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식 거래적 동맹관계, 동맹 재정립 불가피
● 韓은 북핵 억지, 美는 中 견제·대만 염두
● 적 명시 않은 한미방위조약, 다중 위협 공동 대응
●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국익 관점에서 대처해야
●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제 미루기만 할 수 없어
● 72년 역사 한미동맹, 시련 속에서도 발전
최완규(59) 예비역 육군 준장은 대표적 미국 전문가다. 육군사관학교(육사) 44기 졸업·임관 후 일선 지휘관, 참모로 복무했다. 한미연합사령부 전쟁기획과장, 국방부 국방협력TF장, 미국정책과장, 육군 제8군단 참모장, 해군작전사령부 합동작전조정관, 육군3사관학교 교수부장을 역임했다. 이라크평화·재건사단(자이툰부대) 작전계획장교(소령), 아프간재건지원단(오쉬노부대) 부대장(대령)으로 두 차례 해외 파병 근무를 했으며, 미국과 연합작전 성공 공로로 미국 동성훈장(Bronze Star Medal)을 수훈했다. 육사에서는 전쟁사를 전공했고 고려대와 경기대에서 국제관계학 석사, 국제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예편 후 한미우호협회 사무총장을 지냈고, 육군사관학교 군사사학과 외래교수로 전쟁사·군사전략·작전술·현대전쟁연구 등을 강의하고 있다. 9월 8일 서울 노원구 육사 인근에서 최완규 교수를 만나 한미동맹의 과거-현재-미래, 한국의 선택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걸프전쟁 직후인 1993년 조지아주 포트 베닝 미국 육군보병학교, 2001년 9·11 테러 발발 시 캔자스주 미국 육군지휘참모대에서 연수했다. 약 8년 만에 미국은 완전 다른 국가로 변하고 있음을 체감했다. 탈냉전 후 유일 초강대국이자 걸프전쟁 승리 후 자신감 넘치던 국가가 고립주의로 회귀하고 있었다. 미국의 심장 뉴욕이 공격받은 후 재차 본토 공격 가능성에 사회 전반의 두려움이 느껴졌다.”
군복무 당시 대미 관계에서 핵심 역할을 수행했다.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이후 70년 넘는 역사를 이어오는 한미동맹의 현실을 어떻게 보나.
“역사는 시간이라는 씨줄과 공간이라는 날줄로 짜인 직물과 같다. 한미동맹 70년사를 돌이켜 보면 양국 관계가 원만했던 것만은 아니다. 6·25전쟁 정전 후 1980년까지 30년간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수호자이자 경제적 후원자로 한국인들에게 인식됐다. 1991년 소련 붕괴, 한국의 국력 신장, 남북 관계 변화, 민주주의의 제도적 정착 등으로 한국과 미국은 피(彼)지원-지원 관계에서 벗어나 상호 호혜적 동등한 관계를 요구하며 한미 관계가 정립되기 시작했다. 2022년 발발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은 6·25전쟁의 기억을 소환하며 동맹의 가치와 중요성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2022년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한미가 대등한 입장에서 ‘글로벌 포괄적 전략 동맹’을 지향할 것을 천명했다. 그런데 지난 1월 출범한 트럼프 2기 행정부로 인해 한미동맹은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했다.”
미국 일방주의를 내세우며 동맹 가치를 경시하는 듯한 트럼프 행정부로 인한 도전인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를 정책기조로 거래적(transactional) 관점에서 동맹국들이 책임을 더 많이 분담할 것을 요구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에는 안보 무임승차를 비판하며 방위비 상향을 요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제시했다.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동맹국도 마찬가지다. 미군 주둔 비용 분담금 인상, 자체 방위비 상향을 요구한다. 와중에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중 경쟁은 심화하고 있다.”
8월 한미 정상회담은 관세 등 경제·통상 부문에 초점이 맞춰졌다. 주한미군 주둔 분담금 인상 등 국방·외교 분야 의제는 잠복된 문제다. 인도·태평양 역내 분쟁 발발 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도 빠뜨릴 수 없다.
