봄이 상당한 점, 위 투자계약서 같은 조 제3항은 확정적인 일자가 아닌 '피고 B의 기업공개가 성숙단계에 이르렀다고 판단됨에도 피고 B가 기업공개를 미루는 경우'에 피고 B에 기업공개 일정 등을 제시할 의무를 부담하도록 정하고 있는 점, 이 사건 투자계약서 제8조 제4항은 '본조에 따른 의무에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원고가 피고들에게 2019. 12. 31.까지 확정적으로 기업공개의무를 부담시키려고 하였다면 위 제4항을 삽입할 이유가 없는 점 등을 위 관련법리에 비추어 보면, 기업공개의무는 '피고 B가 2019. 12. 31.까지 코넥스 시장에 상장하여야 할 의무 또는 2년 내에 코스닥 시장에 상장하여야 할 의무'가 아니라 '피고들은 피고 B의 기업공개를 위해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하고, 피고 B의 기업공개가 성숙단계에 이르렀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2019. 12. 31.까지 코넥스 시장에 상장하거나, 코스닥 시장에 상장을 위한 절차를 진행할 의무'로 해석하여야 한다.즉, 투자계약서상의 상장의무 조항은 피투자회사와 이해관계인이 피투자회사의 상장을 보장하는 의무를 부담하는 조항이 아니라 상장을 추진하기 위해 노력할 의무를 부담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법원은 회사와 이해관계인의 의무는 기업공개를 반드시 달성해야 할 결과 채무가 아니라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를 가지고 기업공개를 위한 노력을 다해야 할 채무, 이른바 수단채무인 바, 피투자회사의 기업공개가 되지 않았다는 결과를 가지고 바로 기업공개의무 불이행 사실을 추정할 수 없으며, 피투자회사와 이해관계인이 부담하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의 내용 및 그 위반 여부를 투자자가 입증하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 역시 같이 취지로서 판단했다.
상장되기 위해서는 형식적 요건뿐 아니라 질적 심사요건도 충족되어야 하는데, 이 질적 심사요건 중 기업계속성은 산업성장성, 시장경쟁상황 등을 주된 심사기준으로 하고 있다. 아울러 코로나19 확산으로 기업가치가 저평가되는 것을 우려하여 기업공개를 철회하는 기업들이 있었던 점에 비추어 보면, 피고 D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를 다하더라도 반드시 상장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고 집합투자업자인 원고로서도 위와 같은 점을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기업공개의무를 결과채무로 해석할 경우, 이 사건 투자계약 제15조에서 기업공개의무를 위반한 경우 피고들에게 귀책사유가 있는지를 불문하고 손해배상책임이 있다는 취지로 규정하고 있으므로, 피고들로서는 자신들의 귀책사유가 아닌 이유로 상장을 하지 못하게 된 경우까지 이 사건 신주인수대금 상당액을 손해배상으로 지급하게 되어 형평에 맞지 않는다. 피고들이 원고와 이 사건 투자계약을 체결함에 있어 위와 같은 내용의 약정에 동의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이번 사건의 피투자회사는 2018년부터 2021년까지 4년 연속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코넥스 시장의 침체와 거래량 급감도 상장 추진에 있어 장애로 작용했다. 법원은 이러한 외부 환경 속에서 상장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 회사가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명시했다. 결국 상장 실패라는 결과만으로 투자계약을 위반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투자자는 피투자회사가 상장을 위해 어떤 구체적 노력을 하지 않았는지를 입증해야 한다. 즉, 상장이란 결과를 못 만들어 낸 것뿐만이 아니라 상장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사실까지 입증되어야 비로소 피투자회사 및 이해관계인이 투자계약을 위반했다고 볼 수 있다.
투자자는 이를 근거로 피투자회사가 상장하지 않았으므로 투자금 전액을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 조항이 무효라고 판시했다.
위 조항은 회사가 상장하지 못한 경우 배당가능이익의 유무나 주주총회나 이사회 결의 등을 따지지 않고 피투자회사 내에 유보된 자본금을 감소시켜 특정 주주에게 투자금을 회수 받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피투자회사가 일부 주주에게만 우월한 경제적 이익을 부여하는 것이며, 명백히 주주평등 원칙에 반한다는 것이 제1심과 항소심 법원의 판단이다.
