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원유서 석화제품 직생산
중국 저가 공세 속에서도 "가격경쟁력 자신"21일 찾은 울산 울주군 온산국가산업단지의 에쓰오일(S-OIL) '샤힌 프로젝트' 패키지 1 현장. 비가 흩날리는 하늘 아래 자재를 실은 트럭들이 쉼 없이 오갔다. 공사에 투입된 철골만 9만8000t, 에펠탑 14개를 세울 수 있는 규모다. 하루 1만1000명이 넘는 인력이 토목·배관·전기 공사를 동시에 진행하는 이곳은 국내 석유화학 산업 최대 규모의 공사 현장이다. 불과 1년 전 40%대에 머물던 공정률은 현재 85%를 넘어섰다. 총 42개월 공사일정 중 8개월만 남았다. 내년 6월 기계적 완공 이후 시운전을 거쳐 하반기 상업 가동이 목표다. 본격 가동되면 연간 180만t의 에틸렌과 77만t의 프로필렌이 시장에 공급된다.
이날 패키지 1 부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높이 118m, 무게 2300t에 달하는 프로필렌 분리 타워였다. 바로 옆에는 스팀 크래커(열분해로) 핵심 장치인 '크래킹 히터' 10기 가운데 4기가 완성돼 있었다. 나머지 6기도 올해 안에 모두 세워질 예정이다. 이현영 현대건설 현장소장은 "공장 전체 윤곽이 다 드러났다"고 말했다.
샤힌 프로젝트는 국내 석유화학 역사상 최대 규모인 9조원이 투입된 초대형 사업이다. 원유에서 석유화학 제품을 직접 생산하는 TC2C(Thermal Crude to Chemicals) 공정을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 정유 과정에서 남는 무거운 기름(잔사유)을 별도의 정제 없이 석유화학 원료인 나프타 등으로 전환하는 기술로, 기존 공정보다 수율이 3~4배 높다. TC2C에서 생산된 나프타는 바로 옆의 스팀 크래커로 보내져 850도의 고온에서 가열·냉각·압축 과정을 거치며 에틸렌, 프로필렌, 벤젠, 부타디엔 등 기초유분으로 분리된다.
업계에서는 중국발 공급 과잉과 글로벌 경기 둔화로 구조조정 압박 속에 샤힌 프로젝트가 국내 시장의 균형을 어떻게 흔들지 주목하고 있다. 국내 석유화학 업계는 현재 중국발 공급 과잉과 글로벌 경기 둔화로 구조조정 압박에 놓여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주요 기업들은 국내 나프타분해설비(NCC) 18~25%에 해당하는 270만~370만t 감축 방안을 협의 중이다. 샤힌 프로젝트가 본격 가동되면 국내 연간 에틸렌 생산량의 약 12%가 추가로 시장에 공급된다. 에쓰오일은 위기를 오히려 '투자의 타이밍'으로 삼았다. 업계 관계자는 "샤힌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중국 같은 대규모 저가 생산국과 비교해도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에쓰오일은 2018년 5조원을 투입한 1단계 잔사유 고도화(RUC)·올레핀 하류(ODC) 프로젝트를 통해 정유 중심이던 사업 구조를 석유화학으로 확장한 바 있다. 이번 샤힌 프로젝트는 그 후속 격으로, 정유와 화학의 경계를 완전히 허무는 단계다.
완공 후 생산되는 에틸렌과 프로필렌 등 기초유분은 울산과 온산 국가산단 내 기업들에 배관으로 직접 공급된다. 지금까지 수입에 의존하던 원료를 국내에서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게 되면서 물류비 절감과 무역수지 개선 효과도 기대된다. 동시에 일본 등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수출 마케팅도 시작했다. 최대 주주인 사우디 아람코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한국을 동북아 석유화학 공급망의 핵심 거점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샤힌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수해 국내 석유화학 산업의 근원적 경쟁력 제고에 기여하고 국내 석유화학 산업이 새롭게 도약하는 전환점이 되도록 정부, 관련 업계와 협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