“미국이 자주 언급하는 건 이른바 ‘동맹 현대화’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하는 과정이라는 점도 숨기지 않는다. 제이비어 브런슨 한미연합사령관은 ‘한국이 북한에 더 강력한 대비 태세를 갖추라’고 요구했다. ‘동맹을 현대화해 전략적 유연성을 가질 수 있다’고도 했다. 한국은 북한의 위협을 막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하고, 주한미군은 ‘붙박이 군대’에서 탈피해 인도·태평양 역내(域內)에서 자유롭게 운용하겠다는 취지다. 브런슨 사령관은 전략적 유연성을 두고서 ‘한곳에 고정돼 있는 것은 군사적으로 실용성이 떨어진다. 우리가 하나의 임무 외에 다른 임무도 소화할 수 있으면 문제가 없다’고 단언했다. 전략적 유연성 문제는 기정사실이라는 의미다. 주한미군 역할에 집중하면 숫자보다는 역량에 방점이 찍혔다. 동북아시아 정세 변화에 대응해 주한미군 병력 규모가 줄어들어도 첨단 전력 보강을 통해서 정예화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실제 미국은 5세대 스텔스 전투기 F-35A 기종을 군산 기지에 상시 배치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를 모(母)기지로 하는 주한미군은 한반도 내 북한의 군사 도발 억지·방어에 주안점을 둔다. 주일미군은 일본 방어뿐만 아니라 대만해협, 남중국해 안보를 담당하며 역내 해상·공중 작전에 특화됐다. 주일미군 사령관을 겸하는 스티븐 조스트 공군 중장은 올해 3월 출범한 육해공 자위대 통합작전사령부(JSDF)를 통해 ‘주일미군의 능력과 권한이 확대될 것’이라고 했다.”
주한미군 지상군 감축설도 제기됐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발표할 ‘2025 국방전략(NDS)’을 앞두고 중국, 러시아 등 견제에 집중하기 위해 해외 주둔 미군 재배치를 검토하고 있다는 분석이 잇따른다. 미국이 한국에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요청하거나 주한미군 감축을 협상 카드로 제시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일각에선 장기적으로 주한미군과 주일미군을 통합 지휘하는 시스템 도입 등 지휘체계의 개편도 거론될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관련 핵심 주제는 역내 분쟁 발생 시 병력 차출 문제다. 한국의 자동 개입 문제도 제기된다.
“한미동맹을 두고 ‘철통 같다’라고 하는데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근래에는 미·중 경쟁의 지정학 구도 속에서 본질이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올랐다. 핵심은 미국이 주한미군을 북핵 억지력 차원이 아닌 중국 견제라는 지역 전략의 핵심 자산으로 활용하려 든다. 한국 내에서 우려와 반발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미국은 인도·태평양 역내에서 자국 주둔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보를 추구하고 있다. 대만해협 유사시 개입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1953년 체결한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그 원인이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어떠한 부분이 그렇다는 것인가.
“한미상호방위조약에는 특정 ‘적(敵)’을 명시하지 않는다. 양국 협의하에 다중 위협에 공동 대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한미연합사령부는 주한미군 역할이 북한 억지를 넘어서 중국, 러시아를 포함한 다수 적성국에 대한 억지 수단이라고 명시했다. 주지할 점은 한국은 여전히 한미상호방위조약을 한반도 중심의 억제 체계로 이해하고 있고, 특히 대만해협 사태와 연계하는 데에는 강한 거부감을 보인다는 점이다. 미국 국방부 주요 인사들은 주한미군의 전역(戰域)급 작전 유연성 확대를 주장하고 있으며 일부는 주한미군이 북한 억제에 발목 잡혀 있다는 식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최 교수는 “대만해협 유사시 한국군은 북한과 중국의 도발 억제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하며 한국군 전투 병력 파병 가능성은 낮게 본다”고 전망했다.
전략적 유연성과 주한미군 역할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전략적 유연성 자체를 미국의 일방 요구로 받아들이기보다는 한국 주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연합지휘구조 개편, 주한미군 주둔 비용 분담금 협상 지렛대로 활용하는 것이 현실적인 전략이 될 것이다. 전략적 유연성을 조건부 수용하되 전제는 한미 양국 간 명확한 이해관계 조율이 전제돼야 한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통해 한국군이 주도하고 미군이 지원하는 연합지휘체계 구축이 가능하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김영삼 대통령 재임기인 1994년 평시작전통제권이 전환됐다. 노무현 정부에서 2012년까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도 합의했으나 이후 정부에서 추진과 보류가 반복되고 있다. 해묵은 문제인데 결론은 명확하다. 언젠가 전환해서 한국군 주도의 안보 전략을 구축해야 하는데, 박근혜·윤석열 정부 등 이른바 보수 정부에서 ‘시기상조’를 명분으로 미뤘다. 정권교체 때마다 이념 편향적 결정에 따른 혼선으로 한국군은 미래 군사적 핵심역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전제로 대응해야 한다. 무작정 미루기만 하는 것은 좋지 않다.”
