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협상 수단 관세, 보편·상호·품목 세 가지로 다층 압박
"군사보호 공짜 없다".. 경제·안보 연계, 韓 협상우선국 포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미국 통상정책이 다시 보호무역주의로 선회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한국, 멕시코, EU 등 주요 교역국을 상대로 고율의 관세를 잇달아 발표하며 세계 무역질서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명분은 무역적자 해소와 일자리 창출이지만, 실제로는 제조업과 에너지 등 전략 산업을 재편하고, 기축통화 유지비용과 안보비용을 교역국에 분담시키는 전략적 기조가 분명해졌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번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은 보편관세를 기본으로, 무역적자 국가에 상호관세를 매기고, 전략 품목에는 고율의 품목관세를 부과하는 '3단계 관세 체계'로 설계됐다. 트럼프 행정부의 이른바 '다중 압박 전략'이 본격화되면서, 국내 산업계에도 대응 전략이 불가피해졌다는 전망이 나온다.
■ 관세는 '트럼프式 공정'의 출발.. 기축통화·안보 비용까지 전가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정책 수단으로 삼는 핵심 이유는 '미국 제조업 부활'이다. 그는 미국이 부담해온 달러 기축통화 유지 비용과 군사 안보 비용 등을 교역국과 나눠야 한다는 입장을 관세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이러한 구상의 중심에는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 스티븐 미란(Stephen Miran)이 있다.
미란 위원장은 작년 11월 발표한 '세계 무역 시스템 재편을 위한 가이드(A user's guide to restructuring the global trading system)' 보고서를 통해 관세를 통한 글로벌 무역질서 재편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지난 7일 허드슨연구소 연설에서 그는 "미국이 제공하는 글로벌 공공재, 즉 기축통화와 군사 안보에 대해 동맹국들이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11일 NPR 라디오에선 "기축통화로서의 달러가 통화 왜곡과 무역 불균형을 초래하며 미국 제조업과 노동자 계층에 피해를 주고 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전략은 단순한 수입규제에 그치지 않는다.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 통화, 안보 정책을 유기적으로 결합한 복합 압박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더불어 제조업 부활과 탈탄소 규제 완화, 에너지 자립 강화도 함께 추진 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정부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중 친환경 지원 조항이 "미국 내 일자리를 해외로 이전시킨다"며 전면 개정 방침을 밝혔다.
■ 보편·상호·품목.. 세 겹으로 작동하는 미국 관세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관세정책은 크게 ▲보편관세 ▲상호관세 ▲품목관세라는 세 가지 층위로 작동한다.
보편관세는 WTO의 최혜국대우(MFN) 원칙에 따라 모든 국가에 동일하게 부과되는 기본 세율이다. 그러나 미국이 이를 일괄 인상할 경우, 한국과의 FTA 및 WTO 규정을 위반할 소지가 있다. 실제 한국의 대미 수입품 평균 관세율은 0.79%에 불과하지만, 트럼프가 추진 중인 10%의 보편관세가 도입되면 통상 분쟁이 불가피하다.
상호관세는 무역적자국 또는 불공정 거래국을 대상으로 하는 보복성 관세다. 상호관세율은 무역 상품수지 적자액에 상품수입액을 나눠 산출된 비율에 50% 할인율을 적용한 값이 관세율로 부과된다. 예를 들어, 미국은 지난해 한국에 655억 달러를 수출하고 1315억 달러를 수입해 660억 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했다. 이 적자액을 수입액으로 나눈 적자율은 50%이며, 여기에 절반을 적용한 25%가 상호관세율로 산정됐다.
품목관세는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전략적 품목에 별도의 고율 관세를 매기는 방식이다. 배터리, 전기차, 반도체, 태양광 패널 등 주요 품목이 이에 해당된다.
■ 경제·통화·안보 묶은 '다중 압박'.. "군사 보호, 공짜 없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은 금리, 환율, 안보 정책과 결합되며 미국의 경쟁력을 높이는 다층 전략으로 작동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달러 가치 조정, 기준금리 압박 등을 통해 자국 제조업 경쟁력을 높이고 있으며, 여기에 방위비 분담금 협상까지 연계하며 경제-안보 연계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공식 SNS를 통해 "한국은 무역, 조선, LNG 수출에서 큰 흑자를 보고 있으며, 미국의 군사적 보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발언하며 경제와 안보를 연계한 전략을 내비쳤다.
■ 국내 산업계도 '전략적 대응' 불가피.. 한국, 우선 협상국 대상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은 단순한 가격조정 수단이 아니라 글로벌 무역질서 재편을 위한 협상 카드로 기능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배터리, 전기차, 반도체, 조선 등 미국이 겨냥하는 전략 산업 분야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한국의 무역장벽으로 ▲방위산업 상쇄 프로그램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 ▲의약품 가격 정책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제한 ▲플랫폼 규제 등을 지적하며 협상 요구 조건을 제시했다.
미국이 요구하는 비관세 협상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국내 산업구조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포스코경영연구원 전민수 수석연구원은 지난달 19일 발표한 '트럼프發 관세전쟁' 보고서에서 "미국은 국가별 협력 수준과 경제적 여건에 따라 차별적인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며 "정부와 산업계는 미국發 공급망 재편 압력이 가져올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미국과의 관계에서 우리 산업의 활용 가치를 따져 중장기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도 관세 협상 대응에 속도를 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4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을 포함한 5개국을 '우선 협상 대상국(top targets)'으로 지정했다고 보도했으며, 이에 따라 한미 통상 협상이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