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0] ③'편 가르기' 시작된 경제전쟁.. 한국의 선택은?

임도영 기자
입력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에너지·제조업 부활 내건 美, 관세로 세계 흔들다

IRA 축소·상호관세 확대 속 2차전지 등 한국 수출산업 '직격'

관세외교 전선 확장.. 선택 강요받는 한국, 전략 시험대 올라
◆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6월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가 적힌 모자를 쓰고 연설하고 있는 모습[사진=로이터 제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과 함께 다시 꺼내든 핵심 키워드는 'MAGA'다. 에너지 자립, 제조업 부활, 공급망 재편 등 미국 내 생산 기반 회복을 전면에 내세운 이른바 '트럼프式 성장' 전략은 각종 행정명령과 보호무역 조치로 구체화하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경제 회귀는 다시 글로벌 통상질서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에 회의적인 시선도 적지 않다. 트럼프式 경제 실험은 여전히 '불확실성' 위에 서 있다는 지적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미국 투자은행(IB)들은 올해 미국 GDP 성장률이 2% 내외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작년 미국 GDP 성장률(2.8%)보다 낮은 수치다.

한편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파고로 '미중 갈등'은 다시 격화했다. 미국은 관세와 보조금, 동맹 연대를 앞세워 중국을 압박하고 있으며, 중국은 이에 맞서 '반미 공동체' 구축에 나서며 지정학적 대결 구도를 강화하고 있다. 양국의 강대강 전략 속에 한국은 전략적 시험대에 올랐다. 그 어느 때보다 한국만의 생존 전략이 절실해지는 순간이다.

■ 트럼프 2.0, '관세' 불확실성 UP.. 내수소비·기업투자 '위축'

트럼프 2기 경제정책의 핵심은 '관세'다. 무역확장법 232조(특정 수입품에 대한 대통령의 관세 부과 권한)를 근거로 지난 3월 철강·알루미늄·자동차에 최대 25% 관세를 부과했고, 이달에는 추가적인 관세 부과를 통해 중국산 제품에는 최대 145%의 관세율까지 도달했다. 특히 지난 2일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부과 대상을 거의 모든 교역국으로 확대한 '상호관세'(reciprocal tariffs) 체계를 추진하면서, 글로벌 통상 질서의 근간이 흔들고 있다.
◆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의 2025년 4월 제조업 전망 보고서.


이 불확실성으로 인해 기업 투자와 고용은 위축되고 있다. 이달 발표된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의 제조업 전망 조사에 따르면, 향후 6개월간 자본지출을 늘릴 계획이라고 응답한 기업의 비율(미래 자본지출 지수)은 2.0으로, 전월 대비 11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올 1월 39.0에서 지속적으로 하락해, 기업들의 투자 심리가 위축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지수는 보통 10~30 사이가 긍정적 신호로 해석된다.

미국 소비자들의 불안감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4월 미시간대 소비자심리지수는 50.8(예비)로 4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60보다 낮으면 비관적인 전망을 의미한다. 같은 기간 1년 후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는 4.9%에서 6.7%로 크게 상승했다. 반복적인 관세 부과와 철회로 인한 정책 불확실성, 그리고 수입 물가 상승 우려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미국 소비자들의 심리를 크게 위축시키고 있다.

■ 미국 전통 제조업 '반짝'.. 국내 2차전지 '직격탄', 반도체·자동차 '불투명'

미국 내 일부 산업은 트럼프 정책의 수혜를 입었지만, 그 이면에서 한국 산업은 불확실성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셰일가스 부활과 석유 수출 증가, IRA 축소에 따른 보조금 재편 등으로 에너지·정유 분야는 호조를 보이고 있는 반면, 이차전지·반도체·자동차 등 한국의 주력 수출 산업은 타격을 피하지 못했다.
◆ 한국기업평가 '[트럼프 2.0] 새로운 시대의 생존전략 보고서 2차 전지 전망' 발췌.


