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왕복드국립공원 후이텐봉(4,374m) & 말친봉(4,050m)
공항 게이트에 붙은 흔하디흔한 문구가 전혀 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간 체감되지 않았던 오지탐사가 진짜 시작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전까지는 그저 매주 반복하던 국내 훈련을 받으러 가는 길 같았다.
게이트를 지나자 한글 자필로 투박하게 '청소년 오지탐사대'라고 쓴 종이를 들고 방긋 웃고 있는 가이드 '에르카'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한국말에 정말 능통했다. 도착했을 때 이미 새벽 1시였으므로 바로 20인승 버스에 카고백 8개를 싣고 울기로 향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밤하늘이 정말 아름다웠다. 시도 때도 없이 덜컹 거리는 버스에 몸을 맡기고 한참을 달렸다. 약 1,700km를 이동하며 엉덩이와 허리는 차라리 죽여 달라고 아우성이었지만 몽골의 다양한 자연환경에 감탄하며 이동할 수 있어 좋았다. 특히 초원에 퍼지던 허브향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탐사 5일차, 타왕복드국립공원으로 향하는 여정이 시작됐다. 새로운 기사 오스판 씨 아들인 '크삭'이 "나마이크 은영!"하고 인사를 건넨다. 베이스캠프로 이동하는 길은 엄청난 초원과 산의 연속이었다. 가서 뛰어놀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리고 대체 여기서 어떻게 길을 찾는 거지 싶을 정도로 광활했다. 중간 중간 돌무더기가 이정표인 듯했다. 한국은 도로가 워낙 잘 깔려 있어서 몰랐는데, 흙먼지 날리며 산맥을 넘어서는 게 꽤 낭만 있고 인상 깊었다.
창밖으로 모래 산과 솜털처럼 잔디가 자란 푸른 산이 보였다. 10년 전 이곳은 어땠을지 생각하면서, 지구온난화로 인한 사막화 때문에 푸른 산이 없어지고 모래 산이 많아진 건가 싶었다. 몽골의 비 오는 날은 2번 겪어봤는데, 한국처럼 시원하게 쏟아지는 게 아니라 두세 방울 떨어지는 게 전부였다.
타왕복드국립공원 입구에서 베이스캠프는 약 16km 거리다. 천천히 차도를 따라 걸으며 타왕복드 전경을 만끽했다. 지나가던 외국인과 인사를 주고받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래도 한 발 한 발 가다 보니 어느새 훈련지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더 어지러운 느낌이라 종흠이와 근처를 배회하며 산책했다. 고소가 왔을수록 돌아다니면서 몸을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곧 확보 지점 설치, 아이스스크루 설치, 안자일렌 등 다양한 등반 기술을 배웠다. 열심히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고소 증상이 나아져 갈수록 제 컨디션을 찾은 것 같다.
내려와 밥을 먹으며 내일 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어서 몽골 최고봉 후이텐(4,374m)에 오르려면 내일 출발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정확히는 후이텐에 오를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를 결정하고 만약 오른다면 하루 쉬고 갈지 바로 갈지를 결정해야 했다.
후이텐은 앞서 발족했던 오지탐사대들이 네 번이나 도전했던 곳이다. 그러나 여러 이유로 끝내 오르는 데는 실패했다고 한다. 그런 곳에 어떤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국내에선 어떤 봉우리 정상에 올라도 "후이텐 등정 성공"을 외치곤 했는데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몸은 고소 적응이 잘되었는지 어제보다 숨찬 느낌이 덜했다. 그리고 조언 받은 대로 일직선이 아니라 지그재그로 올라가니까 확실히 체력 소모가 줄었다.
전진 베이스캠프로 가던 날은 모두에게 정말 위험하고 힘든 날이었다. 아무리 가도 보이지 않았다. 끝없는 빙하. 베이스캠프에 있는 에르카에게 무선이 닿지 않고 되돌아가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불안했다. 대장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누구 한 명 다치기라도 하면 상황이 매우 곤란해지기에 안전에 온갖 신경을 몰두하느라 매우 예민한 상태였을 터다.
