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00억달러 한미 무역협상·통화스와프 미결, 외환건전성 불안 확대 등 고려
전문가 “물가·성장률만 보면 인하 타당…‘금융안정’ 우선”
“환율·부동산 진정되면 11월 인하 가능성 열릴 것”
한국은행이 10월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2.50%로 동결했다. 물가상승률이 안정권에 접어들고 경기성장률이 1%를 밑돌 전망이지만 한은은 이번에도 '금융안정'에 무게를 뒀다. 한미 간 무역협상·통화스와프 체결 여부가 불확실한 가운데 외환시장이 불안하고 정부가 부동산 시장 안정화 대책을 추진 중인 상황에서 '금리인하'가 자칫 시장의 혼선을 키울 수 있다고 판단한 결정으로 풀이된다.
한은 금통위는 28일 기준금리를 연 2.50%로 동결 결정했다. 국내 경제성장률은 올해 0.9% 수준, 물가상승률은 2%대 흐름을 보이고 있어 이론적으로는 금리를 인하할 수도 있겠지만 부동산 과열과 환율 급등 등 금융불안 요인이 겹치면서 '금융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내적으로는 9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2.1%로 한 달 만에 다시 2%대를 기록했다. 향후 소비자물가도 미 관세정책, 지정학적 불안 등 대외여건 불확실성으로 환율, 유가 변동성이 높아지면서 2% 내외의 상승세가 예상되고 있다.
8월 경상수지는 91억5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8월 기준으로 '역대 최대'다. 28개월 연속 흑자 흐름이 지속됐다(2000년대 들어 두 번째로 긴 흑자 흐름). 상품수지도 94억달러 흑자로 29개월 연속 흑자 흐름을 이어갔다. 8월 기준으로 역대 2위이다. 한은은 경상수지가 9월에도 100억달러 흑자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반도체·자동차 수출 호조와 안정적인 유가, 본원소득 개선이 맞물리며 연간 1100억달러 흑자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9월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폭은 8월의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8월 +4조1000억원→9월 +2조원). 627 대책의 영향이 이어지는 가운데 추석 등 계절적 요인, 비은행권 부실채권 매상각이 맞물리며 대출 증가세에 제동이 걸렸다.
주택구입 목적 대출만 증가세를 유지했을 뿐 생활자금용, 기타대출은 감소로 전환됐다. 다만 한은은 향후 가계대출 흐름과 관련해서 주택시장 상황, 금융권의 대출태도와 관련해 불확실성이 굉장히 높다고 평가하면서 정부의 10·15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을 반가운 소식이라고 했다.
대외적으론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정책 불확실성이 여전한 상황이다. 3500억달러 규모의 한미 무역투자 협상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고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여부도 결정되지 않아 외환건전성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다. 미중 간 무역갈등도 완전하게 해소되지 않고 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정책금리 25bp 인하(4.25~4.50%→4.00~4.25%, Miran 이사 50bp 인하 소수의견), IORB(4.40%→4.15%) 및 O/N Reverse RP 금리(4.25%→4.00%) 각각 25bp 인하. QT 속도 유지(국채 50억달러/월, MBS 350억달러/월)를 결정했다.
시장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기자회견에서 금번 금리결정은 위험관리 차원의 인하(risk management cut)라고 언급한 점, 빅컷 소수의견이 1명에 불과한 점, 경제전망에서 성장률·물가 전망은 상향, 실업률 전망은 하향 조정한 점 등을 감안할 때 전반적으로 매파적(hawkish)이라고 평가했다.
금통위의 동결 결정은 무엇보다 '금융안정'에 무게를 둔 결정으로 해석된다. 금통위는 정부가 10월 15일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을 발표하며 부동산 시장 안정을 강하게 추진 중인 만큼 정부의 거시건전성 정책에 공조하기 위한 결정으로 해석된다.
한은이 16일 발표한 '2025년 9월중 금융시장 동향'에 의하면 9월 은행 가계대출은 전월에 비해 증가폭이 축소됐다(8월 +4조1000억원→9월 +2조원). 금융권 전체로는 총 1조1000억원 늘며 전월(+4조7000억원) 대비 증가폭이 대폭 축소됐다.
한은은 설명회에서 "주택구입 목적 주담대는 높은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생활자금용 주담대와 기타대출은 감소흐름을 보이고 있다"라며 "자금조달 계획서 등을 분석해 보면 2~3개월 정도에 많은 수요가 몰린다. 9월 거래량이 늘었던 것은 향후 2~3개월 정도 시차를 두고 주택구입 목적 주담대에는 상방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수도권 주택시장이 재차 과열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이 발표됐다"라며 "다만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에 대해 시장이 어떻게 반응할 지를 봐야 주택가격이라든지 대출에 대한 영향들도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아직은 대책의 효과를 판단하기에는 이른 시점이라서 좀 더 시간을 두고 살펴볼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금통위의 이번 결정은 최근 원·달러 환율이 급등함에 따라 '외환시장'의 불확실성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8월 금통위 당시 1400원을 밑돌던 원·달러 환율은 최근 1420~1430원대까지 상승했다. 시장은 미국과의 3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 협상 불확실성, 일본 정치 리스크에 따른 엔화 약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풀이했다.
