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화합물반도체 전쟁 중, 韓 생태계 육성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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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합물반도체 생태계와 글로벌 현황

● 138억 달러 시장→ 2030년에 약 254억 달러로 확대
● 차세대 산업 키우는 SiC·GaN 글로벌 수요 ‘폭발’
● 미국·유럽·아시아 국가 주도 클러스터 전략 가속화
● CSTA 출범하고 기술 고도화 나선 韓
● 기술력은 세계적, 파편화된 생태계는 정비해야


화합물반도체가 차세대 산업의 핵심 소재로 주목받자 각국이 경쟁적으로 개발에 나섰다. Gettyimage
차세대 반도체산업의 주역으로 떠오르는 화합물반도체(Compound Semiconductor)는 두 가지 이상의 원소가 결합해 만들어진 소재다. 실리콘(Si)으로는 구현할 수 없는 고주파·고출력·고전압 특성으로 글로벌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대표적 소재로는 탄화규소(SiC)와 질화갈륨(GaN)이 꼽힌다. 이들은 고전압·고주파 환경에서도 안정적이며 전력효율이 뛰어나 전기차, 5세대(5G) 통신, 방위산업, 인공지능(AI) 서버 등 차세대 산업에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SiC 전력반도체, 전기차 확산의 최대 수혜주

프랑스 시장조사 기관 욜 그룹(Yole Group)이 4월 2일 발표한 ‘2025년 화합물 반도체 소자 산업 동향(Status of the Compound Semiconductor Device Industry 2025)’ 보고서에 따르면, 화합물반도체 시장은 2025년 약 138억 달러(약 19조1544억 원)에서 2030년 약 254억 달러(약 35조2552억 원)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만 2024년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13%의 고성장이 예상된다.

보고서는 자동차·모빌리티, 통신 인프라, 모바일·소비자를 화합물반도체 시장의 주요 성장 동력으로 지목했다. 특히 전기차 확산에 따라 SiC 전력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자동차 전장 분야는 2030년까지 연평균 22%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SiC는 고온·고전압 환경에서도 전력 손실이 적어 전기차 인버터, 충전기, 산업용 전력장치의 핵심 소재로 꼽힌다. 전기차 배터리 전력을 모터로 전달할 때 효율을 높여 주행거리와 충전 속도를 개선하기도 한다. 전력반도체는 전기를 변환·제어하는 반도체의 용도 및 기능을 지칭하는 용어로, 소재는 실리콘일 수도 있고 SiC 같은 화합물일 수도 있다.

통신·인프라 분야 역시 연평균 9% 성장세가 예상된다. 데이터센터 수요 증가와 5세대(5G) 기지국 확대가 성장의 핵심 배경이다. 광트랜시버(빛을 이용해 데이터를 주고받는 송수신 장치)에는 인듐인(InP) 또는 갈륨비소(GaAs) 소재의 소자가, 5G 기지국의 전파를 증폭하는 전력증폭기엔 질화갈륨(GaN) 소자가 쓰인다. InP는 고속 광통신용 소재, GaAs는 전자이동 속도가 빨라 스마트폰 전력증폭기와 군사용 레이더 등에 쓰인다. GaN은 전력 손실이 적고 소형화가 가능해 서버 전원장치, 스마트폰 고속충전기, 5G 인프라 등에서 활용이 늘고 있다.

전기차·5세대·인공지능 서버 등 차세대 산업 핵심으로 떠오른 화합물반도체. 글로벌 시장은 탄화규소(SiC)와 질화갈륨(GaN)을 중심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Gettyimage
모바일·소비자 분야에서는 스마트폰과 웨어러블 기기의 고속 충전용 GaN 전력 소자, GaAs로 만들어진 얼굴 인식용 ‘수직 공진형 표면 발광 레이저(VCSEL)’, 마이크로발광다이오드(LED) 등이 주목받고 있다. 반도체칩 안에서 빛을 내는 VCSEL은 고속 변조가 가능하고 집적화가 쉬우며 광 방출 효율이 높은 레이저 소자다. 또한 SiC, GaN는 에너지 효율이 높아 탄소중립 실현을 뒷받침하는 핵심 반도체로 부상했다.

