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처럼 번지는 ‘한탕주의’…희미해지는 노동의 가치 [덫에 빠진 청년들 ③]

김성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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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간 큰돈 벌 욕심에 캄보디아 떠난 청년들
한탕주의 젖은 청년, 사기 가해·피해 가능성↑
큰돈 벌었다는 무용담 무분별 확산
캄보디아 당국의 범죄단지 단속으로 적발돼 구금됐던 한국인들이 지난 1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을 통해 송환, 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뉴시스
[데일리안 = 김성웅 기자] ‘고수익 보장’, ‘월 천 이상’, ‘인생역전’과 같은 키워드에 청년들이 현혹되고 있다.

최근 캄보디아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취업사기와 납치·감금 등 범죄가 이어지는 가운데, 관련 구인글들은 모두 ‘단기간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피해자를 유인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 급속히 확산 중인 이른바 ‘한탕주의’ 심리를 노린 것이다.

최근 청년층을 중심으로 노동을 ‘생계 수단’이 아닌 ‘비효율적인 선택’으로 보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주식·가상화폐·부동산 등으로 거액을 벌었다는 근거없는 무용담이 SNS나 커뮤니티 등을 통해 무차별 확산되면서 ‘노동의 가치’가 예전만 못한 실정이다.

캄보디아 당국의 범죄단지 단속으로 적발돼 구금됐던 한국인들이 지난 1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을 통해 송환되고 있다. 뉴시스ⓒ
치솟은 집값, 고위험 투자상품 성행…떨어지는 노동의욕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4억3621만원으로 18개월 연속 상승했다. 수도권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도 8억46만원으로 3년만에 8억원대로 재진입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우리나라 임금근로자 월평균 소득은 363만원, 중위소득은 278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위임금을 받는 근로자가 한 푼도 쓰지 않고 43년을 모아야 서울 평균 아파트를 살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부동산 폭등으로 까마득해진 ‘내 집 마련’은 노동 의욕 상실을 부추기는 요인이 됐다.

급등과 급락을 반복하는 가상화폐와 고위험 주식도 노동 의지를 퇴색시키고 있다.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이 발표한 ‘2025년 상반기 가상자산 사업자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국내 가상자산 투자자는 1077만명으로 6개월 전보다 107만명(11%) 증가했다.

치솟는 집값과 하이리턴-하이리스크 투자상품에 청년의 관심이 몰리는 가운데, 전통적인 노동의 가치는 계속해서 떨어지는 중이다.

데이터처의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2025년 9월 기준 15~29세 청년층 중 ‘쉬었음’ 인구는 60만명을 넘었다. 일할 의욕이 없거나 구직을 포기한 청년들이 늘고 있다는 뜻이다. 특히 구직단념자는 9000명 늘었고, 1년 이상 장기 비경제활동 상태인 청년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부모 세대가 노동으로 이룬 성취를 현재 청년 세대는 기대할 수 없게 됐다”며 “이런 상황에서 가상화폐 등 투자로 큰 돈을 벌었다는 소식은 좌절감에 빠진 청년에게 솔깃하게 들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당국의 범죄단지 단속으로 적발돼 구금됐던 한국인들이 지난 1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2터미널을 통해 송환되고 있다. ⓒ뉴시스
가해자가 된 피해자…“저신뢰 사회, ‘아노미’ 빠진 청년들”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국인 납치·감금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는 가운데, 피해자를 바라보는 시선도 엇갈린다.

피해자 중 일부는 맡게 될 업무가 보이스피싱, 로맨스스캠 등 범죄라는 것을 알고 출국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에 “아무것도 모른 채 간 게 아니라, 범죄로 크게 한탕 해보려다 당한 것”이라는 여론도 조성되는 모습이다.

납치·감금된 이들이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된 상황인 것이다. 현지에서 납치·감금 피해를 받았어도 불법행위에 가담했다면 귀국 후 처벌을 면하긴 어렵다. 경찰은 이들이 귀국하는 대로 범죄 가담 여부를 조사할 계획이다.

한탕주의에 젖은 청년일수록 이같은 범죄의 가해자 혹은 피해자가 되기 쉽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 한국 청년들은 일종의 ‘아노미’ 상태에 놓여 있다”며 “생존을 위해 사회적 규범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구조가 (캄보디아 사태에)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정부에 대한 신뢰, 사회 구성원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면서 범죄도 마다하지 않는 도덕적 타락이 일어나고 있다”며 “이는 그동안 정부나 정치권 등에서 청년 세대를 제대로 보살펴주지 못했다는 방증이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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