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힘들어, 나중엔 아쉬워 뒤돌아보다" [네팔 히말라야 34일 트레킹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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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핑 챌린저스]
마르파~야크카르카~칼로파니~담푸스 패스~히든밸리~프렌치 패스~다울라기리BC~재패니즈 캠프~ 이탈리안 캠프~도반카르카~라우라~다르방~포카라~카트만두
칼로파니에 텐트를 설치했다.
대망의 마지막 다울라기리 트레킹을 앞두고 우리는 묵티나트에서 하루, 마르파에서 이틀 총 3일의 휴식일을 가졌다. 비록 묵티나트에서 마르파까지 걸어가야 했지만, 묵티나트 호텔에서 묵으며 오랜만에 따뜻한 샤워와 빨래를 하며 오래 묵은 트레킹 피로를 풀 수 있었기에 거뜬했다.

무엇보다도 만남이 우연이 아닌 인연이었는지 숙소에서 토롱패디를 향하던 길에 만났던 70대 한국인 트레커를 다시 만났다. 그와 저녁식사를 함께하며 지난 트레킹 여정과 앞으로 각자의 일정을 공유했다. 그리고 꼭 공항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고 약속한 뒤 각자의 길을 향해 떠났다.

마르파에서 이틀간 휴식하며 식량 및 장비를 조달한 후 다울라기리로 출발했다. 마나슬루에서 온갖 고생을 하며 현지의 문화와 음식에 적응했고, 안나푸르나에서는 가장 높은 고개를 넘으며 고소에도 적응한 상태. 그러니 다울라기리로 가는 첫 걸음은 무척 자신만만했다. 날씨마저 오랜만에 맑은 하늘이었다.

구름 위에서도 험준한 히말라야산맥은 높고 청아하기만 하다. 이를 저 멀리 위에서 반달이 내려다본다.
하지만 그것이 그저 폭풍전야의 고요였다는 것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 어느새 밀려온 구름이 시야를 가렸고 자갈 위에 쌓인 눈 비탈을 만났다. 먼저 간 포터들도 안 좋은 예감이 들었는지 짐을 두고 애써 돌아와 앞길이 위험하다고 알려주어 아이젠을 차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다울라기리 트레킹은 마나슬루, 안나푸르나 트레킹과는 다르게 잘 알려지지 않아 인적이 드물다. 우리가 계획한 코스는 한 술 더 떴다. 이 길을 걷는 경우 드문 와중에 그마저도 역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이었다.

이번에 다녀온 다울라기리 트레킹 코스는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아 길조차 희미한 경우가 많다.
다울라기리에선 당나귀 똥냄새가 반가워진다

더불어 안개가 점점 짙어지니 기어코 길을 잃고 말았다. 그래도 잠시 가방을 내려놓고 쉬는 동안 포터들이 흩어져 순식간에 길을 다시 찾아내곤 했지만 다울라기리에서는 이런 아찔한 상황이 몇 번이고 되풀이됐다. 그때마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길을 찾아내는 포터들이 신기했다.

길로 돌아오면 트레킹 내내 후각을 괴롭히던 당나귀 똥 냄새가 다시 났다. 처음엔 싫었는데 자꾸 길을 잃다 보니 종국엔 그게 어찌나 반가운지 몰랐다.

계속 보이지 않는 시야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원래 첫날 야영지로 계획했던 곳에 산사태가 나 있었다. 지형이 변해 텐트를 칠 수도 물도 구할 수도 없어 조금 더 걸을 수밖에 없었다. 간신히 도착한 야영지에도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서 물을 구하느라 애먹었다. 그렇게 다울라기리에서 첫날을 보내자 지난 이틀간의 휴식이 무색할 정도로 지쳐 쓰러져 잠이 들었다.

다울라기리 부근의 빙하가 계곡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여느 때처럼 새벽 5시 즈음 기상해 텐트 문을 여니 분명 누군가 나를 밤사이에 옮겨놓았거나 공간을 이동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황홀경이 펼쳐져 있었다. 어제의 구름 장막은 어느새 내 발아래 바다가 되어 운해를 이루고 있었고 맑은 하늘에 청초하게 떠있는 달, 그 아래 위엄을 펼치고 있는 안나푸르나산군의 닐기리와 투쿠체 피크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비추기 시작한 황금빛 조명. 단숨에 텐트를 박차고 뛰쳐나왔다.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다. 황금빛 조명이 꺼지자 단숨에 바다를 이루던 구름들은 흩어져 올라 달을 가리고 산을 감싸기 시작했다. 덕분에 정신을 차리고 다시 떠날 채비를 할 수 있었다.

첫째 날 꼬인 일정은 둘째 날에도 영향을 주었다. 금세 담푸스 패스를 지나 히든밸리에 도착한 우리는 다울라기리 베이스캠프로 가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힘겹게 담푸스 패스를 오르자 먼저 히든밸리의 한 중간으로 내려가고 있는 옹추와 포터들이 보인다. 정말 이걸 다시 내려갔다 올라가야 하는 건지 요샛말로 '현타'가 왔다. 그렇게 허탈하게 한참을 바라보다 결국 발걸음을 옮겼다.

