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강소현기자] 국가 인공지능(AI)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생태계 모든 구성원이 망 투자비용에 대해 공정 분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현재는 이동통신 사업자가 대부분을 부담하고 있는 가운데, 머지 않은 미래에 그 비용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이하 과방위) 소속 이정헌 의원(더불어민주당)은 29일 오후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AI 시대 안정적인 네트워크 글로벌 포럼’에서 “AI 시대 아무리 혁신적인 서비스가 등장하더라도 안정적인 고도화된 네트워크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 가치를 온전히 구현할 수 없다”라며 이 같이 밝혔다.
◆ 네트워크 수혜, 산업 전반으로 확산…투자비는 통신사 독박
이번 행사는 AI의 기반이 되는 네트워크 투자 촉진 방안을 모색하고자 마련된 가운데, 유럽통신사업자연합회 격인 커넥트유럽(ConnectEurope)과 세계이동통신사연합회(GSMA) 관계자도 참석해 의견을 공유하며 의미를 더했다.
AI 인프라로서 통신 네트워크의 고도화는 거듭 강조돼 왔다. 데이터센터(DC)를 연결하는 것도, AI 서비스를 이용자에 전달하는 것도 모두 네트워크의 몫이기 때문이다.
GSMA의 디지털인프라 정책 규제 총괄 마니 마니모한(Mani Manimohan)은 “네트워크가 지금처럼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 때는 없었다”라며 “네트워크의 연결성이야말로 디지털 경제의 모든 요소를 묶는 기반이며, 망 투자를 지속하는 국가일수록 생산성도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네트워크에 대한 투자는 정작 통신사만이 요구받는 현실이 지적됐다. 네트워크의 역할이 단순히 전화·문자 등 커뮤니케이션을 넘어 디지털 경쟁력의 근간이 된 가운데, 망에 대한 투자 비용은 통신사업자 단독으로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됐다고 업계는 호소해왔다.
무엇보다 AI 인프라 측면에서 네트워크는 곧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는 만큼, 관련 생태계를 구성하는 참여자 모두 망에 투자할 때 AI 혁신을 이룰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신민수 한양대 교수는 “네트워크의 고도화는 AI 트래픽의 안정성을 높여주고, 이는 AI 서비스에 대한 수요 증대로 이어질 것”이라며 “이는 다시 네트워크 투자를 촉진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각에선 이러한 선순환 생태계를 구성하는 모든 참여자가 (투자에) 참여하는 구조가 적합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지만 ‘누구를 위한 AI 인프라냐’라고 생각해보면 답은 쉽다”라며 “단순히 (네트워크를) 공급하는 사업자 뿐 아니라 (네트워크를 통해) 혜택을 받는 플랫폼 사업자도 고려하여 AI 인프라 전략이 수립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논의가 본격화된 것은 현재 통신사가 직면한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유무선 통신사업이 시장 포화로 수익성 한계에 직면한 가운데, 트래픽 증가에 따른 망 투자비용은 급증하면서 상대적 부담이 증가한 데 따른 것이다.
GSMA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모바일 인터넷 연결을 위한 인프라 투자액은 2440억달러(한화 약 343조원)로 이동통신 사업자가 85%를 분담하고 있었다. 차세대 네트워크 요구 사항을 충족하려면 결국 이러한 ‘망 투자격차(Investment Gap)’ 문제가 먼저 해결될 것이라 업계는 봤다.
