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교육 축약판, 경기도서 시작된 교육개혁
● 수행평가 재구조화, AI 교육 시스템 도입 드라이브
● AI, 지식 전달자 넘어 학습 설계자이자 동반자로 변모
● 교육개혁 목표는 대학입시 제도 개편…줄 세우기 탈피
그동안 서·논술형 평가는 채점 부담과 공정성 논란, 시간 부족에 막혀 ‘그림의 떡’에 그쳤다. 그러나 경기도교육청이 AI를 교육 현장에 투입하면서 이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테스트 결과, AI와 교사의 채점 일치율은 95%를 넘었고, 학생 30명분 분량을 불과 5분 만에 처리할 수 있었다. 덕분에 교사는 수업과 학생 지도에 더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고, 학생은 AI 피드백에 따라 논리와 표현을 다듬을 수 있게 됐다.
경기도는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160만 명이 배움을 이어가는 지역이다. 인구, 학교, 재정 규모에서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것은 물론 도시·농촌·산촌·어촌이 공존하며, 인구 밀집 지역과 인구 감소 지역이 혼재돼 대한민국 교육의 축약판으로 평가받는다.
임태희표 교육개혁의 한가운데에는 AI가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급변하는 AI 시대에 발맞춰 학생 성장을 직접 챙기고 있다. 암기 위주, 이른바 ‘학원 찬스형’ 수행평가에서 벗어나 ‘수행 지옥’을 끝내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수행평가 구조를 손질하는 한편, AI 기반 교수·학습 플랫폼 하이러닝을 본격 도입해 교육 환경의 질적 성장을 꾀하고 있다. 교사의 평가 설계 부담을 줄이고, 학생 성장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관리해, 개개인의 잠재력을 극대화한다는 구상이다. “AI 플랫폼으로 미래 인재를 육성한다”는 것이다.
특히 수행평가는 공교육 불만의 중심에 자리했다. 학생은 밤늦게까지 과제를 하느라 지쳤고, 급기야 학부모가 사교육에 의존해 수행평가를 해결해 주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이 과정에서 각 가정의 경제력 격차가 성적 격차로 이어지며 공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게다가 수행평가의 절대량이 늘어가면서 교사의 업무 강도 역시 높아지고 있다.
임 교육감은 8월 11일 ‘신동아’ 인터뷰에서 이를 “수행 지옥”이라 부르며 칼을 빼 들었다. “암기 위주, 학원 찬스형 수행평가를 종식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수업 시간 내 평가 중심으로 구조를 재편하고, 불필요한 수행평가를 줄이는 동시에 AI 기반 채점 시스템을 도입해 공정성과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방향도 제시했다.
경기 교육의 변화는 수행평가 개편에만 머물지 않는다. 경기도는 4차 산업혁명 시대 흐름에 맞춰 AI와 디지털 기술을 공교육 전반에 접목하는 혁신적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그 중심에는 경기도교육청이 자체 개발한 AI 기반 교수·학습 플랫폼 하이러닝이 있다. 학생의 이해도 진단부터 맞춤형 콘텐츠 제공, 수업 설계까지 지원하는 ‘AI 학습 도우미’다.
하이러닝은 2023년 162개 학교를 대상으로 시범 운영을 시작했다. 2025년 8월 기준 대안교육기관을 포함해 학생 120만여 명, 교사 8만7000여 명이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학교로 찾아가는 하이러닝 맞춤형 교육’을 통해 263개교 1만407명의 교원에게 활용법을 전파했다.
이 플랫폼에 학생이 서술형·논술형 답안을 제출하면 AI가 즉시 채점하고, 논리 전개·개념 이해·자료 활용 수준 등을 분석해 맞춤형 피드백을 제공한다. AI가 1차 채점을 맡고, 교사가 이를 검토·보완해 최종 점수를 확정하는 구조다. 채점의 일관성과 객관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교사의 업무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여 학생·학부모의 신뢰 회복에도 기여할 전망이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각 교사가 교육 현장의 상황에 맞춰 하이러닝의 다양한 기능을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구조”라며 “하이러닝을 활용해 수업을 진행하면 즉각적 피드백이 오는 만큼 만족도가 굉장히 높다”고 말했다.
기능 고도화도 속도를 내고 있다. 수업 설계안 공유·복제, AI 논술 문항 자동 생성, 맞춤형 평가 제작 기능이 추가됐고, 학생 개인의 학습 수준과 흥미를 분석해 교사의 맞춤형 콘텐츠 개발을 돕는다. 경기도교육청은 이미 전 학생에게 1인 1스마트기기를 지급했고, 도내 전 학교의 무선통신망(Wi-Fi) 구축을 완료했다. 교사의 수업 역량 강화를 위해 ‘하이코칭’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AI가 지식 전달자를 넘어 학습 설계자이자 동반자로 변모하고 있다.
경기발(發) 교육개혁의 목표는 대학입시 제도 개편이다. 교실 속에서 아무리 공정하고 창의적인 평가를 도입해도, 대입이 여전히 암기식·줄 세우기식 구조로 진행된다면 고교 교육혁신은 절반의 성공에 그칠 수밖에 없다. 임 교육감이 AI 기반 학습·평가 혁신과 함께 대입 개혁에 힘을 쏟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교육의 신뢰 회복과 미래 인재 양성이라는 목표를 완성하려면 교실의 변화가 곧바로 입시 구조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판단이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경기도교육청은 지난 1월 21일 내신 상대평가 폐지 및 5단계 절대평가제 도입 등을 골자로 한 ‘2023 대입개혁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7월 대입 개혁 태스크포스(TF) 출범 후 6개월 만에 내놓은 안이다. 개혁안은 △내신 평가 개편 △수능 체제 개편 △대입 전형 개선을 3대 축으로 한다.
내신은 석차 중심의 상대평가를 폐지하고, 학업 성취도에 따라 A~E로 나누는 5단계 절대평가로 전환한다. 아울러 AI·빅데이터 시대에 걸맞게 창의적 사고력과 문제 해결력을 평가하는 서술·논술형 평가 비중을 늘리고, 교사 역량·학교별 편차가 큰 현행 학교생활기록부는 과목별 성취 수준 중심의 체크리스트 방식으로 바꾸는 방안을 제시했다.
수능 체제 역시 절대평가와 서·논술형 평가를 확대해 과열된 입시 경쟁을 완화하고, 교육의 질을 높이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 이를 위해 △AI 기반 1차 채점 △교사 평가 검증 절차 △전문평가요원 검토를 거치는 3단계 채점 체제를 도입해 논술 채점의 신뢰성을 높일 방침이다.
대입 전형은 3학년 2학기까지 평가가 가능하도록 시기를 조정하고, 내신·학교생활기록부·수능 성적을 종합 반영하는 수시·정시 통합안도 제안했다. 경기도도교육청은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2026학년도 중학교 1학년 학생이 치르는 2032학년도 수능부터 개혁안을 적용하는 방안을 정부에 건의할 계획이다. 임 교육감은 “올해 안에 교육부·국가교육위원회·대학과 공감대를 형성해 확정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