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부터 시작된 ‘부산 디지털금융·블록체인 아카데미’는 급변하는 금융 환경과 디지털 산업의 핵심 이슈를 다루는 교육 과정으로 부산일보를 중심으로 개설됐다. 이 아카데미에는 금융권 종사자를 비롯해 부산경남권 기업인, 스타트업 창업가, 전문직 종사자, 일반 직장인 등 다양한 배경을 지닌 참가자들이 함께하고 있다. 총 12회 과정 중 5회차를 맞이한 이 아카데미는 “블록체인과 디지털 자산을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는 참가자들의 높은 열의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이는 단순한 기술에 대한 호기심을 넘어, 부산이 디지털금융의 거점 도시로 도약할 수 있을지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부산은 이미 중앙정부로부터 ‘블록체인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돼 있고, 수년간 다양한 실증 사업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이번 아카데미가 이제야 1기라는 점에서 블록체인이나 디지털금융에 대한 기술의 문제는 떠나 ‘교육 접근성’과 ‘정보 격차’의 문제가 적지 않음을 보여준다. 수도권이나 해외에서는 대학, 연구소, 기업, 스타트업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최신 블록체인 트렌드와 비즈니스 모델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그러나 부산에서는 여전히 관련 교육이나 네트워킹 기회가 제한적이고, 산업 생태계도 충분히 촘촘하지 않다.
‘블록체인 아카데미’ 반응 뜨거워
하지만 부산 정보 격차 등 문제
교육 제한적, 산업 생태계도 열악
해커톤·세미나 등 참여 채널 절실
사람 중심의 생태계 구축 꼭 필요
독자적인 금융혁신 모델 만들어야
서울에서는 매주 블록체인 포럼이나 Web3 세미나가 열리고, 세계적인 블록체인 기업이나 프로젝트팀이 직접 한국을 찾아 협력 방안을 논의한다. 반면 부산에서는 특구 지정 이후 여러 정책적 지원이 있었지만, 지역 주민이나 청년층이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교육 채널은 많지 않았다. 포럼이나 세미나를 주최하고자 하는 기관이나 단체도 찾기 힘들어 보인다. 부울경 지역에서 블록체인이나 디지털금융에 관심 있는 대학생 등 개발자들이 서로 실력을 겨뤄볼 만한 해커톤도 열리지 못했다. 물론, 일반적인 해커톤이 부산에서도 종종 열리기는 하지만, 블록체인에 특화된 해커톤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부산시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일전에 진행했던 해커톤이 흥행에 어려움을 겪었던 기억이 있어 계획하는 데 어려움이 컸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지금까지 부산에 정말 필요했던 것은 블록체인 특구나 허브 도시와 같은 거창한 담론보다는 블록체인과 디지털 자산이라는 새로운 흐름에 대해 시민들이 교육받고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의 확대였다는 생각이 든다. 블록체인과 디지털 자산은 일부 전문가만 다루는 복잡한 기술이 아니라 누구나 익히고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금융 언어다. 이 언어를 부울경 지역에서도 자연스럽게 접하고 습득할 수 있도록 보다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학습과 참여의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필자가 속한 비댁스는 부산시와 부산일보의 후원을 받아 오는 26일 ‘1-Day 아이디어톤(Ideathon)’을 개최한다. 이번 행사에는 우리금융그룹, 부산 소재 디지털자산거래소인 비단거래소, 글로벌 레이어1 프로젝트인 아발란체(Avalanche), 폴리메쉬(Polymesh)가 파트너로 참여한다. 비록 짧은 하루지만, 지역 내 청년·개발자·기획자들이 팀을 이뤄 디지털 자산을 활용한 아이디어를 직접 구상하고 발표하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이 자리에서 기술적 완성도보다 중요한 것은 참여 경험 자체다. 이런 작은 시도와 경험이 쌓여야만, 부산이 진정한 의미의 디지털 금융 도시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부산의 블록체인 산업은 지금 ‘두 번째 단계’에 서 있다. 첫 단계가 제도적 기반과 특구 지정이었다면, 두 번째 단계는 사람 중심의 생태계 구축이다. 중앙정부의 규제 샌드박스만으로는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다. 현장에서 문제를 느끼고,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참여가 있어야 비로소 산업이 자생력을 갖게 된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부산은 매우 잠재력이 크다. 항만·물류 등 실물 인프라, KRX 거래소를 비롯한 국책 금융기관들, 그리고 지역 대학과 연구기관이 존재한다. 여기에 다양한 세대의 지적 호기심이 결합한다면, 부산은 ‘서울의 대체재’가 아니라 ‘독자적인 금융혁신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다.
디지털 자산과 블록체인은 기술이 아니라 사고방식의 혁신이다. 지역의 금융, 산업, 행정이 소위 ‘돈 버는 사업’에만 관심을 둘 것이 아니라고 본다.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교육과 소통의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교육청이나 대학 등 교육기관과 손잡고 이해를 넓히고 저변을 확산하는 일도 병행해야 한다. 새로운 금융 언어를 익히고 이를 자신들의 언어로 재해석할 때, 부산의 블록체인 특구는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