이 논리는 대법원 2018다236241 판결의 법리와 정확히 궤를 같이한다. 대법원은 "회사가 신주를 인수하여 주주의 지위를 갖게 되는 사람에게 금전 지급을 약정한 경우, 그 약정이 실질적으로는 신주인수대금으로 납입한 돈을 전액 보전해 주기로 한 것이거나 상법 제462조 등 법률의 규정에 의한 배당 외에 다른 주주들에게는 지급되지 않는 별도의 수익을 지급하기로 한 것이라면, 이는 회사가 해당 주주에 대하여만 투하 자본의 회수를 절대적으로 보장함으로써 다른 주주들에게 인정되지 않는 우월한 권리를 부여하는 것으로서 주주평등의 원칙을 위반하여 무효이다"고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20. 8. 13. 선고 2018다236241 판결).
즉, "상장을 못 하면 투자금 전액을 돌려준다"는 조항은 실질적으로 회사가 특정 주주에게 유보이익을 직접 배분하는 것으로 볼 수 있고, 이는 주주평등의 원칙을 동시에 위반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결론이다.
실제로 유사한 사안에서 법원은 "회사가 적격 IPO 완료기한까지 적격 IPO를 완료하지 못하였고, 원고가 2021. 5. 21. 피고에게 서면으로 이 사건 약정 제2항 A에 따라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한 사실은 앞서 본 바와 같으며, 위 다.항에서 판단한 바와 같이 이 사건 약정 제2항은 원고에게 피고의 채무불이행 여부와 관계없이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한 것이므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고는 원고로부터 원고가 매수한 소외 회사의 보통주 전부를 재매수하고, 원고에게 이 사건 약정 제2항 A에 따른 주식매수대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해 투자계약 위반과 관계 없이 투자자가 주식매수청구권 조항에 따른 권리를 행사해 투자금을 보전 받는 것은 가능하다고 판단하였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7. 21. 선고 2021가합568066 판결). 이에 대하여 서울고등법원도 같은 취지로 판단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24. 4. 17. 선고 2023나2037798 판결).
또한, 위 사안에서 서울고등법원은 이 사건 약정은 주주인 원고와 회사의 다른 주주 내지 대표이사 개인인 피고 사이에 이루어진 것이므로 이 사건 약정 자체에는 주주평등의 원칙이 직접 적용되지 않고, 이 사건 신주인수계약은 원고와 소외 회사뿐만 아니라 피고 개인도 당사자로 해 체결됐는데 원고와 피고 사이의 신주인수계약에도 마찬가지로 주주평등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으며, 원고와 소외 회사, 피고 모두 IPO를 추진하고자 하였으므로 원고의 IPO 추진 요구 권한을 특별한 차등적 취급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등을 종합해 보면 이 사건 신주인수계약이 주주평등의 원칙을 위배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서울고등법원 2024. 4. 17. 선고 2023나2037798 판결). 그러므로 투자자 입장에서 피투자회사와 이해관계인에게 보다 명확한 상장 의무를 부여하고 싶다면 손해배상 구조보다는 주식매수청구권 구조로 투자계약서를 작성하는 것이 적절하다.
한편, 기존의 상장 의무 조항 및 손해배상 조항 구조를 그대로 가져가는 경우라도 즉 상장 의무를 수단채무로 그대로 두더라도 상장 의무의 내용을 보다 구체화하여 정하면 분쟁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즉, "최선의 노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투자계약서에서 구체적으로 정의해야 한다.
예컨대 △상장 주관사 선정 및 계약 체결 △외부감사 적정의견 확보 △거래소 사전 컨설팅 진행 △질의응답 대응 기한 준수 △상장 태스크포스(TF) 설치 및 주기적인 회의 운영 등의 절차와 방법, 과정을 정하는 것이다.
피투자회사의 입장에서는 위와 같은 상장을 위한 준비 상황과 업무 내용을 구체적으로 기록으로 남기고 투자자에게 정기적으로 보고할 필요가 있다. 법원은 실제로 이러한 노력의 흔적을 매우 중요하게 본다.
이번 판결에서도 피투자회사가 상장을 위해 거래소 및 증권사와 접촉하고 IR 준비를 진행한 사실이 있다면 노력의무 위반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기도 했다. 이처럼 수단채무의 실질과 구체적인 내용을 강화하면 피투자회사는 불필요한 소송을 피할 수 있고 투자자 역시 노력 부재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근거를 확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