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입 수단으로 전락한 교육, 경쟁 대상으로 취급된 학생
● 상대평가, 한국 사회에 남긴 폐해 깊어…‘줄 세우기’로 귀결
● 내신·수능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서·논술형 평가 확대해야
● AI-교사-전문평가 교원, 3단계 평가 체계 도입
● AI 도움 받은 교사, 수업 개선과 학생 지도에 힘쓸 것
● ‘수행 지옥’ 바꿔야…횟수↓ 과목 특성·교사 자율성↑
● AI 교수·학습 플랫폼 하이러닝, 맞춤형 교육과 격차 해소에 기여
● ‘경기미래교육청’ 선언…시공간 넘어 교육 기회 보장
임태희(69) 경기도교육감은 8월 11일 ‘신동아’ 인터뷰에서 교육 정상화의 출발점을 ‘대학입시 개혁’으로 잡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한국 교육이 입시 구조에 발목이 잡혀 있다고 본다. 학교교육의 목표와 내용, 교사의 수업 방식까지 모두 입시가 좌우하는 현실에서, 대입 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교육 본연의 기능을 되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창의성과 협력, 문제 해결력은 교실에서 밀려났고, 서열과 줄 세우기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지난 3년간 ‘교육의 본질 회복’을 내걸고 달려왔다.
“교육이 대학입시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학생들이 경쟁의 대상으로만 취급되고 있다. 교육의 본질을 되살리는 일이 시급하다고 봤다. 교육의 본질은 모든 학생이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설계하도록 돕는 것이다.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인성과 역량을 함께 길러주는 과정이어야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교육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됐다. 학교는 제도에 끌려다니고, 교사는 수업보다 행정에 매달리며, 학생은 정답 찾기에만 몰두한다. 대입이 유·초·중등 교육을 흔들고 무력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 교육의 고질병은 대입이 교육의 방향을 절대적으로 결정짓는 구조에 있다. 지금의 입시제도는 학생 성장을 추구하는 학교교육을 왜곡하고, 교육청의 교육정책을 무력화하고 있다. 입시제도를 바꿔야 교육도, 대한민국의 미래도 바뀐다. 그래서 경기도교육청이 주도적으로 개혁안을 마련했다. 3월 시도교육감협의회와 대학교육협의회에 설명을 마쳤고, 이후 국가교육위원회에 안건을 상정해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진행할 예정이다. 올해 내용을 확정할 예정이다.”
개혁안의 핵심 방향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공정한 평가 체제’ 구축이다. 내신과 수능을 모두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서·논술형 평가를 확대해 학생의 문제 해결력과 창의력을 평가하는 구조로 바꾸는 것이다. 형식적으로 진행된 영어 듣기 평가를 폐지하고, 실용 언어 기반 평가로 전환하는 방안도 담았다.”
절대평가를 확산하려는 이유가 있나.
“한국 사회에 상대평가가 남긴 폐해는 뿌리 깊다. 이 체제에서는 모든 것이 서열, 곧 ‘줄 세우기’로 귀결된다. 동료는 협력의 대상이 아니라 견제의 대상으로 변하고, 그 문화는 교육을 넘어 사회 전반에 스며들었다. 정치권을 절대평가로 평가한다면 대다수가 낙제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상대평가 구조 속에서는 어쩔 수 없이 누군가가 유권자의 선택을 받는다. 그 결과, 선의의 경쟁보다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고 깎아내리는 정치 풍토가 자리 잡았다. 결국 이런 줄 세우기 문화와 사회적 분열의 근원은 대학입시에 있다고 본다. 상대평가 중심의 문화가 만들어낸 구조적 폐해다.”
“AI-교사-전문평가교원 검토로 이어지는 3단계 평가 체계를 도입하려 한다. 이미 AI 서·논술형 평가 시범 운영을 마쳤고, 내년부터 모든 학교에 전면 적용하는 것이 목표다. 그간 ‘정답이 있는 형식’으로 학생을 평가해 온 것도 사실상 공정성 논란을 회피하려는 측면이 컸다. 하지만 앞으로의 세상은 ‘정답이 있는 세상’이 아니다. 사방으로 길이 열려 있는데, 지금의 교육체계는 모든 학생에게 좁고 단일한 길만 강요하고 있다. 그 좁은 평가 영역 안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곧 실패자로 낙인찍히는 구조다.”
절대평가를 통해 앞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보나.