커넥트유럽의 사무총장 알렉산드로 그로펠리(Alessandro Gropelli)은 “유럽 GDP의 4.7%를 통신 산업이 기여하고 있음에도 불구, 정작 통신사업자는 매출에서 좋은 결과를 도출해내지 못했다”라며 “샌드위치·음료 세트보다 첨단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바일 서비스 비용이 더 저렴한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마니모한 총괄은 “(통신사업자의) 재정적 지표가 정체된 가운데 수익과 트래픽, 수익과 투자 간 불일치는 극명하게 드러났다”라며 “이는 앞으로의 투자 촉진을 가로막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망 투자 부담은 통신사업자가 짊어진 반면, 망을 통해 생산된 가치는 다른 생태계로 넘어가고 있다”라며 “공통의 투자 목표를 가질 때 혁신의 경험과 가속화된 디지털 연결을 계속 제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대근 서강대 교수는 “지속 가능한 생태계의 유지를 위해선 한 주체가 (투자를) 감당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정부가 (투자 촉진을 위해선) 해저케이블과 데이터센터, 네트워크 등 AI 공급망 전반에 대한 미래 전략 구상을 생태계를 구성하는 참여자들에 보여주는 게 중요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 공정분담 필요성↑…"생태계 전체 참여하는 투자 구조 필요"
이에 과도한 트래픽 유발의 주범인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도 네트워크 투자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는 이른바 ‘망 공정기여’(Fair share) 논의가 이날 주요 안건으로 자리잡았다.
이날 전문가들은 빅테크 기업들도 망사용료(망 이용대가)를 내야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하면서, 부과 방식과 관련해 다양한 의견을 내놨다.
먼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방효창 정책위원장은 트래픽 점유율이나 매출, 직접접속 여부 등을 기준으로 일정 규모 이상의 콘텐츠사업자(CP)에게만 망 사용료를 부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콘텐츠 매출 연계 모델 등도 제안했다. 다만, 스타트업에 대해선 망 사용료를 면제해 혁신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방 위원장은 “망사용료 부과 의무의 법제화는 국제적 흐름과 정당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라며 “단순한 요금 논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AI 경쟁력 확보와 투자 지속성을 보장하는 공정한 디지털 생태계를 위해 반드시 추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망 사용료 지급은 의무화하되, 협상 및 계약의 내용은 사업자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다만 협상의 비대칭성을 이용해 부당하게 계약을 거부하는 행위 등은 금지행위로 규정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안정상 중앙대학교 교수는 “정보통신 서비스 이용 계약 체결 여부는 사업자 자율에 맡기는 게 맞다”라면서도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우월적 지위를 가지고 계약 체결을 거부하거나 회피하는 행위를 금지행위로 규정해 법안을 보완하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유럽에선 앞서 올해 말을 목표로 제정을 추진 중인 디지털네트워크법(DNA)에서 ‘망 공정기여’ 조항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해왔다. DNA는 유럽 내 네트워크 질서 전반을 재정립하는 법안으로, 과도한 트래픽을 유발하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도 네트워크 투자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길 것으로 전망됐다.
알렉산드로 그로펠리(Alessandro Gropelli) 사무총장은 "EC는 올해 말을 목표로 AI와 네트워크를 긴밀하게 연결해주는 법인 DNA법 제정을 추진 중"이라며 "통신사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네트워크에 대한 투자를 촉진시키는 내용이 골자인데, 통신사업자가 빅테크와 협상할 때 제3자가 중재자의 역할을 해주는 모델도 고민 중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행동으로 기술주권을 실천하는 국가인 한국은 지금까지 유럽연합(EU)의 주요 파트너 국가여다"라며 "앞으로도 통신 산업이 마주한 문제들은 함께 풀어나가기 위해 협력을 증진하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현재 망사용료와 관련해선 22대 국회에도 김우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이해민 의원(조국혁신당)과 이정헌 의원(더불어민주당), 최수진 의원(국민의힘) 등이 총 3건의 관련 법안을 발의한 상황이다. 21대 국회에서도 총 8개의 망사용료 관련 법안이 발의됐지만 미국 등과의 통상 마찰을 이유로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폐기됐다.
신 교수는 강도 높은 규제법으로 평가받는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의 사례를 들면서 “EU의 경우 GDPR을 추진하면서 개인정보 보호가 특수한 몇몇의 나라가 아닌 전 세계 어느 국가나 지키는 일반적 원칙이자 AI시대 중요한 덕목이라는 점을 강조해왔다“라며 “이러한 맥락에서 망사용료에 대해 한국 정부도 분명한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향후 협상 과정에서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