8월 이후 달러 인덱스는 소폭 하락하며 달러화는 약세를 보이고 있지만 원화는 주요 통화 대비 3.7% 절하되며 더 크게 약세를 나타냈다. 외환당국은 지난 13일 2024년 11월 이후 약 11개월 만에 '구두개입'에 나선 바 있다. 부동산으로도 힘든데 환율까지 불안해진 상황에서 한은이 금융안정을 최우선으로 둘 수밖에 없어 '금리인하' 결정을 할 여유가 없었을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금통위의 결정은 '물가상승률'이 다시 2%대로 올라서고 앞으로도 2% 안팎의 상승세가 전망되면서 대외 불확실성 역시 커진 만큼 물가안정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분석된다.
9월 소비자물가 및 근원물가 상승률은 각각 2.1%, 2.0%로 통신요금 일시 할인효과가 소멸하면서 한 달 만에 높아졌다. 석유류는 지난해 유가 하락에 따른 기저효과로 상승 전환했다. 다만 농축수산물은 기상여건 개선, 정부 물가안정대책 등에 힘입어 오름폭이 축소됐다
한은은 지난 2일 개최한 '물가 상황 점검회의'에서 "9월 소비자물가는 통신요금 일시 할인효과가 소멸되면서 당초 예상대로 2% 수준의 오름세를 나타냈다"라며 "향후 소비자물가도 2% 내외의 상승세가 예상되나 미 관세정책, 지정학적 불안 등 대외여건 불확실성으로 환율, 유가 변동성이 높아진 만큼 물가 상황을 계속 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금통위의 동결 결정은 미국발 관세 부과의 충격이 내년부터 본격화되겠지만 반도체 및 자동차 수출 호조와 안정적인 유가, 본원소득 개선이 맞물리며 연간 1100억달러 흑자 달성이 가능하다는 전망에 금리인하를 통한 경기부양의 필요성이 다소 줄었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은행이 2일 발표한 '2025년 8월 국제수지(잠정)'에 의하면 8월 경상수지는 91억5000만달러 흑자를 기록하며 2023년 5월부터 28개월 연속 흑자 흐름을 이어갔다. 2000년대 들어 2012년 5월부터 2019년 3월까지의 83개월 흑자 이후 최장기간 흑자 기록을 달성했다.
한은은 '2025년 8월 국제수지(잠정)' 설명회에서 "8월만 놓고 본다면 상품수지와 본원소득수지가 모두 동월 기준 역대 2위의 흑자 규모를 기록함에 따라 경상수지 흑자 규모 또한 8월 기준으로는 최대 수준을 기록하며 양호한 모습을 보였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국의 관세 영향은 점차 나타나겠으나 아직까진 그 영향이 크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라며 "9월 경상수지는 100억달러를 조금 상회하는 흑자 흐름이 다시 나타날 것이다. 연간흐름도 8월 조사국 경제전망에서 1100억달러 흑자를 예상했다. 지금까지 봤을 때는 이러한 경로를 따라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한양대학교 겸임교수)은 "우리나라의 경기 및 물가 상황을 고려한다면 지금의 2.50% 금리수준은 부담스러운 제약적인 금리인 것은 맞다"라며 "다만 환율과 부동산 시장 등 금융불안에 금리인하를 결정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는 "3500억달러 규모의 한미 무역투자 협상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고 통화스와프 체결 여부도 결정되지 않아 외환건전성이 얼마나 불안해질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이런 분위기에서 금리인하는 시장 변동성을 자극할 수 있다고 금통위원들은 우려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실장은 "정부 입장에서 부동산 시장을 놓고 고심이 크다. 정부가 대대적인 주택시장 안정화 조치를 내놓는 와중에 금리를 인하하게 되면 시장에 '정책 엇박자' 신호를 줄 수 있다"라며 "기준금리 인하가 소위 '찬물'을 끼었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금통위원들은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해석했다.
이어 "현 상황에서 11월 금통위에서도 금리인하를 결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만약 미국이 10월 빅컷(한 번에 정책금리를 0.5%p 인하)을 하고, 한미 간 통화스와프도 체결되고, 한미 무역협상도 우리가 희망하는 부분들이 반영되어 체결된다면 환율은 1300원대로 내려올 수 있다"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강하게 드라이브를 거는 부동산 정책 효과가 작용하기 시작하며 서울 아파트 가격이 하락세로 전환되면 금리인하를 안 할 이유가 사라진다"라며 "어쨌든 환율과 부동산이라는 걸림돌이 해소된다면 11월에 인하 수순으로 갈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
김광석 실장은 "세계 경제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고 한미 간 무역협상과 통화스와프 등 불확실성이 여전한 상황에서 한은은 금융·외환시장의 변동성을 예의주시하고 이를 완화할 대응 태세를 강화해야 한다"라고 제언했다.
또한 "이런 변동성이 조금 잦아들면 한은의 주된 목표인 물가안정과 경기안정을 위해 통화정책 정상화, 중립금리를 향한 점진적 피벗(pivot)이 필요하다"라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