“절대평가는 상상력, 사고력, 문제 해결력, 자기 주도력 등 학생 고유의 역량을 평가하는 데 적합하다. 학생의 재능은 제각각이다. 음악만 해도 어떤 학생은 악기 연주에, 다른 학생은 노래에, 또 다른 학생은 소리를 듣는 데 특별한 감각을 발휘한다. 이런 다양한 재능을 단일 잣대로 줄 세우는 방식이 과연 옳은가.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변별력 논란이 불거질 수 있는데, 어떻게 돌파해 나갈 계획인가.
“절대평가에서 핵심은 ‘변별력’이다. 변별력을 논하면 자연히 ‘공정성’ 문제가 뒤따른다. 평가 기준이 명확히 마련되지 않으면 성적 부풀리기 등으로 변별력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다. 여러 교육감과 대학 총장, 교육 당국도 대입 제도의 문제점에는 공감했지만, 창의력·사고력·문제 해결력 등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공정한 기준이 없어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다면 경기도교육청이 개발하겠다’며 내놓은 것이 바로 AI 서·논술형 평가 시스템이다.”
AI 서·논술형 평가 시스템을 도입한 것은 경기도교육청이 전국 최초다.
“AI 서·논술형 평가 시스템은 기존 단답형 정답 중심 평가의 한계를 넘어, 창의력과 문제 해결력을 평가하기 위한 대안이다. ‘학생 개개인의 사고 흐름과 표현 능력을 제대로 측정해 교육하려면 서·논술형 평가를 확대할 필요성이 있다’는 판단에서 출발했다. 그동안은 교사의 채점 부담, 공정성 논란, 평가 시간 부족 등의 이유로 서·논술형 평가가 제한적으로만 운영됐다. 경기도교육청은 교육과정평가원과 소통하고 있으며, 2026년에는 전 학년·전 교과를 대상으로 확대 적용할 예정이다.”
평가는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나.
“AI가 1차로 학생 답안을 채점하고, 교사가 2차로 확인·보완하는 구조다. 객관성과 신뢰성을 갖추면서도 교사의 전문성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설계됐다. 테스트 결과 AI의 채점과 교사의 채점이 95% 이상 일치하더라. 시간이 지날수록 시스템의 완성도는 높아질 것이다. 게다가 학생 30명 분량의 답안지를 채점하는 데 4~5분밖에 걸리지 않아 채점 시간도 대폭 단축된다. 교사는 확보된 시간을 수업 개선과 학생 지도에 더 쓸 수 있다. 앞으로 대입 제도는 물론 수행평가 개선에서도 유기적으로 연계할 방침이다.”
“수행평가는 본래 학생의 학습과정과 역량을 평가하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현실은 취지가 크게 왜곡됐다. 내신 성적 줄 세우기 도구로 전락했고, 평가 횟수가 지나치게 많아졌다. 중간·기말고사 등 특정 시기에 평가가 몰리는 점 역시 학생의 부담을 가중하는 요인이다. 일부는 부모나 외부의 도움을 받아 과제를 제출하는 경우도 있어 공정성 논란까지 불거진다. 교사 역시 채점과 피드백 등으로 업무 과중에 놓여 있다.”
학생이 받는 부담이 그 정도로 큰가.
“보통 한 과목당 지필평가와 수행평가를 각각 2번씩 치른다. 중·고등학생이 이수하는 과목 수가 10~12개 내외인 만큼, 1년에 약 40~50개의 서로 다른 평가를 받게 되는 셈이다. 이 부담을 줄여줄 필요가 있다. 수행평가의 본래 취지는 ‘수업 중 평가’인데, 학생 상당수가 준비 과정에서 수면 부족과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에는 암기식·학원 찬스식·융단폭격식 과제가 난무해 ‘수행 지옥’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수행평가 제도개선은 어떻게 추진하고 있나.
“지난해부터 설문조사와 정책토론회를 통해 현장 목소리를 꾸준히 수렴해 왔다. 우선 2026학년도 새 학기 전까지 수행평가 횟수를 줄이고, 지필고사와 평가 시기가 겹치지 않도록 조정할 계획이다. 중장기적으로는 내신 반영 비율을 완화하고, 과목 특성과 교사 자율성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재구성하려 한다. 서·논술형 평가의 질을 높여 암기식·형식적 평가 대신 학생 성장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전환할 것이다. 여기에 ‘하이러닝’ 기능을 고도화해 수행평가 이력과 피드백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체계도 마련하겠다.”
