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데일리 강소현기자] 국회 과방위에서 미디어 거버넌스 개편 논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제도 개선을 위한 논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정치적 셈법이 짙게 깔려 있다는 의구심을 지우기 어렵다.
최근 이훈기 의원이 ‘공공미디어위원회 설치법’을 발의하면서 논의의 불씨가 붙었다. 이 안은 방송의 공적업무를 담당할 ‘공공미디어위원회’를 두고, 상업·산업 진흥은 별도의 독임 부처인 ‘미디어콘텐츠부’가 맡는 구조다. 공적 미디어와 상업 미디어를 분리하자는 취지다.
반면 최민희·김현 의원의 안은 정반대다. 규제와 진흥, 공영과 상업을 다시 방통위라는 울타리에 묶겠다는 구상이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공영방송과 유료방송을 한데 묶어 다루어 온 기존 방식이 정치적 논쟁만 키워왔다는 점은 이미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방통위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방송 전반의 규제를 담당하지만, 산업성과 공공성을 각각 최우선으로 하는 유료방송과 공영방송 간 접점을 찾기 어려웠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오히려 공공성으로 함께 묶여 산업에 대한 논의는 뒷전이 됐다.
소관법도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현행 방송법은 약 20년 전인 2000년 당시 체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낡은 방송법 규제체계를 전면 개편한다는 취지의 미디어통합법제 마련하겠다 했지만 아직이다. 그 사이 인터넷TV(IPTV) 출범과 종편‧보도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승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장 등 새로운 경쟁체계가 도입됐다. OTT는 현재 법적 지위조차 없다.
방통위의 경험을 토대로 공영방송 분리의 필요성은 대두됐다. 2008년 방통위 설립 이후 매 대선마다 산학연은 차기 미디어 거버넌스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공영방송의 분리를 강조해왔다. 당장 지난 2022년 양당 미디어 거버넌스 개편안에서도 결국 큰 흐름에선 공영방송을 별도의 합의제 기구의 형태로 분리해야 한다는데 여야가 의견을 같이 했던 터다.
그런데도 이를 되풀이하겠다는 주장은 미디어 거버넌스 개편의 본질을 외면하는 셈이다.
결국 중요한 질문은 방통위가 ‘합의제냐 독임제냐’가 아니다. 공영방송과 유료방송을 어떻게 분리할 것이냐다. 이 논점을 비껴간 개편안은 제도 개선이 아니라 정치적 재편성에 불과하다. 업계 반발이 거센 것도 그 때문이다.
방송업계의 상황은 안좋아졌다. 글로벌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발 미디어 생태계 변화 역시 가속화되며 연내 최악의 위기가 방송업계를 덮칠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올해만 해도 몇몇 주요 방송사업자가 문을 닫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이야기되는데, 업계에선 현재의 거버넌스 구조에서 진흥 및 지원방안이 논의될 가능성이 만무하다 보고 있다.
하지만 정치적 맥락은 심상치 않다. 민주당 지도부가 김현 안을 중심으로 개편을 추진한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방통위원장 교체와 같은 권력 재배분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방통위의 경우 정권 교체와 무관하게 위원장의 임기가 보장되는 가운데, 정부조직법 개정을 명분삼아 윤석열 정부에서 선임된 이진숙 방통위원장을 갈등 없이 내몰기 위함이다. 과기정통부가 예정했던 유료방송 공개 공청회를 돌연 취소한 것 역시 의구심을 키운다. 정책 논의가 아니라 정치적 힘겨루기의 산물로 비치기 때문이다.
업계는 이심(李心)에 기대고 있다. 정부 조직 개편은 대통령의 뜻을 배제하기 어려운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K-컬처 플랫폼을 육성을 약속했다. 이를 통해 K-콘텐츠의 제작·유통·해외 진출까지 전 단계를 체계적으로 뒷받침하는 ‘K-컬처 문화강국’을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유료방송이 정치적 흥정의 볼모가 된다면 대통령의 공약 역시 공허한 약속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세간의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라면 대통령이 공약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신호를 업계에 분명히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