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적된 인프라 규모에 따른 부동산 양극화
● 인프라 구축된 지역과 접근성 개선하는 것이 대안
● ‘5극 3특’ 실현에 메가시티, 광역교통망 구축 필수
● 양극화는 필연적, 중요한 건 격차를 최소화하는 것
소프트 인프라는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피에르 부르디외가 사용한 용어인 아비튀스(habitus)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집단 구성원들의 문화적 행동 특성’을 의미하는 개념인 아비튀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교육’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일반적으로 학군지가 선호되는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경제, 문화, 언어, 사회자본 등의 측면에 비춰 보면 세간에서 흔히 ‘민도(民度)’라고 하는 지역적 차이도 파악할 수 있다.
물리적 인프라와 소프트 인프라가 밀접하게 연결된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학군지에는 학원 등 교육시설 같은 물리적 인프라가 필수적이지만, 학군지에 대한 평가에는 학생은 물론 보호자의 경제력, 교육 수준, 지역의 역사 등이 함께 반영된다. 또한 기업이 밀집한 곳도 일자리의 종류, 평균 급여나 취업 요건, 종사자들의 수준 등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사안은 늘상 비슷하다. 지역 수요도 이들 인프라가 누적된 곳으로 쏠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때문에 인프라가 집중된 기존 지역은 시간이 지나면서 양적·질적 측면에서 더 개발될 여지가 높다. 주요 지역은 그렇게 형성되고 발전한다. 양극화도 그렇게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인프라가 집중되는 곳은 인구가 밀집하는 지역이다. 반대로 인프라가 집중되는 곳에서 인구밀집도가 올라가기도 한다. 시작은 어느 한쪽의 비중이 높더라도 어느 순간부터는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논쟁하는 것과 같게 된다.
인구 비율이 그 지역에 거주하는 ‘정주 인구’인지, 일시적으로 머무르는 ‘유동 인구’인지 등의 특성에 따라 기반 시설도 차이를 보인다. 정주 인구가 많은 곳에서는 주택과 근린생활시설 등이 중점적으로 형성된다. 이는 주거지역과 상업지역, 업무지역과 교통중심지라는 단어를 통해 그 지역의 기반 시설성격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인구 밀집 지역이더라도 지역에 따라 공급되는 인프라가 달라진다. 인구 규모와 질적 측면이 인프라 구축과 유지에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경제력이다. 가령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지역에서는 쇼핑센터 등의 유통 상가나 호텔 같은 시설이 들어서더라도 안정적 운영이나 성장이 어렵다. 만약 매출이 일정하게 유지되거나 증가한다면 추가로 인프라가 구축되면서 주거 수요가 더 커져 인접 지역에 주택이 늘어나는 등 도시가 커질 수 있다.
상권이 이동하는 것도 중요하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구매 행태가 바뀌고 트렌드가 변하면서 한때 융성했던 지역이 자연스럽게 쇠퇴한 사례는 서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하철 등의 우수한 교통접근성은 과거와 동일한데 유동 인구가 꾸준히 유입되지 못하면 지역이 노후화한다. 이를 뒤집기란 쉽지 않다. 일례로 이화여대 앞 상권도 과거와 같지 못하다. 인근에 재학생이 많은 유명 대학이 있다고 해서 상권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 결과 주요 대도시에서도 더 발전하고 수요가 몰리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이 공존한다. 많은 역세권, 상업지역, 업무지역, 주거지역, 학군지 등이 존재하지만 그들 사이에서도 격차가 있고, 인프라 구축 여부에 따라 양극화가 진행된다.
누적된 유·무형의 인프라가 부동산 양극화의 주요 원인이라면, 모든 지역에 동일한 인프라를 구축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구현이 불가능한 시도다. 설령 가능하더라도 의도한 결과를 도출하기가 어렵다.
교육 분야를 예로 들면 설명이 쉽다. 전국에 산재한 지역거점대학이 국립대이지만 모두가 동등한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모든 중·고등학교를 특수목적고등학교(특목고)로 만들려면 그만큼의 인재풀이 뒷받침돼야만 한다. 시장 수요에 맞춰 자생적으로 형성되는 민간의 학원가를 공공부문에서 의도적으로 모으고 전국에 형성하기는 어렵다. 인위적으로 만들더라도 다시 그 지역에서 학원 수요에 따른 양극화를 초래할 여지가 크다.