반면 우리는 너무 각자의 힘듦만 생각했다. 매번 시간 약속도 늦고 몇 번 혼나도 잘못이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그리고 기어이 터졌다. 대장님이 쉬지도 않고 정찰을 다녀왔는데 우리는 그 시간 동안 울퉁불퉁해서 제대로 쉬지는 못할 곳에 텐트를 쳐뒀다. 심지어 크레바스 옆. 우리는 그걸 알면서도 피곤하다고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결국 우린 텐트에 모여 대장님과 깊은 대화를 나눴다. 밤늦게 텐트 위치를 옮기고, 그러느라 다 불어버린 라면을 먹었다. 앞으로 관계를 좋게 유지하기 위해 서로 지켜야 할 몇 가지 규칙을 정하기도 했다. 마지막에는 대장님이 분위기를 풀어줘서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후이텐 정상 공격 날이 밝았다. 밤새 추위에 덜덜 떠느라 잠을 설쳤다. 따뜻한 수통을 침낭 안에 넣었음에도 발가락은 시리고 몸을 새우처럼 말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다. 은박담요를 꺼낼까 말까 수백 번은 고민했다.
먼저 러셀 작업을 일차적으로 진행한다고 했는데 나는 함께하지 못했다. 발가락에 가벼운 동상을 입은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베이스캠프에 방풍판, 외용약, 기껏 집에서 챙겨온 경량패딩 등을 다 놓고 왔다. 빙벽화 밑창이 떨어졌는데 여분의 신발도 없었다. 떨어진 밑창 사이로 눈이 들어왔는지 발이 다 젖어서 도저히 운행할 수 없었다. 다른 중등산화를 신고 왔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너무나 아쉬웠다.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지원이다. 우선 다들 돌아와서 편하게 쉴 수 있도록 화장실도 손보고, 텐트도 정리하고, 눈이 포슬포슬해졌을 때 텐트 자리도 평탄화하고, 물도 끓였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대원들이 돌아오지 않았다. 밖에선 종종 굉음이 들리며 눈사태가 일어난다.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다행히 9시쯤 저 멀리서 작은 5개의 검은색 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뭘 좋아할지 몰라 다급하게 따뜻한 물과 시원한 이온음료를 가슴에 품고 마중 나갔다. 다들 정상을 찍고 와서 그런지 흥에 겨운 상태였다. 다친 사람 없이 무사히 다녀와서 기분이 좋았다.
혼자 남아 지원하는 것도 나름 의미 있었다. 국내에서 훈련을 받고 지쳐 돌아오면 다른 선배들이 고생했다며 아이스크림이나 저녁 식사를 준비해 줬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걸 받아먹고 나면 힘들었던 기억이 싹 가시고 오늘도 해냈다는 행복감만 남았다. 그 감사의 마음을 떠올리며 그때 기분을 대원들에게 돌려주고 싶었다.
배낭을 옮겨주고, 바로 밥을 준비했다. 미리 육포를 잘라 넣고 떡국 끓일 준비를 해놓아서 금방 먹을 수 있었다. 떡국을 끓이는 짧은 시간 동안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정말 힘들었다", "마지막에는 미끄러져서 내려왔다" 등 신나서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또 다른 4,000m봉 말친봉도 등정
베이스캠프로 돌아가는 날 아침, 뭔가 답답해 눈을 뜨니 텐트가 무너져 있었다. 텐트에 금이 갔던 부분이 밤새 강한 눈보라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진 것이다. 밖에 나가서 확인해 보니 눈이 꽤 쌓인 것 같았다. 밖에 내놨던 코펠과 시에라컵이 다 잠길 정도였다.
일단 일어나서 다른 대원들 텐트는 무사한지 확인했다. 다행히 나머지 두 개의 텐트는 강한 바람에도 살아남았다. 일어난 김에 텐트 옆과 입구에 쌓인 눈을 치우고, 멸치칼국수를 위한 물을 끓였다.
어제까지는 맑고, 쨍하더니 오늘은 눈보라 때문에 눈앞이 새하얗다. 심지어는 눈이 쌓여서 크레바스도 보이지 않았다. 내 빙벽화는 여전히 젖어 있었다. 다행히 효정 언니가 중등산화를 빌려주고, 지호가 아이젠을 빌려줘서 안전하게 하산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발가락이 얼 것 같은 통증과 동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정신이 온전하지 못했다. 눈물이 나고 호흡이 가빴다. 주변 소리도 잘 안 들렸다.
