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고성현 기자] 국내 배터리 3사의 설비 투자가 올해 대부분 마무리되면서 장비 업계에 실적 가뭄이 닥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신규 수주가 줄어든 가운데 대규모 투자도 사실상 멈춰섰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배터리 3사는 올해 말이나 내년 상반기 중 대부분의 장비 반입 일정을 마무리한다. 기존에 계획한 투자 일정이 막바지에 접어든 영향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조지아주의 현대차 합작법인(HL-GA), 오하이오주의 혼다 합작법인, 애리조나 퀸크릭 독자 공장 등에 장비를 반입하거나 반입 계획을 세웠다.
HL-GA는 최근 미국세관이민단속국(ICE)의 대규모 구금 사태로 장비 설치 일정이 지연됐다. 다만 추석 연휴 이후 작업이 재개되면서 내년 초 장비 반입이 완료될 전망이다. 혼다 합작법인과 애리조나 공장은 올해 하반기 또는 내년 중 장비가 들어간다. 얼티엄셀즈로부터 인수한 랜싱 공장에는 도요타향 라인이 구축됐지만, 이외 일부 라인에 대한 작업은 중단된 상태다.
SK온은 포드와 합작한 블루오벌SK(BOSK) 켄터키 1공장과 현대차 합작 공장의 장비 반입을 진행 중이다. ICE 사건 여파로 출장 차질 우려가 있었으나, 한미 간 비자 합의 이후 반입 절차가 재개된 것으로 알려졌다. 두 공장 모두 연내 장비 반입과 설치가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다.
삼성SDI는 현재 대규모 장비 반입 계획이 없다. 스텔란티스 합작법인 스타플러스에너지(SPE)의 2라인 전환 투자, 헝가리 괴드 2공장 내 46파이 원통형 배터리 투자 계획 등이 진행 중이다.
장비 업계는 이러한 투자 상황에 따라 내년 하반기 이후 실적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질 것으로 봤다. 전기차 수요 둔화와 공장 가동률 하락으로 셀 제조사들이 신규 투자를 보류하면서 추가 매출 확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투자 방향이 신규 증설이 아닌 전환 투자에 집중된 점도 부담이다. 리튬인산철(LFP)과 에너지저장장치(ESS) 수요가 늘자 기존 전기차 라인을 개조하는 방식이 확산되고 있다. 신규 장비 대신 기존 설비 구조를 변경하거나 반입 물량을 줄이는 방식이기 때문에 장비 발주가 줄어든다.
실제로 LG에너지솔루션은 제너럴모터스(GM)와의 합작법인 얼티엄셀즈 2공장을 LFP 배터리 생산라인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GM의 포트폴리오가 LFP와 망간리치(LMR) 중심으로 전환된 데 따른 조치다. 랜싱 공장 일부 부지에 대한 장비 반입도 ESS, LFP, 각형 배터리 라인으로 용도를 바꾸는 전환 투자가 검토되고 있다.
SK온은 기존에 계획해 온 장비 반입 일정이 지연되고 있다. BOSK 테네시 공장은 장비 반입까지 마쳤지만 수요 부진으로 가동이 미뤄진 상태다. 켄터키 2공장은 지난 2024년 6월께 공장 가동 일정을 2026년으로 연기한다고 확정했다.
삼성SDI는 GM과의 인디애나주 합작공장에 대한 연말 발주를 계획 중이다. 다만 3개 라인 전체가 아닌 1개 라인만 우선 발주할 가능성이 높다. SPE의 3, 4라인 발주 계획도 불투명한 상태다. 다만 3라을 LFP 기반 ESS 라인으로 전환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한 배터리 장비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제조사들이 전기차 시장의 캐즘을 지나면서 투자 전략을 보수적으로 바꾸고 있다"며 "장비 업체들도 신규 폼팩터나 소재 대응을 위한 발주가 기존 라인 전환 투자로 대체되면서 과거와 같은 대규모 수주는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