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고려청자 가마의 불을 지핀 곳 [전라도의 숨은 명산 화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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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바위 암봉이 펼쳐주는 문화유적의 현장
범바위 전망대, 고창고인돌휴게소가 내려다보인다.
도자기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전북 고창, 부안의 도자기를 빼놓고 우리나라 도자 역사를 쓸 수 없다고 말한다. 특히, 고창 화시산火矢山(404m) 아래 운곡습지 인근에 위치한 용계리 청자요지는 고려 초기인 11세기 전북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청자 가마터다. 이곳에서 시작한 청자 기술이 12세기경 부안으로 건너가 강진 일대의 도요지와 쌍벽을 이루는 종갓집 같은 역할을 했다.

화시산은 목포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서해안고속도로(15번)의 고창고인돌휴게소에 바짝 붙어 있는 산으로 기름진 평야지대를 끼고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창 고인돌 유적지와 운곡 람사르 습지 등 문화유적과 생태환경 보존이라는 두 축을 품고 있는 산이다. 고인돌은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에 만들어진 거석문화다. 전 세계에 남아 있는 고인돌 5만여 기 가운데, 한반도에 4만여 기가 있고 남한에만 2만 9,500기가 있는데 그중 2,000여 기가 고창군에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특히, 화시산 아래 운곡서원 근처엔 지구상에서 가장 큰 300톤의 운곡리 고인돌이 있다. 한반도가 고인돌 왕국이라면 고창은 고인돌 왕국의 수도다.

고인돌박물관의 상징, 30톤 무게의 계산리 고인돌.
세계가 인정한 인류 유산, 죽림리 고인돌 유적

들머리인 고창 고인돌박물관 앞에는 고인돌 성지답게 거대한 고인돌이 눈에 띈다. 고창읍 계산리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이전, 복원한 것으로 무게 90톤 초대형급 바둑판식 고인돌이다. 고인돌박물관에서 0.6km 지점 죽림리에 고인돌 447기가 밀집되어 있다. 이곳 죽림리 고인돌군은 우리나라 선사시대에 속하는 청동기시대 BC 4~5세기경 유적으로 1994년에 국가지정 문화재(사적 제391호)로 지정되었고, 다양한 형태와 우수한 보존 상태로 인해 학술적, 문화적 가치를 높게 평가받아 2000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운곡습지 탐방안내소에서 0.5km 지점에 갈림길이 있다. 직진하면 '운곡습지 생태공원' 방향이고 화시산은 오른쪽 언덕으로 꺾어 올라간다. 화시산 전체는 인간의 간섭을 최대한 줄여 살아 있는 생태공원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 이정표 디자인이 독특하다. 이곳에서 서식하는 수달, 삵, 담비, 팔색조, 황조롱이 등의 그림을 넣었는데, 모두 멸종위기 종들이다. 등산로에서 빠져나가는 여러 갈래 샛길은 운곡저수지와 합류한다.

화시산은 생태계가 살아 있는 운곡습지를 감싸고 있다.
화시산 서쪽 기슭에 있는 운곡 람사르습지는 운곡리와 용계리 일대에 위치한 저층 습지로, 과거 주민들이 습지를 개간한 계단식 논으로 사용되었으나 1982년 영광 한빛원자력발전소에 냉각수 공급을 목적으로 운곡저수지를 조성하면서 9개 마을이 수몰되었다. 그 후 30년 가까이 자연 상태가 유지되며 원시습지의 생태로 회복되었다. 현재 운곡습지에는 식물종 400여 종, 육상곤충 270여 종, 양서 파충류 등 총 850여 종의 생물종이 살고 있다.

왕자굴 가는 슬랩지대에 안전로프 설치

등산로는 높낮이가 크지 않고 정상까지 꾸준한 오르막이다. 영지버섯이 많이 보일 정도로 굴참나무가 주종을 이룬다. 회암봉, 옥녀봉, 호암봉 등은 특색 없는 봉우리에 불과하지만, 범바위는 탁 트인 슬랩지대 위에 돌출된 암봉이다. 범바위 전망데크는 시야가 매우 넓다. 고창고인돌휴게소가 훤히 내려다보이고, 곡창지대를 비롯해 고창 읍내와 멀리 방장산까지 보인다. 그래서일까? 은폐와 엄폐, 관측과 경계하기 좋은 위치에 한국전쟁 방어진지가 있다. 지금은 참호와 참호 사이를 안전하게 다닐 수 있는 교통호 흔적만 남아 있다.