“국제관계에서 동맹은 거래의 대상이 아니다. 위협에 공동 대응하며 침략을 받았을 때 함께 싸우겠다는 약속이 동맹의 본질이다. 문제는 사업가 출신 트럼프는 거래적 관점으로 접근한다는 점이다. 전통적 국제관계와 거리가 먼 방식이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또 다른 원인은 오늘날 미국은 과거의 미국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 세계 GDP의 3분의 1 이상을 점하고 국방비 지출 40% 이상을 차지하던 미국은 이제 없다. 제조업 경쟁력은 상실했고, 달러를 기반으로 한 국제금융 주도권도 과도한 정부부채로 위험한 상황이다. 한국에는 평택·동두천·오산·대구 등에 약 2만8500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주둔 비용 중 인건비를 제외한 항목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특별협정(SMA)’을 체결해 매년 일정액을 한국 정부가 부담한다. 광의의 분담금 개념이 존재하는데 이는 비용(cost) 분담을 넘어 역할(role) 분담을 의미한다. 단순 주한미군 주둔 비용 지원을 넘어 한국이 한반도 방어에 더욱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것과 미국이 고민하는 지역 차원의 문제에 기여하는 것 역시 중요한 분담이란 의미다. 중국의 위협을 억제하려는 미국의 행보를 고려할 때 역할 분담 요구도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 주둔 비용 분담금 자체를 협상 카드로 활용하려 하는 듯한데.
“그가 주장하는 100억 달러 인상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 인건비를 제외하고서도 한국은 전체 비용의 약 60~70%를 부담하고 있고, 미국도 수긍하고 있다. 매년 지급하는 비용을 사용하지 못해 발생하는 적지 않은 불용 자금도 은행에 예치하고 있다. 100억 달러 지급은 가능하지도 않고 사용할 수도 없다는 의미다. 100억 달러 인상 카드는 압박용이다. 다만 한국은 이를 공개 비난해서는 안 된다. 주둔 비용 분담금 인상에 원칙적으로 동의하면서도 구체적 금액은 국방 당국에 맡기자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미군 함정 유지·보수사업(MRO) 참여 등으로 명분은 미국에 주고 실리는 한국이 챙기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미국이 과도한 요구를 하면 일본과 같이 항목별 비용을 지출하고 검증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한국은 총액 기준 협상인데 주한미군에 유리한 구조다. 총액을 배정받은 후 절감할 여지를 남기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경제와 안보를 패키징하는 것이다. 경제·무역 분야에서 한미 양국은 중요 무역 파트너다. 안보적으로 양국은 대체 불가능한 동맹이라는 속성을 지녔다. 주지할 점은 안보를 희생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우리 안보에도 도움이 되는 윈-윈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국방비 증액은 강군 건설의 길로, 방위비 분담금 증액은 미국의 억제력 제공 강화로 연결해야 한다. 동시에 평화와 억제 두 가지 임무를 모두 달성하는 정부가 돼야 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하는 국익 중심 실용 외교를 성공시키고 한반도 평화를 지키려면 한미동맹을 격상하고 중국 등 주변 강국과 관계 개선에 나서는 등 정교한 외교 전략으로 국방력과 국력을 강화해야 한다.”
복합 도전에 직면한 한미동맹에 조언한다면.
“한국은 한미동맹에서 ‘연루(連累)와 방기(放棄)의 딜레마(abandonment-entrapment alliance dilemma)’에 자주 직면한다. 현실에서 미국이 요청하는 반중 전선에 동참하면 중국과 갈등 혹은 대만해협 유사시 연루의 위협이 발생한다. 반대로 참여하지 않으면 한미동맹 약화라는 방기의 우려가 상존한다. 이는 동맹관계에서 상대적 약소국이 직면하는 구조적 불안정성에 기반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외교적 노력이 중요하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종합 국력이나 지정학적 중요성을 고려할 때 한국도 더는 약소국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을 대할 때 헌신에 감사하는 자세를 취할 필요는 있지만 한국이 기여하고 있고, 앞으로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당당하게 말해야 한다. 한미동맹은 많은 위기를 겪었지만 위기 속에서 더 강해져 왔다는 것을 재차 강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