그런 데다 작은 추락이 잦자 굉장히 예민해졌다. 그냥 물어봤는데 짜증 섞인 말투로 대답하는 종흠에게 화가 나서 약간의 말다툼을 했다. 물론 실제로 그런 의도는 아니었을 수 있다. 뒤에서 줄이 걸려 당겨지는 바람에 좀 정리해 줬으면 해서 "뒤에 줄 걸렸어?"라고 물어봤는데 "안 걸렸다, 왜 빨리 가지 못하냐"는 식으로 대꾸하니 화가 났다. '내가 왜 얘한테 꾸중을 들어야 하지?'란 생각이 들었다. 순간 짜증을 내고 아차 싶었다. 이런 식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건 팀 분위기만 험악하게 만드는 짓이다. 그래서 감정을 추스른 후 사과했다. 이후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걸 머릿속으로 계속 되새기며, 남을 더 살펴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진 사람이 되자고 다짐하며 발걸음을 계속했다.
베이스캠프에 도착 후 카드게임을 하며 즐거운 예비 일을 보냈다. 탐사 11일차, 이번에는 말친봉에 다녀오기로 했다. 4,000m를 밟아보지 못한 나를 위한 배려였다. 후이텐에 함께 오르지 못해 정말 아쉬웠는데, 말친봉이라도 다녀올 수 있어서 정말 기뻤다.
말친봉은 한 발 올라가면 반 발 후퇴하는 돌산이었다. 어떤 돌을 밟아야 덜 미끄러질지 감을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휴식 없이 계속 올라야 해서 체력을 좀먹는다. 날이 좋아서 그런지 유독 다른 팀도 많았다. 이들을 앞지르기 위해 우회 루트를 탔는데 마땅한 휴식 포인트가 나오지 않았다. 슬슬 쉬어야 할 타이밍에 그러지 못하니 점차 퍼졌다. 속도를 내지 못하자 지호가 내 짐을 덜어줬다. 덕분에 겨우 선두 속도에 맞춰서 올라갈 수 있었다. 정말 고맙고, 미안했다.
경사면을 겨우 오르고 능선 구간에 접어들자, 강풍이 우리를 반겨줬다. 사람 몸이 바람에 흔들릴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안 해봤는데, 현실이었다. 경사면을 다 오르니 능선 길은 생각보다 얼마 되지 않아 예상보다 빠르게 정상에 도착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정말 추웠다. 추위에 떨며 바라본 주변 풍경은 정말 멋졌다. 기꺼이 나와 함께 올라준 대원들 덕분에 이런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었다. 같은 팀원이라 정말 행복했다.
탐사 14일차, 마지막 일정인 문화교류를 진행했다. 자주색과 검은색 나이키 옷을 맞춰 입은 아이들이 포대자루를 하나씩 손에 들고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어려 보이는 친구도 꽤 있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자기소개 먼저 했겠지만, 오스판 씨의 진행에 따라 우선 쓰레기 줍기를 먼저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다가가서 "센 베노"하고 인사를 걸자 여자아이 '아마리'가 먼저 살갑게 이름을 물어온다. 말이 잘 안 통할 줄 알았는데 영어로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어색한 기류에 같이 쓰레기를 주우며 드문드문 잡담을 했다. 워낙 붙임성이 좋은 친구라 다양한 정보를 알 수 있었다. 취미는 노래 부르기, 블랙핑크를 좋아하고, 쌍둥이 '아나르'가 있고, 할머니는 몽골족이지만 부모님은 다 카자흐족으로서 자랐고, 남자 게르는 카자흐식이고, 여자 게르는 몽골식으로 지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모래바람이 세게 불어서 눈이랑 입에 모래가 들어가 힘들어하자 아마리는 가만히 자신의 바람막이 모자를 나에게 씌워 준다.
이어 통성명 시간을 가졌다. 한국어와 몽골어로 쓴 이름표를 만들었다. 우리의 이름을 요상하게 따라 부르며 까르르 웃던 꼬마가 생각난다. 우리는 한국 전통놀이로 수건돌리기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알려줬다. 놀이 내내 아이들의 순수한 웃음소리에 나도 같이 어린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뜀박질하며 도파민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덧 탐사가 끝을 향한다. 시행착오를 겪을 때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오르고 있는 걸까?"하고 수많은 의문이 뇌리를 스치며 방향을 잃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잠시 숨을 돌리고, 행동식을 먹으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함께하는 동료들을 봤다. 한 발짝, 한 발짝 걸음을 떼다 보니 새로운 목표를 찾기도 하고, 다시 나아갈 힘을 얻기도 했다. 이번 탐사에서 보고 느꼈던 모든 것은 앞으로 삶을 살아가는 데 좋은 양분이 될 것이다.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