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이 부러워하는 ‘K-치안’, 우리 손으로 망가뜨릴 것인가

입력
수정 2025.09.27. 오후 12:08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노정태의 뷰파인더] 우려 넘어 공포 자아내는 ‘검찰개혁’

● 카페 테이블 위 휴대폰, 훔쳐가지 않는 까닭
● ‘물건 훔치면 처벌받는다’는 확고한 신뢰 때문
● 검찰 잘못 있지만 무턱대고 악마화해 범죄 천국 만들 건가
● 수사권 조정 후 사건 처리, 2020년 142.1일→ 2024년 321.7일
● 검찰개혁=수사 민영화, 치안 붕괴와 경제적 비용 증가 우려
● 수사개시권은 경찰이, 종결권은 검찰이 맡으면 전횡 예방


9월 7일 더불어민주당·정부·대통령실은 검찰청을 해체하고 검찰의 기소 및 중대범죄 수사 기능은 신설되는 공소청과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으로 분리하는 내용의 정부 조직 개편안을 발표했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 뉴시스
“더 이상 ‘기소하기 위한 수사’를 할 수 없도록 기소권과 수사권을 동시에 갖는 시스템을 끝내야 한다.”

4월 26일, 조기 대선을 앞두고 있던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TV 토론회에서 한 말이다. 그가 발언하자 경선 경쟁자였던 김동연 경기지사, 김경수 전 경남지사도 맞장구를 쳤다. 민주당의 대선주자급 인사 모두가 입을 모아 ‘정치검찰 완전 해체’를 외쳤다.

일각에서는 민주당의 그러한 움직임을 ‘선거용 구호’로 여겼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은 당선 후 이른바 ‘검찰개혁’의 속도를 올리고 있다. 이 대통령은 “추석 전에 검찰개혁을 끝내겠다”는 타임라인을 제시했고, 민주당과 정부는 그에 맞춰 9월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검찰청 폐지 등을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검찰이 법과 질서를 지키는 준사법기관이 아니라 ‘정치 기관’으로 행세하는 것을 좋다고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온 국민이 지켜본 검찰의 모습이 실망스러웠고, 때로는 분노를 자아냈다는 것 또한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여당과 정부, 그리고 이 대통령이 밀어붙이는 ‘검찰개혁’은 우려를 넘어 공포를 자아낸다. 근대국가가 출현한 이래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수백년 간의 시행착오를 거치며 만들어낸 경험의 산물을 깡그리 무시하고, ‘우리 편을 감옥에 보냈으니 너희는 악마’라는 식의 단순한 논리에 이성을 내맡긴 채, 국민 전반의 생활을 망가뜨릴 수 있는 최악의 선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지 과장된 우려가 아니다. 아주 구체적 근심이다. 최근 한국인들이 유독 ‘국뽕’의 소재로 삼는 우리의 튼튼한 치안 시스템이 삽시간에 무너질 가능성까지 생각해야 한다. 카페 테이블 위에 휴대폰을 놓고 다녀도 괜찮았던 나라는 순식간에 추억의 영역이 될 것이다. 오히려 손에 휴대폰을 들고 다녀도 소매치기나 날치기가 빼앗아가는 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제대로 수사하지 못하고 검사들은 손발이 꽁꽁 묶인 채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범죄가 판치는 나라로 전락할 가능성을 우리는 진지하게 걱정해야 한다.

절도 만연한 美, 의약품 쇠사슬로 묶어놓고 판매
왜 한국인은 카페에 휴대폰을 두고 다닐 수 있는 걸까. 누군가 훔쳐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믿음이 있는 이유는 실제로 그러한 절도의 발생이 매우 적은 데 있다. 여기서 진짜 질문. 왜 한국의 잠재적 범죄자들은 카페의 테이블 위에 놓인 남의 휴대폰을 가져가지 않는 걸까. 한국인의 법과 윤리 관념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탁월해서일까.

잠재적 범죄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할 수는 없으므로 우리는 그저 추측할 수밖에 없지만, 아무래도 윤리 관념 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가장 상식적으로 도달 가능한 이유는 ‘체포와 처벌이 두려워서’일 수밖에 없다. 남의 물건을 훔치면 잡힐 가능성이 크다, 거의 확실하다는 생각을 하면, 당연히 물건을 훔치지 않는다. 이렇게 절도가 드문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자리 잡으면 그 후로는 시민 스스로 그러한 분위기를 지켜나가게 되는 것이다. 요컨대 절도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자리 잡게 된다.

문제는 그러한 신뢰가 공적 제도에 대한 믿음 위에서 작동한다는 데 있다. 만약 ‘도둑질을 해도 잡히지 않는다’ ‘설령 경찰서에 불려가더라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훈방 조치로 끝난다’ 이런 식의 인식이 한번 퍼지고 자리 잡으면 어떻게 될까. 정반대의 방향으로 사회적 관념이 구성될 것이다. 사람들은 누군가 내 물건을 훔쳐가지 않을지 긴장한 채로 살아야 하며, 그러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거래비용의 증가와 사회적 스트레스는 모두 시민의 몫으로 돌아가고 만다.