범바위 슬랩지대, 멀리 고창 방장산이 보인다.
무재등으로 치고 오를 때 다소 힘이 들지만 이후는 내리막이다. 정상은 무재등에서 왼쪽으로 0.25km 거리에 있다. 우뚝한 암봉 분지에 헬리포트와 삼각점이 있다. 사방으로 막힘이 없다. 평야지대 너머로 동쪽으로 영산기맥인 방장산, 축령산, 태청산이 보이고, 서쪽으로 경수지맥 줄기인 소요산, 선운산, 청룡산이 보인다. 북쪽으로 변산지맥과 두승지맥을 따라가는 크고 작은 산봉우리까지 선명히 보이는 풍광이다.

화시산의 진짜 매력은 무재등을 지나면서부터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다양한 크기의 암봉들과 암벽 지능선이 드러나며 개방감도 좋다. 왕자굴은 무재등과 투구바위 중간에 있다. 예전에 철재 이정표와 안내도가 있었지만 현재는 흔적도 없고, 산행 리본들이 왕자굴 입구를 가리키고 있다. 30m 정도의 바위 경사면에 안전로프와 산행 리본을 촘촘하게 설치했다. 왕자굴은 200m 아래쪽 단일 암봉에 있는 자연굴이다. 높이 약 3m, 너비2.5m, 깊이 10m 정도 된다. 왕자 일행이 난을 피해 후일을 도모하기 위한 장소를 찾다가 호랑이를 몰아내고 호랑이굴에 기거했다는 전설이 있다. 굴 안쪽에 용천 샘이 있는데 작은 물방울이 고여 있고, 무속인이 기도처로 사용하고 있는 듯한 용도의 촛대가 있다.

왕자가 살았다는 전설의 왕자굴은 샘이 있는 자연 동굴이다.
거대한 투구바위는 왕자가 벗어놨던 투구가 바위로 변했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퇴적암의 일종인 사암이 시루떡처럼 비스듬한 층리를 이루고 있다. 침식과 퇴적 과정을 거친 시간의 일기장이다. 촛대바위, 상여바위, 거북바위 등 사진 찍기에 좋은 장소가 여럿 있다. 투구봉만 지나면 급격한 내리막이다. 암석에서 떨어진 사암 조각들이 많아서 미끄럼에 주의해야 한다. 하산길에 정면으로 소요산逍遙山(445m)과 수월봉이 보인다.

하산지점인 소굴치는 근처에 동굴이 많다고 해서 굴치라 부른다. 굴치고개는 아산면 운곡리에서 부안면 용산리로 넘어가는 고개다. 1894년 동학농민군이 줄포로 진격했던 주요 길목 중 하나였다. 고개를 넘던 농민군들의 분노와 결연한 눈빛들이 보이는 듯하다.

한국전쟁 이후 구축된 방어진지 터.
산행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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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서울센트럴시티터미널에서 고창문화터미널까지 3시간 10분 소요되는 버스가 하루 16회(07:05, 07:40, 08:20, 09:00, 09:50, 10:45, 11:50, 12:30, 13:20, 14:05, 14:55, 15:40, 16:30, 17:30, 18:30, 19:30) 운행한다.

요금 2만4,700원(우등) 1만9,000원(고속)

고창문화터미널에서 고창고인돌박물관까지 시내버스 111번, 112번이 운행하지만 배차시간이 길다. 택시를 타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다. 약 10분, 7,000원 정도 나온다. (고창택시063-564-6402)

소굴치에서 올라오는 길목에 있는 선운CC 전경.
볼거리

고창 고인돌박물관은 2008년 9월 25일 개관했다. 관람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월요일 휴관. 입장료는 어른 3,000원 어린이 1,000원. 입장료만큼 고창사랑상품권으로 돌려주고 이곳에서 사용할 수 있다. 박물관은 3층 체험전시실, 2층 상설전시실 VR시간여행, 1층 3D입체영상관, 기획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죽림선사마을에서는 사전에 예약하면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어서 어린이들에게 인기 있는 코스다.

고인돌 유적지를 따라가는 모로모로 탐방열차는 30분마다 운영한다. 어른 1,000원, 어린이 500원. 단체예약 문의 063-560-8666.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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