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나는 내가 영포티인 줄 몰랐다

김백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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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상 지역미래팀장

40대 비꼬는 영포티 표현 유행
대화보다 가르치기 좋아하는 이들
꼰대로 대변되는 권위적인 문화
기업·기관 경쟁력에 부정적 영향


얼마 전 30대 후배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그들의 대화에서 ‘영포티’라는 말이 오갔다. 많이 들어봤지만 정확한 의미를 몰라, 뜻을 물었다. “자기 관리를 해서 젊게 사는 40대인데…”라는 설명까지 듣고, 말을 잘랐다. “그럼 난데”라는 충격적인 발언에 그들은 잠시 어이없는 표정을 짓더니, 크게 웃었다.

물론 40대 후반으로 기울고 있는 선배의 농담이었다. 그럼에도 내심 ‘약간은 젊게 사는 40대에 가깝지 않을까’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후배의 설명은 이어졌다. 후배는 “처음에 그런 좋은 뜻이었지만, 요즘엔 다르다. 젊게 산다는 자신감이 과해, 20대와 30대에게 뭘 계속 가르치려는 꼰대를 비꼬는 말이다”고 마저 설명했다.

그러니까 영포티는 좋은 뜻이 아니라, ‘진화한 꼰대’라는 것이다. 전통적인 꼰대는 나이와 계급으로 아랫사람을 누르는 스타일이라면, 영포티는 옛날 꼰대와는 다르게 젊은 감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그런 노력에 심취해 자신이 꼰대라는 것을 모르는 이들이다. 어쨌든 20대와 30대에게 이들은 비호감이다.

영포티라는 말이 워낙에 퍼지다 보니, 관련된 기사도 제법 나왔다. 경제적 계급 차이가 이유라는 분석도 있다. 쉽게 표현하면, 20대와 30대들이 경제적 부담으로 구매하기 힘든 패션 브랜드를 영포티들은 쉽게 사 몸을 치장할 수 있다는 거다. 여기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이 반감을 부른다는 얘기다.

일리가 있는 분석인 듯 보이지만, 영포티에 대한 반감을 오롯이 박탈감으로 설명하기 힘들다. 영포티이든 올드포티이든 젊은 층은 40대 이상에게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기 쉽다. 가장 큰 불만은 나이가 들수록 어린 사람들과 대화하기 보다 가르치려 한다는 지점이다.

대다수 조직에서 40세 전후의 구성원은 중추적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흔히 말하는 조직 내 허리다. 경력이 붙어 일을 제법 잘 하면서, 아직 완전한 관리자 직위에 오르지 못해 일도 많이 하는 시기다. 10여 년 이상 한 분야에서 있었다면 일 처리에 요령이 생겼을 것이다. “일 좀 한다”는 칭찬을 종종 받게 된다.

그때가 위험하다. 작은 인정이라도 자주 받다 보면, 자신감이 많이 붙을 수 있다. 굳이 칭찬이 없더라도, 스스로 봐도 예전보다 일을 잘하니 자신감이 과해질 수 있다. 그러다 보면 후배를 비롯해 주변 사람의 업무 태도 등에 불만이 생길 수 있다. 좋은 뜻에서 후배들에게 조언을 하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잔소리를 많이 하는 사람이 된다.

결국 영포티이든, 50대 꼰대이든, 젊은 사람이 피하고 싶은 어른은 대화하기 힘든 사람일 것 같다. 윗사람은 대화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랫사람은 일방적인 훈계인 경우가 많다. 회의를 한다고 했는데, 알고 보면 그냥 결국 장시간에 걸친 업무지시라고 느낀 적이 있지 않은가.

조직 안에서는 권위와 계급 차이가 분명히 존재한다. 그 차이 앞에서 진솔한 이야기가 나오기 어렵다. 윗사람이 입을 닫고 들으려 할 때 조금씩 진짜 속내가 나올 것이다. 권위적인 윗사람이 “아이디어를 내라”, “생각을 말해보라”고 강조해도 아랫사람은 그가 듣고 싶은 말을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 회의 뒤 윗사람은 소통했다고 판단하는 게 일반적이다.

꼰대 문화로 놀림 받는 권위적인 문화가 21세기엔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창의력이 중요한 경쟁 구도가 됐는데, 아직도 옛 군사 문화 분위기에 젖어 있다면 회의 결과는 시대에 뒤처진 결론에 이를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이렇게 복잡한 세상에선 윗사람 혼자만의 판단보다는 여러 조직원들의 의견이 취합된 결과가 정답에 가깝다. 그런 면에서 미국이나 유럽의 IT기업까지는 아니더라도 실질적인 소통을 위해 노력하는 회사가 더 나은 결과물을 쥐게 될 것이다.

비단 기업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지자체장도 혼자만의 생각을 강요하면 도시가 엇나갈 수도 있다. 대통령이 자기 말만 하고 듣는 것을 싫어하면, 국정이 엉망이 될 수 있다.

요즘은 대통령이 주재하는 여러 회의를 국민이 직접 시청하는 시대다. 회의에서 결정되는 내용만큼이나 회의 진행 방식도 중요하다. 효율적이면서도 충분한 소통이 이뤄지는 회의라면 좋겠다. 딱딱한 기업 의사결정 구조를 합리적으로 바꿀 수 있는 리더십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대통령을 포함해 모든 40대 이상이 ‘꼰대’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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