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파~야크카르카~칼로파니~담푸스 패스~히든밸리~프렌치 패스~다울라기리BC~재패니즈 캠프~ 이탈리안 캠프~도반카르카~라우라~다르방~포카라~카트만두
무엇보다도 만남이 우연이 아닌 인연이었는지 숙소에서 토롱패디를 향하던 길에 만났던 70대 한국인 트레커를 다시 만났다. 그와 저녁식사를 함께하며 지난 트레킹 여정과 앞으로 각자의 일정을 공유했다. 그리고 꼭 공항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고 약속한 뒤 각자의 길을 향해 떠났다.
마르파에서 이틀간 휴식하며 식량 및 장비를 조달한 후 다울라기리로 출발했다. 마나슬루에서 온갖 고생을 하며 현지의 문화와 음식에 적응했고, 안나푸르나에서는 가장 높은 고개를 넘으며 고소에도 적응한 상태. 그러니 다울라기리로 가는 첫 걸음은 무척 자신만만했다. 날씨마저 오랜만에 맑은 하늘이었다.
다울라기리 트레킹은 마나슬루, 안나푸르나 트레킹과는 다르게 잘 알려지지 않아 인적이 드물다. 우리가 계획한 코스는 한 술 더 떴다. 이 길을 걷는 경우 드문 와중에 그마저도 역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이었다.
더불어 안개가 점점 짙어지니 기어코 길을 잃고 말았다. 그래도 잠시 가방을 내려놓고 쉬는 동안 포터들이 흩어져 순식간에 길을 다시 찾아내곤 했지만 다울라기리에서는 이런 아찔한 상황이 몇 번이고 되풀이됐다. 그때마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길을 찾아내는 포터들이 신기했다.
길로 돌아오면 트레킹 내내 후각을 괴롭히던 당나귀 똥 냄새가 다시 났다. 처음엔 싫었는데 자꾸 길을 잃다 보니 종국엔 그게 어찌나 반가운지 몰랐다.
계속 보이지 않는 시야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원래 첫날 야영지로 계획했던 곳에 산사태가 나 있었다. 지형이 변해 텐트를 칠 수도 물도 구할 수도 없어 조금 더 걸을 수밖에 없었다. 간신히 도착한 야영지에도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서 물을 구하느라 애먹었다. 그렇게 다울라기리에서 첫날을 보내자 지난 이틀간의 휴식이 무색할 정도로 지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첫째 날 꼬인 일정은 둘째 날에도 영향을 주었다. 금세 담푸스 패스를 지나 히든밸리에 도착한 우리는 다울라기리 베이스캠프로 가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힘겹게 담푸스 패스를 오르자 먼저 히든밸리의 한 중간으로 내려가고 있는 옹추와 포터들이 보인다. 정말 이걸 다시 내려갔다 올라가야 하는 건지 요샛말로 '현타'가 왔다. 그렇게 허탈하게 한참을 바라보다 결국 발걸음을 옮겼다.
프렌치 패스를 뒤로하고 내려가는 길에 김 대장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먼저 간 동료들을 한 번도 이런 방법으로 기린 적은 없다고 했다.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한 그를 보며 함께 트레킹하면서 가물가물 흐릿하게 느껴졌던 것이 또렷해졌다. 그는 이곳을 계속해서 올 수밖에 없다.
다울라기리, 이제껏 본 적 없는 가장 거친 땅
다울라기리 베이스캠프에 다다르니 곳곳에 빙하가 깔려 있다. 그리고 일부 빙하가 녹은 자리에는 거대한 요철들이 생겨 있었다. 이번 트레킹 중 가장 거친 지형이었다. 다음날 스위스 캠프 인근까지도 이 험난한 지형이 이어졌다. 동시에 날씨는 눈보라가 쳐 시야가 막혔다. 야간에 캠프에서 잠이라도 들려고 하면 밤새 온 사방에서 서라운드로 울리는 빙하 무너져 내리는 소리에 온 몸이 굳곤 했다.
그러던 와중 한 폴란드 커플을 만났다. 대체 다울라기리 베이스캠프까지 어떻게 올라온 건지 의문일 정도로 그들은 맨몸이었다. 그냥 텐트만 하나 달랑 들고 올라온 상태였다. 심지어 우리 포터들에게 장비와 식량 동냥을 할 정도였다. 복장도 샌들에 반바지 차림으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걸어온 길을 따를 예정이라고 했다. 길의 상태를 알려 주며 그 장비로는 위험하다고 말리려고 했지만 이들은 전혀 들을 생각이 없었다. 우리 산행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기에 여분의 양말과 간식을 건네며 그저 무사귀환하기를 빌었다. 나중에는 혹시 그들이 사고를 당했을까 걱정돼 자주 인터넷을 켜 기사를 검색해 보기도 했었다.
곳곳에 크레바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너덜지대를 지나 거친 물살을 건너 험준한 협곡들 사이들을 비집고 지나다 보니 어느새 날씨는 비로 변하고 곳곳에 초록빛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설마 저기로 가진 않겠지' 싶었던 가파른 낙석지대를 넘어서고 나니 넓은 초원과 함께 이탈리안 캠프가 눈앞에 나타났다.
트레킹 내내 내리던 비는 이탈리안 캠프에 도착하자마자 서서히 그쳤다. 따스한 햇살과 함께 하늘을 열어주었고 처음으로 별을 보며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이탈리안 캠프에서 하산하는 길은 습기를 가득 머금은 원시림의 피톤치드향으로 채워져 있었다. 시야를 가득 채우는 초록이 지난 한 달간 쌓인 트레킹의 피로와 고생을 모두 날려주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등 뒤로 사라져가는 설산이 아쉬워 나도 모르게 자꾸만 뒤돌아보게 되었다. 그걸 진작 눈치 채고 있던 대장은 나중에 "이제 여기서부턴 진짜 안 보인다"고 알려주기까지 했다.
한 달간의 기나긴 트레킹을 마치며 나의 첫 네팔 트레킹을 가능케 해준 모든 순간들이 떠올랐다. 그 순간들은 네팔에 재부임한 한 영사가 했다는 말로 갈음된다. "네팔에 심장 반쪽을 두고 왔기 때문에 그걸 다시 찾으러 네팔로 돌아왔다"는 문장이었다. 나도 언젠간 내 반쪽 심장을 찾으러 이곳으로 돌아올 것 같다.
*트레킹을 이끌어 주신 김재수 대장님, 이동대 대장님과 더불어 전폭 지원해 준 콜핑에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