약 2년 전 미국을 방문했을 때 가장 놀랐던 것 중 하나가 바로 그것이다. 뉴욕 시내의 드러그스토어에 가보니 사실상 거의 모든 제품을 수납장에 넣어 열쇠로 잠가놓고 있었다. 의약품뿐 아니라 식품 등 온갖 물건이 다 쇠사슬로 묶여 있었고, 그것을 구입하려면 열쇠를 가지고 있는 직원을 불러야 했다. 절도가 만연해 있기에 판매자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하고, 그만큼 직원을 쓰는 인건비가 들어가며, 제반 비용은 모두 소비자에게 전가되는 구조였다.

정반대의 경우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아이스크림뿐 아니라 이제는 수많은 상품이 무인 판매된다. 사람 없는 가게에 고객이 들어가 물건을 담고 자기 손으로 결제하고 나오는 시스템이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이런 방식이 가능한 이유는 단 하나, ‘물건을 훔치면 처벌을 받을 것이 확실하다’는 사회적 신뢰가 확고하게 쌓여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저격당한 미국의 우파 정치 인플루언서 찰리 커크가 한국에 와서 부러워한 점도 바로 그것이다. 새벽 늦은 시간에 산책을 해도 괜찮은 나라. 지하철을 타고 갈 때 내 물건을 소매치기나 날치기당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 설령 어떤 범죄를 당한다 한들 범인은 잡힐 것이고 처벌받을 것이라는 점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나라. 그것이 우리가 살아오고 있으며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6개월이면 기소했을 범죄, 2~3년씩 걸려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해 온 ‘검찰개혁’은 바로 이런 대한민국의 치안 시스템을 망가뜨렸다. 이미 지금까지 진행된 바만 놓고 보더라도 충분히 그렇다. 2021년 문재인 정부에서 주도한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과 경찰은 사건을 서로 주고받으며 시간을 허비했다. 6개월이면 수사를 완료하고 기소했을 사안이 이제 2, 3년씩 걸린다. 이는 숫자로 확인되는 사실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전체 사건 처리 기간은 2020년 현재 142.1일에서 수사권 조정 이후인 2024년 현재 321.7일이 됐다. 2.2배, 즉 두 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이렇게 사건처리가 지연되고 있다는 것은 경찰이 익숙하지 않은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과 같다. 경찰 스스로가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을 넘어서는 사건이 쏟아져 들어온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높으신 분’과 연결된 사건이 들어오면 경찰은 당연히 그런 걸 우선시할 수밖에 없다. 서민들이 겪는 상대적으로 경미한 범죄, 가령 절도 같은 것의 처리는 늦어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대한민국의 치안은 우수한 사회 인프라 가운데 하나다. 사진은 초등학생 납치 미수 등 아동 대상 범죄가 잇따르는 가운데 9월 12일 대구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경찰이 예방 순찰에 나선 모습. 뉴시스
이렇게 한번 사건 처리가 지연되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카페 테이블에 휴대폰을 두고 가도 되는 대한민국’은 사라진다. 절도범 검거율이 낮아지면 해당 범죄가 더 기승을 부리는 악순환이 벌어지게 된다는 이야기다. 그런 악순환의 사례는 해외에서 찾을 필요조차 없다. ‘카페 테이블의 휴대폰과 노트북은 안 훔쳐도 자전거는 훔치는 나라’, 바로 우리 스스로가 그 사례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한 해 국내에서 발생한 빈집털이는 3183건, 상점 절도는 4055건, 소매치기는 278건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자전거 절도는 1만2033건에 달한다. 대한민국이 단군 시대부터 ‘엄복동의 나라’이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인과가 뒤집혔다. 한국은 ‘엄복동을 잡지 않는 나라’이기 때문에 자전거 도둑이 판을 치는 나라가 된 것이다.

이는 자전거 도난 사건의 검거율만 봐도 알 수 있다. 2022년 발생해 신고 접수된 자전거 도난 사건 1만2033건 중 범인이 검거된 사건은 3989건이다. 세 건의 범행 중 한 건만 체포당하는 꼴이다. 평균 절도 검거율이 62%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턱없이 낮은 수치다. 검거율이 낮으니 범죄를 더 저지르고, 범죄 발생이 빈번하니 특별한 노력 없이는 검거율이 높아지지 않는, ‘범죄의 악순환’에 빠져 있는 셈이다.

검사라는 법조 엘리트, 무료로 범죄 피해자 변호
수사 프로세스가 엉망이 된 나라는 그런 곳이다. ‘치안 국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질 것이다. 대신 온 나라가 ‘엄복동의 나라’가 된다. 예전에는 그저 자전거만이 치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이제는 모든 물건이 걸핏하면 도둑맞고, 신고를 해도 경찰은 범인을 잡지 못해, 결국 피해자가 자포자기하는 그런 나라로 전락하고 만다. 찰리 커크를 비롯해 수많은 외국인이 부러워하는 ‘안전한 나라 대한민국’은 이렇게 일장춘몽으로 끝나게 되는 것이다.

