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조국을 풀어줬나…광복절 특사 메카니즘

구자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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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5.08.19. 오전 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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禹 면회→ 법학자‧국회의원 탄원→ 종교 지도자 서신→ 文 건의

Special Report② | 여권 ‘블랙홀’, 조국이 온다
● 가석방도 형기 3분의 2 지나야 하는데…“이례적 사면”
● “사면권은 대통령 권한”…李가 결정한다는 대변인
● “어차피 풀어줄 건데, 빨리 사면하자” 현실론 대두
● ‘정치검찰 희생양’ 부각해 검찰개혁 동력 확보
● 국회의장, 종교인, 전직 대통령 등장으로 부담 완화
● ‘조국 사면’, 차기 경쟁으로 불붙으면…


8월 15일 0시 2분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가 광복절 특사로 서울 구로구 남부교도소에서 나오고 있다. 뉴시스
대법원 판결로 영어(囹圄)의 몸이 된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가 수감 8개월 만에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광복(光復)의 기쁨을 누렸다. 판결로 멈췄던 ‘조국의 시간’은 이재명 대통령의 특사에 힘입어 다시 돌아가게 됐다. 조 전 대표는 사면 첫날 ‘가족식사’ 네 글자와 펄펄 끓는 찌개 영상을 자신의 SNS에 올리며 ‘조국의 광복’을 널리 알렸다.

법조계에서는 가석방도 형기 3분의 2가 지나야 가능한데, 징역 2년형을 받은 조 전 대표를 형기 3분의 1 정도 지난 시점에 사면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란 얘기가 많다. 야권에서도 조 전 대표 사면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조국은 정치적 희생양도 아니고 민생 사범은 더더욱 아니다. 입시 비리, 감찰 무마, 청탁금지법 위반까지 파렴치한 권력형 범죄자에 불과하다”며 “대한민국 입시제도를 교란시키고 공직자의 감찰 제도를 무력화시킨 범죄자에게 임기 첫 광복절 사면권을 행사하는 건 대통령의 권한 남용이자 대한민국 사법 시스템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고 쏘아붙였다. 이 같은 비판 여론에도 새 정부 출범 3개월 만에 조국 전 대표에게 ‘빛’을 되돌려준 이는 누구일까.

사면심사위 심의, 국무회의 의결
형식상 광복절 특사는 8월 7일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 심의, 그리고 11일 임시 국무회의 의결로 확정됐다. 그러나 내용상으로는 사면권자인 이재명 대통령 의지가 반영된 결과란 얘기가 많다. ‘조국 사면’을 둘러싸고 야권이 강력히 반대 의견을 피력하자 7월 27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사면권에 대해서는 논의가 이뤄진 바 없다”면서도 “사면권이야말로 대통령 고유한 권한으로, 대통령이 최종 결정을 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누가 처음 ‘조국 사면’을 제안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최종 결정권자가 이 대통령인 점만은 분명하다.

조 전 대표 사면은 이 대통령 당선 직후부터 일찌감치 예고됐다. 지난해 22대 총선과 12·3계엄, 그리고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에 이르는 정치 격동기에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은 이란성 쌍둥이처럼 ‘윤석열 정권 심판’이란 공동 목표를 향해 함께 움직였다는 점에서다. 더욱이 6·3대선에 조국혁신당은 원내 제3당임에도 대선후보를 내지 않고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 당선을 도왔다. 조 전 대표 사면을 두고 ‘보은(報恩) 사면’이란 얘기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 등으로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아 수감 중인 조 전 대표를 정권 출범 초부터 사면하는 것은 대통령으로서도 상당한 정치적 부담이 따르는 일이다. 자칫 ‘차기 주자’로 국민의 시선이 쏠릴 수도 있을 터. 여권의 한 관계자는 “정치적 유불리만 놓고 보면 조 전 대표가 광복절 특사가 아니라 2026 지방선거 윤곽이 어느 정도 잡힌 3·1절 특사로 나오는 게 유리할 수도 있겠지만, 광복절 특사에 포함하지 않았다면 ‘정략적인 이유로 뺐다’는 더 큰 비판에 직면하지 않았겠느냐”고 분석했다. 또 다른 여권 인사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에 힘을 보태고 대선 승리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한 조 전 대표 사면은 ‘선택’이 아닌 ‘필수’ 같은 일”이라며 “어차피 사면해야 한다면 빨리하는 게 낫다는 기류가 강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조국 사면 이후 국민 여론은 이 대통령과 여권에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고 있다. 조국 사면 결정 직후 실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이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율은 64%에서 59%로 5%포인트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는 취임 후 처음으로 30%를 돌파했다. 부정평가 요인 중 1위는 ‘사면’이었다(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광복절 특사 선정을 앞두고 조 전 대표는 말 그대로 ‘뜨거운 감자’였다. 그런데 ‘보은 사면’이란 비판이 일자 정치권은 물론 학계와 종교계 등 다양한 인사들이 ‘조력자’로 등장했다. 그들은 조 전 대표를 ‘공존의 상징’ 기제라며 ‘사면 메커니즘’을 작동시켰다. 