다울라기리 베이스캠프에서 이탈리안 캠프로 간다.
프렌치 패스로 오르는 길은 높은 고도와 더불어 가파른 경사에 한 발 한 발 올리는 일이 너무 버거웠다. 그래서 어느 순간 생각을 멈추고 그저 앞서가는 김재수 대장의 보폭과 속도에 맞춰 다리를 움직였다. 그런데 이른바 이 '대장의 속도'를 퍽 따라갈 만했다. 속으론 '대장님도 힘드신가보다. 천천히 가시네.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프렌치 패스 인근에 다다라 찍은 영상을 보니 내가 오버페이스 하지 않도록 일부러 뒤를 힐끔힐끔 보며 앞에서 천천히 걸어줬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탈리안 캠프에서 바라본 별.
이 구간에서 영상을 꽤 남겼다. 그 힘든 와중에도 카메라를 들어야 했던 이유가 있다. 한 발짝 걸을 때마다 가까이 다가오는 다울라기리 때문이었다. 그 웅장함에 잠시 넋을 잃고 있다가 김 대장의 "이제 다시 갈 준비하자"는 말과 함께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조심스레 준비한 가타와 제사상 미니어처를 꺼냈다. 이 겨를에 우리를 재촉하던 대장도 다시 카메라를 꺼내 딴청을 피며 시간을 준다. 그렇게 존경했던, 그리고 사랑했던 사람들을 잠시 기억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운 산 할아버지.

프렌치 패스를 뒤로하고 내려가는 길에 김 대장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먼저 간 동료들을 한 번도 이런 방법으로 기린 적은 없다고 했다.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한 그를 보며 함께 트레킹하면서 가물가물 흐릿하게 느껴졌던 것이 또렷해졌다. 그는 이곳을 계속해서 올 수밖에 없다.

프렌치 패스.
그는 마나슬루 베이스캠프에서 내려오는 길에 보여야 할 한국산악인 추모 동판이 보이지 않자 로지 인근을 샅샅이 수소문해서 찾아내기도 했고, 산등성이를 보고 그곳에 새겨진 루트 하나하나를 더듬으며 생생하게 이야기했다. 그 모든 과정이 그들을 기리는 것이었다. 여전히 그들이 이곳 어딘가에서 산행 중이라 생각하고, 거기에 본인도 함께하기 위해 이곳을 찾고 있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나 또한 마나슬루, 안나푸르나, 다울라기리 3곳을 걸으며 먼저 떠난 산악인 선배들이 이 산을 오르는 모습을 머릿속에서 약간이나마 그릴 수 있게 됐다.

다울라기리, 이제껏 본 적 없는 가장 거친 땅

다울라기리 베이스캠프에 다다르니 곳곳에 빙하가 깔려 있다. 그리고 일부 빙하가 녹은 자리에는 거대한 요철들이 생겨 있었다. 이번 트레킹 중 가장 거친 지형이었다. 다음날 스위스 캠프 인근까지도 이 험난한 지형이 이어졌다. 동시에 날씨는 눈보라가 쳐 시야가 막혔다. 야간에 캠프에서 잠이라도 들려고 하면 밤새 온 사방에서 서라운드로 울리는 빙하 무너져 내리는 소리에 온 몸이 굳곤 했다.

그러던 와중 한 폴란드 커플을 만났다. 대체 다울라기리 베이스캠프까지 어떻게 올라온 건지 의문일 정도로 그들은 맨몸이었다. 그냥 텐트만 하나 달랑 들고 올라온 상태였다. 심지어 우리 포터들에게 장비와 식량 동냥을 할 정도였다. 복장도 샌들에 반바지 차림으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걸어온 길을 따를 예정이라고 했다. 길의 상태를 알려 주며 그 장비로는 위험하다고 말리려고 했지만 이들은 전혀 들을 생각이 없었다. 우리 산행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기에 여분의 양말과 간식을 건네며 그저 무사귀환하기를 빌었다. 나중에는 혹시 그들이 사고를 당했을까 걱정돼 자주 인터넷을 켜 기사를 검색해 보기도 했었다.

곳곳에 크레바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너덜지대를 지나 거친 물살을 건너 험준한 협곡들 사이들을 비집고 지나다 보니 어느새 날씨는 비로 변하고 곳곳에 초록빛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설마 저기로 가진 않겠지' 싶었던 가파른 낙석지대를 넘어서고 나니 넓은 초원과 함께 이탈리안 캠프가 눈앞에 나타났다.

다울라기리 트레킹 하산길. 이제 설산과 헤어지고 원시림으로 들어선다.
안나푸르나 트레킹 때는 생일에 당연히 선물을 받을 걸 알고 있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더 멋진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다면, 다울라기리는 매 순간 몰래카메라 같은 순간들이었던 것 같다. 그만큼 도저히 상상하지 못한 풍경들이 연달아 펼쳐졌다.

트레킹 내내 내리던 비는 이탈리안 캠프에 도착하자마자 서서히 그쳤다. 따스한 햇살과 함께 하늘을 열어주었고 처음으로 별을 보며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이탈리안 캠프에서 하산하는 길은 습기를 가득 머금은 원시림의 피톤치드향으로 채워져 있었다. 시야를 가득 채우는 초록이 지난 한 달간 쌓인 트레킹의 피로와 고생을 모두 날려주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등 뒤로 사라져가는 설산이 아쉬워 나도 모르게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었다. 그걸 진작 눈치 채고 있던 대장은 나중에 "이제 여기서부턴 진짜 안 보인다"고 알려주기까지 했다.

한 달간의 기나긴 트레킹을 마치며 나의 첫 네팔 트레킹을 가능케 해준 모든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 순간들은 네팔에 재부임한 한 영사가 했다는 말로 갈음된다. "네팔에 심장 반쪽을 두고 왔기 때문에 그걸 다시 찾으러 네팔로 돌아왔다"는 문장이었다. 나도 언젠간 내 반쪽 심장을 찾으러 이곳으로 돌아올 것 같다.

*트레킹을 이끌어 주신 김재수 대장님, 이동대 대장님과 더불어 전폭 지원해 준 콜핑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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