‘수사 민영화’. 정부와 여당이 밀어붙이는 검찰개혁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그렇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검사라는 법조 엘리트를 세금으로 고용해 수사 지휘와 공소 유지라는 법률서비스를 범죄 피해자에게 무료로 제공해 왔다. 반면 지금은 범죄 피해자가 변호사를 고용해서 경찰에 압력을 넣어야 사건이 진행될까 말까다. 아주 쉽게 표현하자면, ‘나랏돈’으로 고용된 변호사인 검사가 경찰을 들들 볶아서 지금 우리가 아는 신속하고 정확한 범죄 수사 시스템이 유지되고 있었다.

검찰이 경찰을 ‘내리 쪼는’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수사지휘권이 존재한 데 있다. 검찰에는 많은 경우 경찰보다 전문성을 지닌 검찰 수사관이 있고, 검사는 법 전문가다. 초동 수사를 맡은 경찰이 증거를 수집해 오면 검찰 수사관은 그것들을 증거능력이 있는 증거로 취합하고, 그러한 증거에 입각해 검사가 피고인이 유죄판결을 받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민주당과 정부는 바로 그 수사지휘권을 박탈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왜일까. 이유라고 제시되는 논거들을 아무리 뒤져봐도 제대로 된 설명을 찾기 어렵다. 검찰이 수사지휘권을 남용할 우려가 있으니 처음부터 주지 말아야 한다는 항변이 되풀이되고 있을 뿐이다.

백번 양보해서 수사지휘권의 남용으로 인한 인권침해가 있다고 해보자. 그 인권침해를 당하는 사람은 누굴까. 범죄자 내지는 범죄를 저지른 정치인이다. 완전히 결백한 누군가에게 없는 죄를 만들어서 뒤집어씌우는 일이 2025년 현재에도 불가능하지야 않겠지만, 사실상 거의 가능성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므로, 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은 결국 범죄자나 범죄를 저지른 정치인의 인권을 위해 범죄 피해자 모두의 인권을 내주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교환이 과연 올바른 것일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유럽의 복지국가를 모델로 삼아 우리의 시스템을 개조하는 것만이 절대 과제처럼 여겨지던 시절에 갇혀 있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전혀 다른 세상 속에 살고 있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 프랑스, 그 외 수많은 선진국이 치안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시대다.

치안은 일종의 인프라, 수사 민영화는 매우 잘못
우리는 치안을 일종의 인프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수도, 전기, 가스, 도로처럼 국가가 국민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마땅히 지불하고 유지해야 하는 필수적 요소로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놓고 볼 때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검찰 해체, 아니 수사 민영화는 매우 잘못된 방향이다. 수도·전기·가스·도로를 민영화하면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듯이, 검찰이 공짜로 제공하던 수사 지휘와 공소 유지를 민영화하는 것은 국민에게 경제적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요소들도 결국은 그 모든 인프라를 전제해야 가능하다. 24시간 안정적인 전기가 공급되고, 깨끗한 물이 나오고,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배송이 지연되는 일 따위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렇게 주어진 것들 위에 한국의 경제적 번영과 K-컬처의 성공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치안도 그러한 인프라 중 하나다. 그런 인프라가 부족한 나라에 살던 사람들이 와서 보면 너무도 감탄하고 부러워하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인프라다. 새벽까지 K-팝 댄스를 연습하던 청소년들이 한 사람씩 뿔뿔이 흩어져 귀가해도 아무 탈이 없고, 전 세계인이 좋아하는 K-푸드를 파는 마트에 도난 방지용 쇠사슬은 물론이고 안전 요원조차 한 명도 서 있지 않아도 되는 것, 이 모든 것이 다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는 K-치안 인프라다. 우리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치안 강국에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늘 곁에 있는 것의 고마움을 곧잘 잊는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당연히 잡힌다, 나는 피해자로서 당당하게 경찰서에서 3자 대면을 하며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 이런 ‘상식’이 얼마나 놀라운 특권인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막무가내 검찰 해체에 대해 국민적 저항이 크게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안타깝지만 당연한 일이다. 당연하게 여기는 무형의 인프라가 허물어질 때 그 위험성을 간파하고 경고하는 목소리는 ‘차가운 이성’에 기반하고 있는 반면, 검찰을 무턱대고 악마화하며 범죄 천국을 만드는 이들은 ‘뜨거운 정념’에 호소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검찰 해체는 막아야 한다. 대안은 이미 제시돼 있다. 경찰만이 수사를 시작할 수 있고, 검찰만이 수사를 종결할 수 있게 하면 된다. 지금까지 보여온 검찰의 정치적 전횡도 막을 수 있고, 경찰의 방만한 수사로 인한 피해도 예방 가능하다. 세계가 부러워하는 ‘K-치안’을 우리 손으로 망가뜨릴 수는 없다. 국민 모두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노정태

● 1983년 출생

● 고려대 법학과 졸업, 서강대 대학원 철학과 석사

● 前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 한국어판 편집장

● 저서 : ‘불량 정치’ ‘논객시대’ ‘탄탈로스의 신화’

● 역서 : ‘칩 워’ ‘인간의 본질’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外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