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순조롭다면 안보 분야 성과까지 발표
이견 못 좁히면 합의된 것도 공개 않기로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위해 워싱턴D.C.를 방문하는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22일 인천국제공항에서 취재진을 만나 "많은 쟁점에 대해 양국의 이견이 많이 좁혀졌으나 아직 한두 가지 팽팽하게 대립하는 분야가 있다"며 "쟁점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특정 시점까지만 합의된 내용을 가지고 양해각서(MOU)를 하는 방안은 정부에서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별도의 공식 일정을 잡지 않은 채 미국 관세 협상을 비롯한 주요 현안을 점검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21일 열렸던 상생협력 채용박람회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대기업 채용 동참 흐름이 중견 기업에 확산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대통령실이 미국 관세 협상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도 재도약이 필요한 국내 경제 상황에 중요한 변수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국제 역학 관계의 변화 속에서 한미 관세 협상을 슬기롭게 대처해야 경제 성장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김 실장은 이날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함께 비행기에 탑승하기 직전 인천국제공항에서 취재진을 만나 출국 배경을 비롯해 주요 관심사에 관해 설명했다. 앞서 이들은 미국을 방문한 뒤 각각 19일(김 실장), 20일(김 장관) 돌아온 바 있다. 김 실장은 "이번에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을 만날 예정"이라고 했다.
최대 관심사인 한미 관세 협상 문제와 관련해서는 3500억달러(약 500조원 규모) '대미 투자 패키지' 세부 내용 협의 결과를 두고 협상팀이 21일 이 대통령에게 대면 보고를 마친 만큼 남은 한두 가지 쟁점을 완전히 해소하는 게 목표다. 한미 양국 정상 결단에 따라 다음 주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전 관세 협상 타결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김 실장은 이 대통령 지시에 따라 다시 출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쟁점이 아직도 한두 가지 남아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 대통령이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를 가지고 미국으로 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번 협상에서 쟁점이 모두 해소되면 발표 방식과 문구에 대한 최종 조율 절차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과 관계부처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최근 한국 정부가 '대미 투자 패키지'와 관련해 고수해 온 ▲투자금액 조정·분할 투자 ▲현금 투자·보증·대출 구성 비율 조정 ▲투자처 선정 권한·수익 배분 ▲외환시장 안정장치 등에 대해 진전된 협상안을 제안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협상 실무 책임자들이 기회가 닿을 때마다 방미해 카운터 파트와 끈질기게 협상을 벌여온 결과다.
협상 수준에 따라 APEC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관세 인하뿐 아니라 안보 분야 합의까지 한 번에 공개될 가능성이 있다. 김 실장은 "지난번 워싱턴에서 이뤄진 한미 정상회담에서 큰 성과가 있었는데 대외적으로 단일하게 정리돼 발표되질 않았다"면서 "만약 통상 부분 MOU가 완료되면 워싱턴 회담에서 양국 간 잠정 합의된 큰 성과를 한꺼번에 발표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했다.
합의가 순조롭게 이뤄진다면 국방비 증액, 미국산 무기 구매, 원자력 협정 개정 등과 관련된 내용까지 나올 수 있다. 다만 김 실장은 "협상이라는 것이 상대방이 있고 시시때때로 상황이 바뀌기 때문에 미리 예단해서 말하기는 어렵다"며 신중론을 펼쳤다.
한미가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 APEC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문을 아예 도출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APEC을 협상 완료 시점으로 두고 협상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일각에서는 APEC 때 공동성명이나 합의문이 발표되더라도 관세인하 효력이 발생하는 MOU 사인은 더 늦게 이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김 실장과 함께 방미해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을 만나는 김정관 장관은 "(협상) 마무리라기보다는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긴장의 시간이 있을 것 같다"면서 "마지막 1분 1초까지 우리 국익이 관철되는 안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 대통령은 이날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메시지를 통해 "청년 일자리 창출이라는 절실한 과제 앞에 정부와 기업이 '원팀'으로 나섰다. 어제 개최한 상생협력 채용박람회는 그 협력의 결실이자, 새로운 희망을 보여준 뜻깊은 자리"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일자리 문제는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해결이 어렵습니다. 지난달 기업들에 적극 동참을 요청한 이유"라고 했다.
이 대통령은 "삼성·SK·포스코·한화 등 여러 기업에서 채용계획을 발표하며 뜻을 함께해 주셨다"면서 "이러한 흐름이 중견기업까지 확산되길 기대합니다. 정부도 경제적 인센티브를 포함해 기업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고용에 나설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지원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대통령은 "기업은 청년에게 도전의 기회를 제공하고 청년은 기업의 혁신을 이끄는 '상생의 선순환 구조'가 이루어지는 사회, 청년이 자신의 노력으로 원하는 일터에서 일하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으며 더 나은 내일을 만드는 사회를 꿈꾼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