임 교육감의 정책 구상은 ‘제도개혁’과 ‘미래 준비’를 동시에 겨냥한다. 대입 제도를 손봐 교육의 본질을 회복하는 한편, AI와 디지털 기반 학습 체제를 도입해 변화하는 사회에 대응하는 것이다. 대입 개혁은 현재를 바꾸는 열쇠이고, AI와 미래 교육 플랫폼은 미래를 여는 문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 두 축이 맞물려야 교육 현장이 줄 세우기를 넘어, 다양성과 창의성이 살아 있는 공간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연장선상에서 경기도교육청은 AI 기반 교수·학습 플랫폼 하이러닝을 자체 개발했다. 하이러닝은 단순한 ‘디지털 콘텐츠 뷰어’를 넘어 수업 설계, 학습 진단, 피드백, 평가 관리, 기록까지 통합 지원하는 종합 시스템이다. 2022년 시범 도입 이후 현재는 경기도 대부분의 초·중·고교에서 활용되고 있다.
교육 현장에서 하이러닝을 호평하는 목소리가 많더라.
“최근 연수 현장에서 일선 교사들과 대화를 나눴다. ‘하이러닝 덕분에 수업과 수행평가가 훨씬 수월해졌다’며 주변에 권한다는 반응이 많았다. 학생은 이 시스템을 통해 학습 수준을 진단받고, AI가 추천하는 맞춤형 콘텐츠로 학습할 수 있다. 교사는 진단 결과를 바탕으로 개별 피드백을 제공하고, 누적된 학습 기록을 생활기록부에 연계할 수 있다. 진로 설계와 수행평가에도 활용이 가능하다. 나아가 교사 커뮤니티에서 공동 개발한 수업 자료가 플랫폼 내에서 공유·재생산돼 학교 간 교육격차 해소에도 기여하고 있다.”
AI가 교육격차 해소에 기여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 하이러닝은 단순한 디지털 수업 도구가 아니다. 경기교육이 지향하는 학생 맞춤형 교육, 공정한 평가, 미래 진로 설계를 모두 포괄하는 핵심 기반이다. 앞으로 기능을 더욱 고도화해 학생의 자기 주도성과 교사의 전문성을 함께 높일 계획이다. 현재 교사의 93.1%, 학생의 90.6%가 가입하는 등 이미 현장에서 실질적 수업 도구로 자리 잡았다.”
그 밖에 교육격차 해소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 있나.
“디지털 전환과 인구 감소로 교육격차는 더욱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단순한 학력 차이를 넘어 정보 접근성, 콘텐츠 다양성, 학습 방식의 차이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 간 격차를 줄이는 ‘경기공유학교’와 ‘경기온라인학교’를 확대하고 있다. 소규모 학교 학생도 원거리에서 다양한 진로 탐색과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했다.”
경기미래교육청 구상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현재 학교와 공유학교, 경기온라인학교로 이어지는 3섹터 미래 교육 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학교(1섹터)는 학생 성장의 기반이 되는 공간으로, 자율 운영 확대와 교사 전문성 강화를 통해 ‘자율과 책임’의 문화를 정착시키고 있다. 2섹터인 경기공유학교는 지역사회·대학·기관 등 학교 밖 교육 자원을 활용해 학생의 진로와 역량에 맞는 배움의 기회를 제공한다. 지난해에만 6만여 명의 학생이 3000개 이상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3섹터인 경기온라인학교는 시공간 제약 없이 배움을 이어갈 수 있도록 설계한 디지털·온라인 기반 학습 체제다. 특히 수원에 문을 연 ‘경기이음온학교’를 거점으로 고교학점제 연계 수업과 쌍방향 화상수업을 운영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이 지향하는 미래 교육의 모습은.
“앞서 언급한 각 섹터를 유기적으로 연계해 학생의 필요와 선택에 따라 배움의 흐름을 이어가는 것이다. 하이러닝, 국제바칼로레아(IB) 교육 확대, 미래형 과학고 신설, 직업계고 재구조화 등도 중요한 축이다. 획일적 교육 대신 다양한 교육을 제공하고, 학생의 선택권을 넓혀 시공간을 넘어 공정한 교육 기회를 보장하겠다. 학생은 스스로 삶을 설계할 힘을 기르고, 교사는 교육 전문가로 성장하며, 학교는 지역사회와 연결된 신뢰받는 공동체가 되는 유연한 교육 생태계를 만들고자 한다.”
임기 후반기에 접어들었다. 재선 도전을 염두에 두고 있나.
“교육은 단기간에 성과가 드러나는 분야가 아니다. 앞선 정책이 교육공동체 안에 뿌리내리게 하려면 연속성과 일관성이 필수다. 재선 여부를 고민하기보다 임기 내 남은 과제를 성실히 마무리해 경기교육이 더욱 신뢰받는 공교육 모델로 자리매김하도록 집중하겠다. 재선 도전은 도민과 교육 공동체의 평가와 기대 속에서 자연스럽게 결정될 문제다. 무엇보다 우리 교육의 숙제인 대입 제도 개편을 완성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