차세대 산업 ‘핵심’으로 주목받자 뛰어드는 글로벌 기업들

이처럼 화합물반도체가 차세대 전력·통신·디스플레이 산업의 핵심 소재로 주목받자 글로벌 기업들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에서는 울프스피드, 온세미컨덕터, 코보, 스카이웍스 등이 화합물반도체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특히 이들 기업을 중심으로 뉴욕과 노스캐롤라이나 지역에 세계 최대 규모의 SiC 산업단지를 조성했다. 이곳은 웨이퍼에서부터 디바이스, 모듈까지 생산 체계를 구축해 자동차 전력반도체 수요 확대에 대응하고 있다. 2022년 8월 당시 바이든 행정부가 제정한 ‘반도체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과 맞물려 친환경차, 재생에너지 산업과 연계한 클러스터 전략이 가속화하고 있다.

독일 뮌헨에 본사를 둔 글로벌 반도체 기업 인피니온은 2025년 4분기부터 300mm GaN 전력반도체 웨이퍼를 고객사에 제공할 계획이다. 이는 기존 200mm 웨이퍼 대비 약 2.3배 많은 칩을 생산할 수 있어 효율성과 생산성을 크게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이 회사는 이미 세계 최초로 대량생산 인프라에 기반한 300mm GaN 제조 체계를 구축했다. 이를 통해 전력 손실을 줄이고 소형화가 가능한 차세대 전력 소자의 글로벌 공급망을 선도하겠다는 전략이다.

독일 인피니온이 추진 중인 300mm 질화갈륨(GaN) 웨이퍼 생산라인. 기존 대비 생산성을 크게 높여 글로벌 공급망 주도권 확보에 나섰다. Semiconductor Today
인피니온은 자체 팹(Fab·생산공장)에서 제작한 첫 방사선 내성(rad-hard) GaN ‘고전자 이동도 트랜지스터(HEMT)’를 발표하며 우주·방산 분야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소자는 미국 국방물자청(DLA)으로부터 최고 수준의 신뢰성 인증(JANS)을 받아 지구 저궤도 위성, 유인 우주선, 심우주 탐사 등 극한 환경에서도 쓸 수 있다. 특히 우주에서 발생할 수 있는 방사선 충격(단일사건효과·SEE)과 방사선 누적 피해(총 이온화 선량·TID) 테스트를 모두 통과해 안전성을 입증했다. 더욱이 크기는 작고 전력효율은 높아 차세대 우주 전력 시스템의 핵심 부품으로 평가된다.

전력반도체 일본, 세계 최대 클러스터 대만, R&D 선도 싱가포르

일본은 전통적으로 전력반도체 강국으로 꼽힌다. 로옴, 미쓰비시전기, 덴소 등이 미야자키, 구마모토 지역에 SiC 생산라인을 집중 배치해 자동차업계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특히 도요타 등 완성차 기업과 수직적 공급망을 통해 내수 중심의 안정적 생태계를 유지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일본은 소재, 디바이스, 모듈까지 자국 내에서 조달 가능한 체계를 이미 갖춘 상황이다.

대만은 Win Semiconductors와 AWSC를 중심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GaAs 파운드리 클러스터를 형성하고 있다. 현재 대만 북서부에 위치한 신주(Hsinchu)시와 남부과학단지에 구축한 단지는 모바일 무선주파수(RF·Radio Frequency)칩과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글로벌 수요를 흡수하고 있다. 특히 AUO와 엔노스타는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마이크로 LED 상용화를 위해 공격적 투자를 이어가며 차세대 디스플레이 산업의 전초기지로 성장하고 있다.

싱가포르도 글로벌 경쟁에 합류해 A*STAR와 글로벌 기업 협력으로 구축된 개방형 R&D 라인을 가동하고, 약 10억 싱가포르달러(약 1조836억 원)를 투입해 차세대 반도체 연구개발센터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소이텍, ASM 등 글로벌 기업과 협력해 스마트SiC™ 기술을 개발하고 전력·통신 분야 수요 확대에 대응하기 위한 SiC 웨이퍼 공급망 강화에 나선 것이다.

중국에서는 삼안 IC, 이노사이언스, 화찬세미텍 등 국영·민영 기업들이 대규모 보조금을 지원받으며 SiC·GaN·마이크로 LED 분야로 빠르게 진입했다. 이들 기업은 베이징, 샤먼, 선전 등 주요 지역에 화합물반도체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소재-디바이스-패키징을 아우르는 수직계열화를 강화하고 있다. 또한 InP 기반 레이저와 디스플레이용 소자 분야에서도 자급률을 높이며 글로벌 공급망 의존도를 줄이고 있다.

