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무라야마 전 총리와 부산

천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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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일본 총리가 지난 17일 향년 101세로 별세했다. 1924년 일본 규슈 오이타현에서 태어난 무라야마 전 총리는 1972년 중의원 선거에서 사회당 후보로 당선돼 중앙 정계에 진출한 뒤 1994년 제81대 총리에 올랐다. 총리로 재임 중이던 1995년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주변국 침략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명시한 ‘무라야마 담화’를 내놨다. 일본 총리로는 처음으로 과거 식민지 지배를 ‘침략’이라고 언급하며 기존보다 진일보한 사과와 역사 인식을 내비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대표적인 친한파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부산과도 남다른 인연을 갖고 있다. 고인은 2008년 11월 11일 부산을 처음으로 찾았다. ‘이수현 의인’을 기리기 위해 해운대 누리마루APEC하우스에서 열린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부산에 거주하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이수현 의인은 2001년 1월 26일 도쿄 신주쿠 신오쿠보역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 열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그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의로운 죽음은 일본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무라야마 전 총리는 이수현 의인의 정신을 널리 알리기 위해 음으로 양으로 힘을 보탰다.

기자는 당시 포럼 행사에 앞서 무라야마 전 총리를 서면에서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길게 기른 흰 눈썹과 백발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고인은 옅은 미소와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신의 생각을 담담하게 밝혔다. “이수현 의인의 행동은 수많은 일본 국민들을 감동시켰습니다. 비록 일본과 한국은 역사적으로 많은 과제를 갖고 있지만 이수현 의인이 가교 역할을 한다면 앞으로 더욱 발전적인 관계를 맺게 될 것입니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그의 소탈하면서도 밝은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고인은 2000년 정계를 은퇴한 뒤 종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해 설립된 민간 재단인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 기금’ 이사장 등으로 활동했다. 특히 고향으로 내려와 매일 산책을 하고 자전거를 직접 타고 다니는 등 검소한 생활을 이어갔다. 지난해 100세를 넘긴 장수 비결로 ‘욕심 없이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이라고 밝혀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2008년 부산 인터뷰는 고인의 점심 일정을 뒤로 미루는 방식으로 겨우 성사됐다. 당시 약속한 시간을 넘길까 봐 조급해진 기자를 되레 세심하게 배려하던 무라야마 전 총리의 따뜻한 눈빛과 격려는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고인의 평안한 영면을 기원한다.

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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