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발주자 한계 속 'AI 연속성' 승부
[디지털데일리 배태용 기자] 삼성전자가 22일 헤드셋형 XR(확장현실) 기기 '갤럭시 XR'을 국내 출시했다. 구글·퀄컴과 공동 개발한 '안드로이드 XR' 플랫폼을 처음 적용한 제품으로, 음성·시선·제스처를 결합한 멀티모달 AI를 전면에 내세웠다. 후발주자로서 하드웨어보다 ‘AI형 인터랙션’에 초점을 맞춰, 메타·애플이 구축한 XR 생태계와의 경쟁에 맞서겠다는 복안이다.
22일 삼성전자는 서울 서초구 '삼성 강남'에서 갤럭시 XR 미디어 브리핑을 열고 제품 기능과 콘텐츠를 공개했다.
갤럭시 XR은 4K 마이크로 OLED(3552×3840), 시야각 수평 109°·수직 100°, 퀄컴 스냅드래곤 XR2+ Gen2, 16GB 메모리·256GB 저장공간, Wi-Fi 7, 무게 545g을 갖췄다. 고해상도 패스스루 카메라 2개, 공간·동작 인식 카메라 6개, 안구 추적 카메라 4개를 채택했으며, 일반 사용 2시간(동영상 2.5시간) 수준의 배터리 지속시간을 제시했다. 가격은 269만원이다.
◆ 멀티모달 AI 전면 배치…"보는 것·하는 것을 같이 이해"
삼성은 이번 제품을 '멀티모달 AI에 최적화된 폼팩터'로 정의했다. 구글 제미나이(Gemini)와 대화형 제미나이 라이브(Gemini Live)가 탑재돼, 사용자가 말하고 눈으로 선택하며 손가락으로 실행하는 복합적 인터랙션이 가능하다.
발표 시연에서는 음성 명령으로 유튜브 검색 → 시선 이동으로 선택 → 핀치 제스처로 재생하는 과정을 선보였다. 스포츠 경기를 여러 화면으로 동시에 시청하거나, ‘서클 투 서치’ 기능으로 눈앞 사물 정보를 즉시 검색하는 장면도 소개됐다.
삼성은 XR을 단순 시청형 기기가 아닌 'AI 기반 실시간 조력자'로 강조했다. 사용자가 보고 듣는 맥락을 인식해 제미나이가 답변하거나 작업을 이어주는 구조다. AI가 사용자의 행동을 학습해 더 자연스럽게 반응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음성 명령형 보조와는 다른 차별화를 시도한다.
◆ 조선·의료·유통…'B2B 현장' 공략 포석
삼성은 XR의 핵심 수요처를 B2B에서 찾고 있다. 삼성중공업과는 가상 조선 훈련 솔루션 MOU를 체결, 신입 엔지니어가 XR을 통해 선박 엔진 검사 과정을 반복 학습한 뒤 현장에 투입되는 구조를 제시했다.
마취과 의사가 '기관삽관(Intubation)' 술을 XR로 반복 훈련하는 의료 시연도 공개됐다. 현실과 가상의 간극이 줄어드는 만큼, 위험도가 높은 작업의 표준화·평준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디자인·유통 분야에서는 가상 매장 실험이 소개됐다. 패키지 진열 위치를 바꾸거나, 고객 시선이 머무는 구역을 XR로 분석하는 방식이다.
삼성은 이처럼 산업별 맞춤형 시나리오를 제공해 '기기 판매'보다 '솔루션 수주' 중심으로 XR 시장을 확대한다는 전략이다.
이 같은 흐름에 맞춰 삼성·구글·퀄컴은 '안드로이드 엔터프라이즈 프레임워크' 적용을 예고했다. 앱 배포, 네트워크 구성, 정책관리(EMM/MDM) 등을 표준화해 기업용 XR 배포 효율을 높인다는 계획이다. 이 구조가 안정화되면, XR이 단순 체험기기를 넘어 교육·훈련·설계·원격지원 등 업무 현장에 자리잡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 후발주자의 전략…"콘텐츠·현장 언어로 경쟁해야"
하드웨어만 놓고 보면 삼성의 스펙은 경쟁권에 들어왔다고 평가된다. 4K 마이크로 OLED, 다중 카메라, 안구 추적, 고성능 XR2+ Gen2 플랫폼 등 구성은 애플 비전 프로, 메타 퀘스트3와 견줄만하다.
XR 시장의 승패는 '볼거리'와 '쓸거리'로 갈리는 만큼 삼성은 유튜브 VR180/360, 아메이즈VR, MLB·NBA 콘텐츠, Calm 명상 앱 등 글로벌 파트너를 전면에 배치했고 국내에선 네이버 '치지직' XR 콘텐트를 연동했다. 제작 툴 '어도비 펄서(Adobe Pulsar)'로 사용자가 직접 3D 영상 제작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이날 시연 현장에서 체험한 갤럭시 XR은 몰입감이 예상보다 높았다. 4K OLED 특유의 밝기와 색감이 뚜렷했고, 제미나이와의 음성 인터랙션 반응 속도도 자연스러웠다. 시선·손동작 인식은 안정적이었지만, 500g이 넘는 무게는 장시간 착용 시 부담이 될 수 있다. 정확히는 '스마트폰을 대신할 수 있느냐'보다 '스마트폰 다음을 준비할 수 있느냐'의 문제라는 말이 현장에서 오갔다.
삼성은 향후 젠틀몬스터·와비파커 등 아이웨어 브랜드와 협력해 차세대 스마트 글라스 개발에도 나선다. 헤드셋을 넘어 '일상 착용형'으로 폼팩터를 확장해 안드로이드 XR 생태계를 키운다는 구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