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인수합병(M&A) 시장에서 토종 PE(운용사)들이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고 있다. 홈플러스 사태 이후 MBK파트너스 등 국내 사모펀드를 겨냥한 규제가 잇달아 나오면서 국내 빅딜에 명함조차 내밀지 못하고 있다. 국내 대형 PE들의 빈자리를 해외 PE들이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19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해외 GP들은 올해 국내에서 굵직한 거래를 잇달아 성사시켰다. 스웨덴계 EQT는 리멤버앤컴퍼니 지분 47%를 5000억원에 사들인데 이어, 더존비즈온 지분 31.4%를 1조원 중반대에 인수하는 주식매매계약(SPA) 체결을 앞두고 있다.
KRR은 SK에코플랜트 환경 자회사 리뉴어스·리뉴원·리뉴에너지충북 지분 100%를 1조7800억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 인수금융만 9000억원 규모로 알려졌다. 이어 국내 화장품 포장사 삼화를 7330억원에 매입할 예정이다.
베인캐피탈은 HS효성첨단소재 타이어 스틸코드 사업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거래규모는 1조3000억~1조5000억원으로 알려졌다.
반면 국내 PE들은 5000억원 안팎의 미들마켓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주요 딜은 VIG파트너스의 LG화학 에스테틱 사업부(2000억원) 인수, 스틱인베스트먼트의 크린토피아(6000억) 인수, 웰투시인베스트먼트의 에스아이플렉스(4300억원) 인수, 어펄마캐피탈의 폐기물업체 CEK 인수(4000억원) 등이다. 1조원을 넘긴 딜은 글랜우드PE의 LG화학 수처리사업부 인수(1조4000억원)가 유일하다.
이는 지난 5년간 국내 대형 PE들의 행보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한앤컴퍼니는 2020년과 2024년 대한항공 기내식·기내면세사업부와 SK스페셜티 지분을 각각 9906억원과 2조6000억원에 인수했다. IMM PE는 롯데쇼핑과 함께 한샘 지분 27.7%를 1조4500억원에 사들였다. MBK는 메디트와 오스템임플란트 인수에 각각 2조원 이상을 투입했다. IMM PE·IMM인베스트먼트 컨소시엄은 지난해 에코비트 지분 100%를 2조700억원에 매입했다.
업계에선 홈플러스 사태 이후 국내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 MBK의 부재가 아쉽다는 평가가 나온다. MBK는 지난해 4월 지오영 인수 이후 이렇다 할 딜이 없다. CJ제일제당 바이오사업부 매각, SK실트론 지분 매각 등 굵직한 딜에 이름을 올렸지만 결과적으로 손에 쥔 것은 전혀 없었다. 사실상 올해 국내 포트폴리오를 단 한 건도 추가하지 못한 셈이다.
대신 일본 시장으로 무게중심으로 이동시켰다. 5월 일본 공작기계 제조업체 마키노후라이스제작소 인수를 위한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됐다. 매각가만 2조원 대로 추정되는 메가 딜이다. 2월에는 PCB 제조사 FICT를 약 9500억원에 인수하며 일본 시장 진출을 가속화했다.
MBK는 홈플러스 사태로 정치권과 여론의 비판이 거세지면서 국내 딜 소싱에 소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2월 홈플러스 기업어음(CP)·단기사채 신용등급이 A3에서 A3-로 하향 조정됐고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 사태가 악화됐다. 이후 MBK를 비롯한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에 대한 규제 움직임이 거세졌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MBK 등 국내 PE들이 정치권과 여론의 압박 속 수세에 몰린 가운데 해외 PE들이 대형 딜을 쓸어담고 있다"며 "국내 PE 시장을 과도하게 규제하면 IMF 때처럼 국부가 해외로 유출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