韓 기술력은 세계적, 파편화된 생태계는 한계

국내에서도 일부 기업은 세계 수준의 화합물반도체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SK하이닉스와 SK실트론 계열사인 SK 실트론 CSS는 SiC 웨이퍼의 주요 공급사로 자리매김하며 GaN 기반의 650볼트(V) HEMT 특성을 확보하고 SiC 웨이퍼 기반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GaN HEMT는 고출력·고효율·소형화에 유리해 실리콘 기반 트랜지스터 대비 장점이 크다. 삼성전자는 2025년부터 8인치 GaN 전력반도체 파운드리 양산에 돌입할 계획을 공식화하며 시장 진입을 예고한 상태다. LG전자 역시 포토닉스(Photonics·통신, 센서 등의 기술에 빛을 응용하는 산업),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강점을 보유하고 있다. 1999년 설립된 RFHIC 등 기업도 RF칩 영역에서 기술력을 축적하고 있다. DB하이텍도 GaN 시제품을 선보이며 차세대 전력반도체 사업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중소기업 중에서는 칩스케이(ChipsK)가 국내 최초로 650V GaN 전력반도체 양산에 성공했다. 향후 GaN 시스템 온칩(SoC·CPU, 메모리, 전력 관리 회로 등 여러 기능을 하나의 칩 안에 통합한 형태) 개발까지 로드맵을 제시한 상태다. 국내 RF 소자 기업인 RFHIC와 2014년 9월 설립된 스타트업 웨이브피아는 국산 RF용 GaN 칩 설계 능력을 확보해 국방·통신 장비 분야로 응용 영역을 넓히고 있다. 다만 이들 기업의 투자 규모나 생산능력과 같은 정량적 지표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정부는 화합물반도체를 전략산업으로 규정하고 정책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나노기술원은 5월 20일 화합물반도체기술협의회(CSTA)를 발족해 기업·인력·인프라를 아우르는 생태계 육성에 나섰다. 이에 응답하듯 정부는 올해부터 화합물반도체 산업 지원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월 화합물 전력반도체 기술개발을 위해 2028년까지 국비 939억 원, 민간투자 446억 원 등 총 1385억 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국방 분야에서는 7월 15일 방위사업청이 경기 화성시 웨이비스 본사를 방문하는 등 RF GaN 국산화 현장을 점검하며 기업 제안 수용을 검토하고 있다.

국내 기업과 연구기관도 탄화규소(SiC), 질화갈륨(GaN) 전력반도체 기술을 축적했지만, 산업단지와 네트워킹 부재로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우려가 제기된다. 사진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전경.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국내 대학·정부출연연구기관도 기술 인프라를 강화하고 있다. 국립목포대 화합물반도체센터는 글로벌 전자 테스트 및 측정 전문기업인 키사이트코리아와 협력해 전자설계자동화(EDA·반도체칩이나 전자회로를 소프트웨어 툴을 이용해 설계·시뮬레이션·검증을 자동화하는 과정) 기반 제작·측정·평가 인프라를 구축했다. 에피택시 성장은 반도체 기판 위에 원자 단위로 결정 구조를 정밀하게 맞춰 얇은 층을 형성하는 기술로, 화합물반도체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공정이다. 국내 정부출연연구기관 중에서는 한국나노기술원이 유일하게 GaN 에피택시 성장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산업단지·인재·협력 네트워크 강화…한국의 길

그러나 글로벌 산업 수준과 비교하면 국내 화합물반도체 산업은 여전히 파편화된 생태계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에서 언급한 욜 그룹 보고서는 “한국의 경우 화합물반도체 전용 단지나 수직계열화 체계가 미약하다”며 기업과 연구소, 소자 및 패키징 투자 현황을 유기적으로 연결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도 2025년 7월 16일 발간한 보고서 ‘과학기술정책 Brief 49호’를 통해 “한국은 일부 기업이 세계 수준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전용 산업단지와 수직계열화 체계가 미약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우려가 크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이를 극복할 방안으로 ▲핵심 기술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는 ‘전략형(Chokepoint) R&D 프로그램’ 추진 ▲국가 차원의 경제·안보·혁신 컨트롤타워 구축 ▲우수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한 맞춤형 인재 정책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한국나노기술원을 중심으로 한 연구 인프라를 활용해 기업·대학·출연연구원 간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고 투자를 체계적으로 연결하는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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