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강소현기자]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제재를 내리는 과정에서 관계부처 의견을 수렴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관계부처 협의가 법적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플랫폼 산업 경쟁력과 직결된 사안이라는 점에서 절차적 타당성 논란을 불가피할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가 OTT 산업의 현실과 구독모델의 특수성을 외면했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다.
21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 소속 조인철 의원실(더불어민주당)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방미통위)에 ‘웨이브의 전자상거래법 위반 행위에 대한 공정위의 의견 요청 여부’를 질의한 결과, 두 부처 모두 “의견 요청이 없었다”고 답했다.
앞서 공정위는 OTT 웨이브가 이용자에게 중도해지 가능 사실을 명확히 안내하지 않았다며 전자상거래법 위반으로 시정명령과 과태료 400만원을 부과했다.
현행법상 공정위가 과징금 부과 과정에서 관계부처 의견을 반드시 수렴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공정위 제재가 향후 산업에 미칠 파급력을 고려하면 최소한의 협의는 상식적 절차라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OTT업계는 서비스를 이용한 뒤 차액환불은 구독시장 질서를 흔드는 일이라고 비판한다. 특히 OTT 주요 시청행태인 빈지뷰잉(Binge viewing·주말이나 휴가를 이용해 TV프로그램 전편을 몰아 시청하는 방식)을 고려할 때 중도해지가 활성화되면 투자금 회수 구조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 업계관계자는 “예를 들어 '오징어게임' 한 시즌만 보고 25일치를 환불받는다면 플랫폼은 어떻게 버티겠냐”며 “정부부처가 앞장서 블랙컨슈머를 조장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학계에선 '구독모델에서 중도해지나 차액환불 개념이 성립될 수 있냐'는 근본적 질문이 제기된다. 구독형 서비스는 일반 상품과 동일한 환불 기준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매출이 감소하는 시간에 유예가 있는 대신 가입자에 저렴한 가격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업계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억울해 할 여지가 적지 않다. 이번 제재가 특히 논란이 되는 이유는 공정위가 불과 1년 전 “중도해지 및 차액 환불 내용을 약관에 반영하라”고 요구해 OTT 사업자들이 이를 이행했는데,그 결과를 근거로 제재를 내렸기 때문이다. 반면 넷플릭스의 경우 약관에 해당 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제재가 유보돼 국내 기업만 불이익을 받는 역차별 상황이 벌어졌다.
당시 공정위 관계자는 “구독경제와 관련한 실태조사와 해지권에 대한 기준 마련 등 제도개선이 이뤄질 때까지 위원회 판단을 유보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업계의 사정을 잘 아는 전문가는 “정부 요구에 따라 약관을 고친 사업자들만 제재를 받은데다 유예기간도 없었다”며 “일할 환불을 위한 중도해지 관련 시스템을 개발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을 감안해 약관 개정 이후 6개월 이후부터 살펴보겠다는 등 (사업자의) 전후 사정에 대한 참작이 필요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이 같은 공정위의 행보를 두고 플랫폼 산업 전반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의도로 해석한다. 공정위는 지난해 2월 ‘중점조사팀’을 신설하고 플랫폼에 대한 집중 관리에 나섰다. 신설 한 달 만에 중도해지 실태 점검에 착수했고 불과 6개월 만에 제재까지 마무리했다.
이 과정에서 방미통위와 과기정통부가 사실상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은 부분도 지적된다. 특히 과기정통부는 OTT 활성화는 담당하고 있지만, 정작 공정위 제재에는 “전자상거래법상 유관 부서의 의견 제출 절차는 규정돼 있지 않다”는 의견을 의원실에 밝혔다.
이 지점에서 명확한 OTT 소관부처가 없는 부분도 지적된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부처 간 칸막이를 넘어선 관계부처의 적극적인 대응과 부처 간 정책 조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업계에 정통한 전문가는 “통신방송 산업 특성상 규제가 강하면 이용자 선택권이 제한되고 규제가 약하면 이용자 피해가 늘어난다”며 “(공정위와 관계부처 간) 입장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없을 수 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OTT 산업은 투자비가 크고 수익성은 낮아 정책 부담이 늘면 투자 여력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며 “부처간 업무 중복은 하루이틀의 문제가 아니지만, 관계부처 의견 수렴 없이 과징금 제재를 단행한 것은 산업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조인철 의원은 “과기정통부와 방미통위가 ‘우리 소관이 아니다’며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산업 현장은 혼란에 빠졌다”며 “전자상거래법상 협의 의무가 없다는 이유로 산업 영향을 무시하는 건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 내 칸막이 행정이 결국 산업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며 “OTT 관련 법령을 정비하고 소관부처를 명확히 하는 작업을 신속히 진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