우선 ‘조국 사면론’에 처음 불을 붙인 이는 우원식 국회의장이었다. 7월 9일 우 의장이 서울 남부교도소에 수감 중인 조 전 대표를 면회한 사실이 전해지면서 ‘조국 사면’에 대한 얘기가 공론화하기 시작했다. 이튿날인 10일에는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 등 법학자 34명이 조 전 대표 사면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했다. 

법무부가 광복절 특사 명단을 실무적으로 준비하던 7월 하순에는 강득구 민주당 의원이 나섰다. 그는 자신의 SNS에 “조 전 대표와 그의 가족은 이미 죗값을 혹독하게 치렀다. 그가 정치를 하지 않았다면, 검찰개혁을 외치지 않았다면, 윤석열을 반대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찌 보면 이 대통령이 겪었던 정치 검찰의 표적 수사와 판박이다”라며 ‘조국 사면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했다. 

이후 불교와 천주교, 원불교, 기독교 등 각계 종교 지도자들이 ‘조국 사면’을 요구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조국이 하루빨리 가족과 국민의 품으로 돌아와 대통령님과 함께 진정한 국가 혁신의 길에 동반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의 서신 내용까지 구체적으로 공개됐다. 진우 스님은 서신에서 “이번 사면이 정치적 타산의 산물이 되지 않고 분열을 넘어선 대화, 갈등을 넘어선 공존의 상징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김민석 국무총리,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왼쪽부터)이 8월 10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동아DB
조국 사면=공존의 상징?
사면을 둘러싸고 정치적 공방이 한창 진행되던 시점에 조 전 대표 사면이 ‘공존의 상징’이라는 종교 지도자 서신이 공개된 것이다. 내용만 놓고 보면 사면권자인 대통령이 져야 할 정치적 부담을 덜어줬다. 이어 한국천주교 주교회 의장인 이용훈 주교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은 그런 새로운 시작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고, 천주교 광주대교구장 옥현진 대주교는 “조 전 대표에 대한 사면은 단순한 사법 피해 회복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갈라진 마음을 치유하고 미래를 향한 통합의 발걸음을 내딛는 상징이 될 수 있다”며 사면을 적극 요청했다. 나상호 원불교 교정원장도 “대통령님께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한다면 조국은 이재명 정부를 위해 힘을 모을 것으로 믿으며, 이는 곧 국민 대통합의 상징적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기독교계 원로 김상근 목사도 “사면을 긍정적으로 검토해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국 사면’ 분위기 조성에서 화룡점정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었다. 법무부에서 사면심사위원회가 개최된 8월 7일, 문 전 대통령은 ‘8·15 국민임명식’ 초청장 전달을 위해 자신을 찾아온 우상호 정무수석에게 ‘조국 사면’을 공개적으로 요청한 것이다. 결국 그날 열린 사면심사위 사면 대상자 최종 명단에 조 전 대표 이름이 올라갔다. 법무부 한 관계자는 광복절 사면 결정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광복절 특사는 제정당과 사회단체, 종교계 등 각계각층의 요구를 대통령비서실이 수렴해 1차 명단을 추렸고, 그 명단을 놓고 사면심사위가 심의했다. 심의 과정에 논란이 많은 대상자는 위원들이 가부 표결을 진행하기도 했다. 사면심사위가 최종 명단을 확정한 후 법무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상신했고, 대통령의 재가를 거쳐 국무회의에서 의결하는 절차를 밟았다.”