부동산 양극화를 완화하는 다른 방안은 이미 인프라가 잘 구축된 지역에 이르는 접근성을 높여주는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광역급행철도(GTX), 기존 지하철 노선의 연장, 도로 신설 등이 쉬운 예시다. 이를 통해 일차적으로 물리적 인프라를 타 지역에서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면, 부차적으로 일부 소프트 인프라도 공유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도 한계는 명확했다. 수도권에 집중된 공공기관의 본사를 지방으로 옮기더라도 본연의 업무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민간의 생산시설이나 소비 인구 등을 인위적으로 타 지역으로 이전시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사안이기도 하다.
부동산 양극화에는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제도가 가진 일부 특성도 한몫하는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 토양을 기반으로 하는 외국의 지방자치제도와 달리 국내의 지방자치제도는 어느 날부터 모두 같이 시행하기로 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때문에 지자체 간의 재정자립도 편차가 심하고 중앙정부 의존도가 상당하다. 교부금 등의 예산과 관련해서는 나눠주기식으로 운영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공원이나 수변공간을 만들고 도서관 등의 시설을 확충하는 식으로 지자체별로 공통 유형의 성과를 창출하기에는 매우 효과적이다. 실제로 지금은 전국의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수변 산책로와 시민 공원이 갖춰져 있다. 이는 짧은 시간에 정주환경을 개선하고 지역 성장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부동산 양극화를 일부 해소하는 효과가 분명히 있었다.
반면에 주요 도시를 거점으로 자원을 집중하고 육성하는 데는 불리한 여건이다. 인프라를 집중하기보다는 전국에 넓게 분산함으로써 지역적 불균형을 해소한다는 접근은 사실상 ‘지역균형발전’이 아닌 ‘지역균등발전’으로 평가해도 무리가 없다. 이 경우 특정 지역에 구축된 인프라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을 적용하기란 쉽지 않다.
이는 명확하게 ‘메가시티’의 내용과 연결된다. 일각에서 제시한 그간의 지방 메가시티는 ‘일단 메가시티부터 만들면 잘될 것’이라는 시도였지만, 5극 3특은 중점산업의 클러스터 형성을 근간으로 지역 거점을 육성하고 집중하겠다는 차이를 보인다. 메가시티를 만들더라도 다시 그 안에서 주요 지역에 사람, 자원, 산업이 집중돼야만 메가시티의 효과가 나타난다.
이때 비거점 지역은 순위가 밀리거나 소외되겠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광역시 같은 거점도시를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산업을 육성해 발전시키는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할 수 없다면 초광역경제권을 논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비거점 지역은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대신 5극 3특의 인프라를 함께 누리는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전국의 사람과 자원이 서울로 몰리는 것처럼, 지방에서는 각 거점도시가 인근 지역의 인력과 자원을 흡수해야만 지역산업이 육성되고 사람들이 권역에 남는다. 그렇게 권역 내 양극화를 일부 감수한 결과로 서울·수도권과 지방의 양극화를 완화하게 된다. 이는 지방의 인구 감소에 대응하는 방편이기도 하다.
또한 국가철도망 같은 광역교통망을 확보해 물리적 거리를 극복해야만 메가시티가 기능할 수 있다는 점도 주시해야 한다. 지방에서 넓은 권역을 하나로 묶어 메가시티를 충족하는 인구 규모를 채우더라도 공간적 거리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지방의 인구가 많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지만 메가시티를 통해 광역교통망이 구축된다면, 지금보다 적은 인구가 동일한 면적(지역)에 분산되더라도 광역경제권이나 광역생활권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교과서적 국토관리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
더구나 우리 사회에서는 순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유럽 등지의 선진국 사례에서도 인구가 감소할수록 대도시로 인구가 집중하는 형상은 심화한다. 고령인구는 병원 등의 기반시설 접근성, 젊은 연령층은 일자리 등이 필요하기에 메가시티에서 지역적 광역교통망의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종합하면 지역 중점 사업을 추진해 인프라와 자원을 집중하고, 인근 지역에서도 해당 인프라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수도권과 지방의 부동산 양극화를 완화하는 현실적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국지적 지역 내 양극화가 세분화해 발생하더라도 전국을 대상으로 삼을 때는 그보다 유효한 대안을 찾기가 어렵다.
지역균형발전에서의 메가시티는 결국 일일생활권, 즉 접근성이 전제된 광역 공간이다. 따라서 단순히 행정구역을 묶는 것만이 아니라 어디를 취사선택하고, 어떻게 육성해서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를 함께 구상해야 한다. 동시에 ‘지역균형발전’과 ‘지역균등발전’이 동의어가 아니라는 현실을 인지하고 메가시티라는 광역경제권과 광역교통망을 함께 논의하는 것이 적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