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에는 수갑, 발에는 족쇄, 몸에는 쇠사슬…72명 한방에
● 구속 장비 사용 허가되지만…“인권침해 최소화했어야”
● ‘미란다 원칙 미고지’ 증언 나오면서 정당성 ‘흔들’
● 국무부, 상무부, 국토안보부 제각각… ‘중구난방 대처’에 무게
● “한국만의 문제 아냐” 우려에 트럼프 교통정리
이번 사태가 한국 사회에 준 충격은 컸다. 한국에서는 경찰이 수갑은 사용하더라도 쇠사슬이나 족쇄는 사실상 쓰지 않는다. 더구나 이번에 구금된 이들은 범죄자라기보다 회사 업무차 파견된 근로자로, 일터에서 일하던 중 체포됐다. 게다가 ICE, 국토안보수사국(HSI), 마약단속국(DEA), 조지아주 순찰대 등이 합동으로 실시한 이번 단속은 외신에서도 “마치 전쟁터(war zone)에 들이닥친 것 같았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대대적이었다. 체포 다음 날 ICE가 자랑하듯 “조지아주에서 불법 고용과 연방 범죄를 대상으로 한 합동 작전을 주도했다”고 발표했고, 당시 상황을 담은 영상까지 공개해 파장을 키우기도 했다.
미국은 범죄 의심 현장을 제압할 때 물리적 장비 사용이 한국보다 폭넓게 인정되는 편이다. ICE의 체포·구금 기준에 따르면 수갑, 족쇄, 허리 구속용 쇠사슬·벨트(waist chain or belt) 등 구속 장비 사용은 “대상자의 안전 확보, 시설 질서 유지, 재산 손괴 방지 등을 위해 필요하고 합리적 수준”이라면 허용된다. 이 때문에 단순히 족쇄나 쇠사슬을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는 문제 삼기 어렵다. 이 변호사 역시 “ICE 입장에서는 공무수행 대상자가 외국인근로자라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점, 수백여 명이 현장에 있어 통제가 필요했다는 점, 실제로 일부 근로자가 체포를 피하려 환기구에 숨거나 연못으로 도망치기도 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체포 과정이 정당했다고 항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 측이 미란다 원칙조차 고지하지 않았다는 증언이 나온 만큼 정당성을 둘러싼 논란은 불식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의 쟁점은 “왜 하필 지금인가”에 모인다. 특히 한미 양국이 관세 협상의 세부안을 조율하던 시점에 한국 기업의 근로자 수백 명이 대거 구금되는 사태가 터지면서, 단순히 이민법 집행을 넘어 정치적 계산이 깔린 것 아니냐는 의문까지 제기된다. 구금된 한국인 근로자 317명은 전자여행허가(ESTA, 170명), 단기 상용·관광 비자(B1·2, 146명), 취업허가(EAD, 1명) 비자로 미국에 입국했다. 미국 측은 전문직 취업비자(H-1B)나 주재원 비자(L1·E2) 등을 받아야 하는데, 상당수가 관광 목적이라고 신고한 후 편법 근로를 해왔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반면 산업계는 “전문직 비자가 원활히 발급되지 못하면서 관광비자 등으로 인력을 투입하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져 왔다”며 이번 조치가 이례적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로 사태 발발 일주일이 후인 9월 11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은 미국 CNBC 인터뷰에서 “한국은 (이재명) 대통령이 (워싱턴DC에) 왔을 때 (관세 협정에) 서명하지 않았다”며 “유연성은 없다. 관세를 내든지, 아니면 합의를 받아들이든지 양자택일이다”라며 재압박했다. 반대로 크리스토퍼 랜도 미국 국무부 부장관은 9월 14일 한국을 찾아 “향후 어떤 유사 사태도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며 “한국 근로자들의 기여에 합당한 비자가 발급될 수 있도록 후속 조치 관련 실무 협의를 속도감 있게 진행하자”고 말했다. 앞서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역시 9월 11일 ‘동아일보’와의 화상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 내부에서 손발이 서로 뭘 하는지 몰라서 발생하는 사태”라고 분석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사태를 사전에 인지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는 “수백 명이 체포될 수 있는 대규모 작전이고, 보통 이러한 작전은 수개월 동안 준비하므로 트럼프 대통령이 사전에 보고를 받았다고 봐야 한다”며 “다만 이후의 반응을 보면 이 정도의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민자 단속이 트럼프 대통령의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 정도 대규모 작전은 사전에 대통령에게 전달됐을 개연성이 높다는 설명이다.
미국 내에 건설 중인 한국 기업의 공장은 한두 곳이 아니다. 현재 반도체, 태양광, 전력기기, 자동차 부품, 화학, 식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20여 개 공장이 들어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향후 유사한 일이 재현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업들의 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다. 봉 교수는 “이번 사태가 미국 정부 요구에 따라 현지에 공장을 짓는 전 세계 기업들에 미국 진출을 다시 고려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고,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진화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며 “더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게 된 만큼 미국 입장에서도 부담이 커 유사한 일이 반복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