1차 사면 대상자 명단을 확정하는 과정에 송언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에게 야권 몇몇 인사에 대한 사면과 복권을 요청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이 카메라에 찍혀 ‘사면 거래’ 논란이 일기도 했다.

8월 7일 사면심사위 광복절 특사 명단 확정 후 조 전 대표와 함께 기부금품법 위반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윤미향 전 의원이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의 불씨는 윤 전 의원으로 향했다. 주말을 거치며 사면 여론이 좋지 않게 돌아가자 당초 8월 12일 의결하려던 것을 하루 앞당겨 11일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광복절 사면 대상자를 최종 확정했다. 

논란이 된 조국·윤미향 두 사람 외에도 사면 대상에는 최강욱·심학봉 전 의원 등 여야 의원 다수도 포함됐다.

조국·윤미향 사면에 담긴 뜻
정치권에서는 8·15 특사에 조 전 대표는 물론 윤미향 전 의원까지 포함된 것을 두고 “검찰개혁의 고삐를 바짝 쥐기 위한 다목적 사면”이란 분석이 많다.

2019년 8월 시작된 ‘조국 수사’, 그리고 2020년 21대 총선 직후 시작된 ‘윤미향 수사’, 그리고 2022년 20대 대선을 앞두고 시작된 대장동 수사를 비롯해 윤석열 정부 출범 후 확대된 백현동, 성남FC, 위증 교사, 대북 송금, 선거법 수사 등 이 대통령을 겨냥한 수사를 한데 모아 ‘정치 검찰의 기획 수사’라는 스토리라인이 형성된다는 점에서다. 즉 조국·윤미향 사면에는 ‘정치 검찰 기획 수사 바로잡기’라는 속뜻이 담겨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조 전 대표는 광복절 특사로 석방된 8월 15일 자정, 서울 남부교도소에서 나와 이렇게 말했다.

“오늘 저의 사면·복권과 석방은 검찰권을 오남용해 온 검찰 독재가 종식되는 상징적 장면의 하나로 기억될 것이라 믿는다. 이재명 정부는 국민들의 투쟁·저항·주권 행사의 산물이기에 반드시 성공해야 하며, 이재명 대통령도 성공한 대통령이 돼야 한다. 미력이나마 저도 힘을 보태겠다. 여전히 윤석열과 단절하지 못하고 윤석열을 비호하는 극우 정당 국민의힘은 다시 한번 심판받아야 하고 민주진보진영은 더욱 단결하고 더욱 연대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 성공과 이재명 대통령을 성공한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 국민의힘 심판과 민주진보진영의 단결과 연대는 ‘정치인 조국의 미래’와도 직결돼 있다. 이 대통령과 조 전 대표는 비록 정당은 다르지만 ‘윤석열 정권 심판’이란 공동의 목표 달성을 위해 뜻을 같이해 온 동지적 관계라는 점에서다. 그리고 6·3대선 승리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남은 것은 조 전 대표 표현대로 ‘검찰 독재 종식’과 ‘국민의힘 심판’, 그리고 이를 위한 민주진보진영의 단결과 연대다. 

앞으로 조 전 대표가 자신이 말한 ‘검찰 독재 종식’을 위해 정청래 민주당 대표와 어떤 ‘티키타카’를 보여줄지도 관심사다. 지난해 2월 조 전 대표는 22대 총선을 앞두고 ‘3년은 너무 길다’는 구호를 앞세워 조국혁신당을 창당했고, 총선에서는 ‘지민비조(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대표는 조국혁신당)’라는 간명한 선거 연대 전략을 앞세워 원내 제3당을 거머쥔 경험도 있다.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조국 사면은 ‘차기 대선주자’ 경쟁을 촉발한 측면도 있다. 집권당 대표에 오르며 차기 주자 반열에 오른 정청래 대표, 그리고 86세대 선두 주자 격인 김민석 국무총리, 거기에 포스트386세대 선두 주자로 여겨지는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까지…. 조 전 대표는 8월 18일 한 유튜브에 출연해 “내년 6월(지방선거 때) 국민 선택을 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정부 출범 석 달 만에 ‘조국 사면’을 계기로 차기 대선을 향한 예비 주자들의 경쟁이 이제 막 시작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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