특히, 이차전지 산업은 IRA 내 30D·45X(구매자·제조사 세액공제) 조항이 폐지될 경우, 미국에 진출한 국내 배터리 기업의 수익성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실제로 국내 베터리셀 회사는 세액공제로 인한 보조금 수익에도 지난해 영업적자를 기록한 상황에서, 보조금 축소는 즉각적인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기업평가 민원식 선임연구원은 "국내 이차전지 업계는 자본조달과 투자 조정 등 자구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전기차 수요 둔화와 LFP 전환 지연, 재무부담 증가 등으로 인해 단기 대응 효과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된다"며 "미국 시장의 중요도가 매우 높아 IRA 등 주요 정책 변경과 그 여파에 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반도체 업계 역시 관세 강화, 공급망 재편, 대중 수출 통제 등의 영향으로 글로벌 수요 둔화 가능성이라는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 자동차 업계는 전기차 의무화 폐지와 추가 관세 부과 가능성 속에서, 현지 생산 확대와 글로벌 공급망 다변화를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이중 과제에 놓여 있다.

■ 상호관세 확산 속 전략 시험대 오른 한국.. '고립인가 기회인가'

트럼프 관세정책은 단순한 무역 규제를 넘어,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지정학적 전략으로 확대되고 있다. 미국은 동맹국과의 연합을 통해 중국을 포위하려는 한편, 중국은 보복관세, 희토류 수출 제한, 반미 동맹 구축으로 맞서고 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은 지난 21일 발간한 '미중 관세전쟁, 어디로 가고 있나' 보고서를 통해 이번 미중 갈등을 경제 소모전이자 리더십 경쟁으로 규정하며, 양국 모두가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 지난 21일 발간한 '미중 관세전쟁, 어디로 가고 있나' 보고서(지역전략연구실 유현정 연구원 작성).


이 가운데 한국은 전략적 균형의 시험대에 올랐다. 미국은 중국 제외 90일간 상호관세 유예를 부여하며 노골적인 편 가르기에 나섰고, 중국은 아세안·중동·유럽과의 '반미 공동체' 구축에 나서며 지정학적 대결 구도를 강화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은 중동 산유국과의 에너지 협력 강화, 브릭스(BRICS) 확대 추진, 아세안과의 무역·안보 협력 심화 등을 통해 미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다자적 외교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맞서 한국은 비교우위 산업을 식별해 제3국자 협력에 나서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INSS는 동 보고서를 통해 "한국이 IRA와 관세 사이의 틈새를 공략할 수 있는 비교우위 산업을 식별하고, EU·인도 등 제3국과의 협력을 통해 충격을 흡수할 다층적 생존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트럼프式 경제 실험' 길일까 덫일까.. 선택 앞에 선 한국

결국 트럼프의 경제 실험은 '미국 중심의 부활'인가, '세계 속 고립'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 구조 전환 속에서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다. 미국과 중국 모두가 자국 중심의 경제 전략을 고수하며, 동맹과 파트너들에게 노골적인 '편 가르기'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한국은 무역 의존도, 공급망, 안보 동맹이 뒤얽힌 복잡한 셈법 속에 있다.
◆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리는 '한미 2+2 통상 협의' 참석차 지난 22일 출국하고 있는 모습[사진=연합뉴스 제공].


한편 정부는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발 관세 파고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미 2+2 통상 협의'를 위해 미국을 찾았다. 이번 협의에서는 한국에서 최 부총리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미국에서는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과 통상협상 책임자인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각각 참석할 예정이다.

한미 무역 협상과 관련해, 한국이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다는 신중하고 수동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지정학의 힘》 저자이자 국제정세 전문가인 김동기 변호사는 "미국은 관세 전쟁으로 인한 혼선 속에 우방국들과의 협상을 서두르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치적 공백기를 겪고 있는 한국은 미국의 무리한 요구에 휘말리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내 리더십 공백을 전략적으로 활용해 협상을 지연시키는 등, 불필요한 양보를 피하기 위한 방어적 전략이 필요하다"며 "동시에 일본 등 다른 국가들의 협상 전례를 참고해 시점을 조율하는 접근도 유효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경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